이혼

 

이혼




  유다인들의 풍습에서는 남편과 아내가 죽음으로 갈리기 전에라도 혼인 생활이 이혼으로 끝날 수 있었다. 이혼에 관한 구약의 규정은 신명 22장과 24장에 나온다. “어떤 남자가 여자를 맞아들여 혼인하였는데, 그 여자에게서 추한 것이 드러나 눈에 들지 않을 경우, 이혼 증서를 써서 손에 쥐어 주고 자기 집에서 내보낼 수 있다”.(신명 24,1) 여기서ꡐ추한 것ꡑ이 무엇을 뜻하는지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예수님 당시의 유다 랍비들은 그ꡐ추한 것ꡑ에 관하여 여러 가지로 해석하였다. 샴마이 랍비는 간음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한 반면, 힐렌 랍비는 음식을 태우는 일, 계명을 어기는 일, 남편의 눈에 벗어나는 일 따위로 폭 넓게 해석하여, 남편이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쉽게 이혼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그러나 신명기 의 규정은 이 같은 관행보다 이혼에 대해 더 신중하다. 어떤 남자가 처녀와 성관계를 가졌다면, 그녀와 혼인해야 하고 결코 이혼할 수 없다.(22,29) 또 처녀와 혼인하고서 여자가 처녀가 아니라고 거짓으로 고발했을 때는 이혼할 수 없다.(22,19) 한 남자가 어떤 여자와 혼인했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이혼장을 써 주고 내보냈다면, 그 여자가 다른 남자와 혼인한 뒤 다시 이혼하거나 사별했다 해서 처음 남자가 그 여자를 다시 아내로 맞아들일 수 없다.(24,4) 이 마지막 규정은 가벼운 이유로 손쉽게 여자를 내쫒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상의 신명기 구절들을 보면 모세가 이혼을 꼭 필요한 구정으로 새롭게 제정한 것이 아니라 이미 일반적으로 굳어진 관습을 제도화했을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서 시대의 유다 관습에는 여자들이 먼저 이혼을 제기할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어떤 성서학자들은, “또 아내가 자기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혼인해도 간음하는 것이다.” 라는 마르 10,12의 말씀을 예수님 말씀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당시에 아내는 자신을 학대하거나 괴롭히는 남편을 거슬러 법정에 소송을 걸 수 있었고 법정에서는 그녀의 남편에게 이혼할 것을 명령할 수 있었다. 예수께서는 여자 편에서도 이혼을 제기할 수 있었던 당대의 그리스 법과 로마 법을 마음에 두고 말씀하셨을법하다. 실제로 세례자 요한을 처형한 헤로디아는 자기가 제의하여 첫 남편 필립보와 이혼하였다.


  바리사리들과의 이혼 논쟁(마르 10,2-12; 참조: 마태 5,31-32; 19,3-9; 루가 16,18)에서 예수님은 이혼을 반대하신다. 그래서 이 대목에 나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ꡐ반이혼율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마르코복음과 루가복음에서는ꡐ(여자가) 음행한 경우를 제외하고ꡑ


(마태 5,32; 19,9)라는 예외 규정을 둔다. 아마도 마태오의 유다계 공동체에서는 여자가 음행을 저지른, 곧 간음한 경우에 남편이 아내를 내보내고 다른 여자와 재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는 이혼 절대불가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지역 교회에 적용되면서 완화된 실례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이혼 논쟁의 앞뒤 문맥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의 가르침이 당대의 철저한 가부장제도 아래에서 남존여비의 희생물이 된 여성을 보호하려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남편의 변덕에 무방비 상태로 내맡겨진 여성의 권익을 보호하시기 위해 천지창조 때 하느님께서 남녀관계에 부여하신 근본적인 의도에 호소하신다. “하느님은 태초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됩니다.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입니다. 하느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됩니다.”(마르 10,6-9) 그분은 남녀관계에 대한 하느님의 의도가 모세의 율법 규정 안에서 이스라엘의 문화적인 조건 때문에 제한되었음을 일깨우시면서 하느님의 원초적인 의도로 돌아갈 것을 당부하신다. 반이혼률로 알려진 위의 말씀은,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생각하여 학대하거나 버리지 말고, 혼인 생활의 정당하고 동등한 반려자로 맞아들이라는 것이다. 반이혼율은 혼인의 불가해소성을 천명하는 데 역점을 둔 가르침이라기보다 남녀평등을 바탕으로 한 이상적인 부부관계를 호소하는 가르침이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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