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제도의 변천

 

정치 제도의 변천




  기원전 13세기 여호수아의 정복 이전에 가나안에는 여러 도시 국가들이 자리 잡았던 것 같다. 가나안을 정복한 뒤, 이스라엘인들은 각 부족의 자치권을 행사하면서 연맹을 결성하였다. 평화시에는 부족의 수장이 통치하고, 유사시에는 연맹을 뽑은 지도자를 중심으로 단결하였다. 이 지도자가 판관이다. 판관 제도는 200여년 동안 이스라엘을 지켜주었다. 그러나 이 제도는 한 임금을 중심으로 평사시에 훈련시킨 군사를 투입하여 일사분란하게 전투에 임하였던 주변의 왕국들과 맞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020년 사울이 이스라엘의 첫 임금으로 추대되면서 이스라엘에 왕정 제도가 들어온다. 사울의 뒤를 이어 다윗과 솔로몬이 나라를 다스릴 때에 이스라엘은 처음으로 통일 왕국을 이룬다. 그러나 933년 왕국은 남북으로 갈라지고 북왕국 이스라엘은 722년 아시리아 제국에게, 남왕국 유다는 587년 바빌로니아 제국에게 멸망하고 만다.


  538년 유배에서 돌아온 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한 성전 국가로 전락한다. 예루살렘 이외의 지역은 페르시아나 그리스 등 본국에서 파견된 총독이나 지방 행정관의 식민 통치를 받았다. 기원전 167년 마카베오 항쟁이 일어나 이스라엘은 잠시 독립을 쟁취한다. 마카베오 형제들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인 시몬은 143년 시리아 왕국에서 대사제직과 자치권을 얻고 하스모니아 왕조를 세운다. 그러나 하스모니아 왕조는 기원전 63년 예루살렘이 로마의 지배 아래 들어가기까지 늘 내분에 시달리고 시리아 임금들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허약하기 짝이 없는 왕조였다.


  펠레스티나를 식민지로 만든 로마는 기원전37년부터 4년까지 꼭두각시 임금 헤로데 대왕을 내세워 팔레스티나를 다스리게 하였다. 헤로데 대왕이 죽은 뒤에는 그의 아들들에게 영토가 분할되었다. 아르켈라오는 유다와 사마리아를, 필립보는 이두래아와 트라코니티스 지방을, 안티파스는 갈릴래아와 요르단강 동부 베레아를 맡았다. 그러나 기원후 6년에 폐위된 아르켈라오의 영토는 로마의 총독들에게 넘어갔고, 34년에 죽은 필립보의 영토는 잠시 시리아 지방에 귀속되었다가 헤로데 대왕의 손자 아그리빠 1세에게 넘어 갔다. 아그리빠는 39년 갈리아(오늘날 프랑스)로 귀양간 안티파스의 영토도 차지하였다. 44년 아그리빠 1세가 죽자 그가 차지한 이스라엘 전역은 열일곱 살의 어린 아들 아그리빠 2세 대신 로마 총독들에게 맡겨졌다. 그러다가 아그리빠 2세는 53년에 옛 필립보의 영토 이두래아와 트라코니티스를, 56년에는 갈릴래아와 베레아까지 넘겨받았으나, 그 밖의 다른 지역은 계속 로마 총독들이 다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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