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이스라엘인들은 언제나 교육을 가장 중요한 일로 생각하였다. 이스라엘 교육의 특징은 성서의 가르침에 바탕을 두면서 실천을 강조하는 데 있다. 바울로 사도가 지적한 데로 성서는 본디 교훈적이고 교육적인 목적에서 쓰였다. “미리 씌어 있는 것들은 우리를 가르치기 우해 씌어 있습니다.”(로마 15,4) “그 모두가 하느님의 영감으로 씌어진 것으로, 가르치고 논박하고 바로잡고 올바로 교육하는 데 유익합니다.”(1디모 3,16)
가. 가정 교육
가정은 가장 중요하고 기초적인 교육의 터전이다. 이스라엘인들은 자녀들에게 어릴 때부터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그분을 합당하게 섬기도록 가르쳤다.(탈출 12,26-27; 신명 4,9) 아이들의 신앙은 가정에서 종교 관습을 익히면서, 특히 해방절과 같은 종교 축제에 참여하면서 자라났다. 부모 특히 아버지가 직접,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신앙의 유산과 종교 전통을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부모뿐 아니라 할아버지와 할머니(룻 4,16), 삼촌이나 사촌까지도(참조: 에스 2,7)자녀 교육에 동참하였다. 아이들은 문중의 축제(참조: 1사무 20,6) 동안에 가문의 전통을 익혔고, 때로는 과월절의 경우처럼 축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기회가 아이들에게 주어졌다. 과월절 만찬을 함께 하는 동안 어린아이들이 아버지에게 예식의 의미에 관하여 묻게 하였다. “너희 자녀들이ꡐ이 예식은 무엇을 뜻합니까?ꡑ하고 물으면,ꡐ그것은 주님을 위한 과월절 제사이다. 그분께서는 이집트인들을 치실 때, 이스라엘 자손들의 집을 거르고 지나가시어, 우리 집들을 구해 주셨다.ꡑ하고 대답하려라.”(탈출 12,26)
아이들은 젖을 떼기까지 먼저 어머니의 손에 맡겨진다. 젖을 떼는 시기는 아이의 발육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세 살 정도이다. 젖을 뗀 다음부터 아들의 교육은 주로 아버지가, 딸의 교육은 주로 어머니가 맡는다. 아버지는 아들을 꾸짖고 때로는 체벌을 가하는 데 주저해서는 안 된다. “제 자식을 사랑하는 이는 그에게 종종 매를 댄다. 그러면 말년에 기쁨을 얻으리라.”(집회 30,1;참조: 잠언 13,24;29,15)
자녀들은 부모에게서 종교 교육뿐 아니라 직업 교육도 받는다. 아버지의 일을 거들면서 아들은 농사와 목축을 배우고, 아버지가 목수나 대장장이처럼 장인일 경우에는 아버지에게서 특별한 기술을 전수받는다. 딸은 가사를 돌보는 어머니 곁에서 요리와 베짜는 일, 자수와 옷 만드는 일 들을 배운다. 잠언 31,10-31은 교육을 잘 받은 이상적인 여인상을 그린다. 여기에서 보면 젊은 여자들도 밭일을 할 수 이었었던 것으로 되어 있다.(16-17절; 참조:아가 1,6)
나. 학교 교육
유다 교육사에서 세 가지 획기적인 사건이 있었는데. 이 사건들은 세 인물과 연관된다. 먼저 에즈라는 성서를 유다 교육의 바탕으로 내세웠고, 그의 후계자들은 유다 회당을 예배와 더불어 교육의 장소로 삼았다. 그 다음 시몬 벤-세타는 기원전 75년경에 초등 교육을 의무화하는 법령을 제정하였다. 마지막으로 기원후 63-65년경에 대사제 요수아 벤-가믈라는 모든 지방과 성읍에 학교 교사들을 임명하고 어린이들이 여섯 살이나 일곱 살이 되면 그들에게 교육을 받도록 결절하였다. 물론 시몬이나 요수아가 이스라엘 역사에서 초등 교육이나 학교 제도를 처음 시작한 인물은 아니다. 그들은 단지 이제껏 내려오던 교육 전통을 법제화하였을 뿐이다. 성서에 현대적 의미에서 정확히ꡐ학교 ꡑ에 해당하는 용어가 나오지 않더라도, 선생과 제자가 함께 모여 가르침을 주고받는 학교 제도는 왕정 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스승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제자들이 모여들었고 학교가 형성되었다. 그래서 아람어로 가르치는 곳을ꡐ서기관의 집ꡑ(벳 사프라)이라고 불렀다. 신약 시대에 와서 유다 공동체에는 좀더 체계적인 학교 제도가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스도교가 탄생할 즈음에 예루살렘에는 480개의 회당이 있었고, 회당마다 초등 교육을 담당한ꡐ책의 집ꡑ(벳 세페르)과 고등 교육을 담당한ꡐ배움의 집ꡑ(벳 마드라쉬 또는 벳 탈무드)을 운영하였다. ꡐ책의 집ꡑ에서는 히브리 알파벳을 익혀 이스라엘 역사와 성서를 배우고 읽기와 쓰기, 산수와 그림과 약초 분별법을 배웠다. 아이들은 일곱 살쯤부터 학교에 가기 시작하였다. 학교에 가면 스승의 발밑에 앉아 모세오경과 그 밖의 성서 말씀을 배웠다. 초등 교육 과정을 끝낸 아이들의 교육은 랍비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사이들이 맡았다. 이들은ꡐ배움의 집ꡑ에서 성서에 대한 해석을 가르쳤는데, 200년 이후에 이들의 가르침은 미쉬나 또는 탈무드로 정리되었다. 이 같은 교육 과정은 후대의 랍비 예후다 벤-테마의 분류에 어느 정도 들어맞는다.
다섯 살은 성서 배우기 적절하고,
열 살은 미쉬나 배우기에,
열세 살은 계명을 배우기에,
열다섯 살은 탈무드 배우기 적절하다.
열여덟 살은 혼인하기에 적절하고.
스무 살은 직업이나 소명을 얻기에,
서른 살은 권위를 갖기에 적절하다.
“예수께서는 서른 살쯤 되어 전도하기 시작하셨다.”는 루가복음(3,23)의 기록도 이를 반영한다.
다. 지도층의 교육
이제가지 살펴본 것은 일반인들의 교육이었다. 이제부터는 왕족, 서기관, 행정관리, 사제, 예언자의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살펴보자.
먼저 왕세자의 경우, 어릴 때에는 유모가 기르고, 젖을 뗀 다음부터는 궁정 교사가 교육을 맡았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는 이집트의 본을 따서 왕립 학교를 운영하였던 것 같다. 왕립 학교는 예루살렘뿐 아니라 솔로몬이 나눈 열두 행정 구역의 수도에도 설립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왕립 학교에서는 임금의 아들들과ꡐ임금의 친구들ꡑ(고위관직)의 아들들을 비롯하여 때로는 장차 국가의 고위 행정 관리들과 임금의 조언자들이 될 아이들에게도 읽기, 쓰기, 산수, 행정, 역사, 지리 따위를 가르쳤을 것이다.
일반인들도 몇 가지 특별한 수업과 훈련을 받게 되면 서기관이 되 수 있었다. 서기관들은 매매 계약서, 혼인 계약서, 이혼증서, 소송 문서 따위를 작성할 줄 알아야 했다. 제1성전 시대에서 말한 왕립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이들에게 맡겨진 직책 가운데 가장 중요한 관직은 오늘날 대통령 비서실장에 해당하는ꡐ임금의 서기관ꡑ이다. 히즈키야 임금 시절의 셉나(2열왕18,18), 요시야 임금 시절의 사반(2열왕 22,3), 여호야킴 임금시절의 엘리사마(예레 36,12)가 이 관직에 있었다. 서기관들은 성서 본문을 기록하고 편집하는 데에도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특히 사반의 가문은 신명기계 역사를 쓰는 일에 깊이 관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사제들의 경우에는 대사제가 성전이나 성전 근처의 사제 학교에서 예배와 그 밖의 직무 수행에 필요한 교육을 시켰을 것이다. 읽기와 쓰기는 물론, 노래, 악기 연주, 전례, 축제와 전례력, 종교 전통 따위가 이들의 교육 내용이었다. 사제들 가운데는 젊은 임금의 교육을 책임진 이도 있었다.(참조: 2열왕 12,3)
마지막으로 예언자들은 본디 왕립 학교(이사야, 스바니야)나 사제 학교(예레미야, 에제키엘, 말라기)에서 교육을 받았던 것 같다. 그러나 한번 예언자로서 자리를 굳힌 다음에는 저마다 추종자들을 모아 제자로 양성하였다. ꡐ예언자들의 아들들ꡑ(2열왕 20,35; 2열왕2,7)이라 불린 추종자들과 그들의 스승에 관한 구약성서의 이야기들은 이 같은 이스라엘의 오랜 예언 전승을 반영한다. 엘리사와 그의 제자들은 함께 모여 사는 공간이 비좁아지자 요르단강에 내려가서 나무를 메어와 집을 넓혔다.(2열왕 6,1-4) 이 이야기는 기원전 9세기에 이런 식의 사적 양성 기관을 갖춘 예언자들의 단체가 성행했음을 보여 준다. 이 양성 기관은 왕립 학교나 사제 학교와 다르다. 여기에서 뛰어난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으려고 모여든 이들은 대개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었고, 그 분위기는 철학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그리스의 철학 학파와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예언자 단체 덕분에 예언자들의 이야기와 가르침이 쓰여지고 후대에 전달되었다.(참조: 25열왕 8,4: 이사 8,16; 예레 36,17-149)
제자들을 모아 가르쳤던 세례자 요한과 예수임도 이 예언 전승과 같은 맥락에 서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요한 복음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을ꡐ아이들ꡑ(21,5; 참조: 1요한 2,18;3,7)로 부른 것도 마찬가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