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 솔로몬의 성전(제1성전)

 

성전




(1) 솔로몬의 성전(제1성전)


  솔로몬의 성전에 관한 기록은 1열왕 6―7장과 2역대 3―4장에 나오지만 명확하지 않거나 서로 상충되는 부분들이 많아서 흔히 에제 40―43장으로 보충하고 수정한다. 솔로몬 성전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다만 성서에서는 지성소가 있던 자리가 본디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이었는데, 다윗이 그것을 은화 50세겔(2사무 24,24) 또는 금화 600세겔(1역대 21,25)을 주고 사들였다고 한다.


  솔로몬의 성전은 동서로 길게 않은 직사각형 건물이었다. 성전의 크기는 길이가 27미터, 너비가 9미터, 높이가 13.5미터쯤 되었다. 이 정도의 성전은 그리 큰 편이 아니다. 그러나 고대에는 성전이 일차적으로 하느님이 머무는 처소이지 오늘의 교회나 성당처럼 신자들이 모임을 갖는 곳이 아니었다. 솔로몬의 성전은 작은 안뜰과 큰 바깥뜰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두 뜰의 벽은 다듬은 돌과 향백나무 서까래로 되어 있었다. 안뜰에는 길이와 너비가 저마다 90센티미터, 높이가 45센티미터쯤 되는 번제용 청동 제단이 세워졌다. 이 제단과 성전의 현관 사이에는 ‘청동 바다’ 라고 하는 큰 물두멍을 놓았다. 이 물두멍의 크기는 지름이 4.5미터, 높이가 2.2미터, 둘레가 13.5미터쯤 되었다.


  성전의 현관에는 야긴(야킨 ‘그분이 굳건히 세우셨다’)과 보아스(보아즈 ‘그분 안에 힘이 있기를’)로 불리는 두 개의 기둥이 버티고 섰다. 청동으로 된 이 두 기둥은 높이가 8미터, 둘레가 5미터가 넘었다. 성전 본 건물은 세 부분, 곧 현관과 성소와 지성소로 나뉜다. 여기서 말하는 현관은 단순히 건물의 입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응접실과 같은 넓은 방을 말한다. 지성소에는 계약 궤를 모셨는데, 사람의 머리에 날개와 네 발이 달린 짐승 모습의 거룹 둘을 세워 그들의 날개로 궤를 덮어 보호하도록 하였다. 성소 안에는 금으로 만든 분향 제단, 빵을 차려 놓여 있었다. 그리고 제사에 쓰는 기물들은 성전 벽에 삼층짜리 곁채를 지어 보관하였다.


  고대 사회에서 국보로 통하는 신전은 한나라의 흥망성쇠에 따라, 다른 나라에서 빼앗아 온 값진 약탈물로 장식되기도 하고, 반대로 신전의 값비싼 기물들이 다른 나라에 조공으로 바쳐 지기도 하였다. 전자의 경우 이스라엘은 이교도들과의 싸움을 성전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들에게서 거두어들인 전리품은 모두 하느님께 속한 것으로 여겨 그 가운데 값진 보물들을 ‘주님의 집’ 에 당연히 바쳤다. 이와는 반대로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그 안에 만들어 놓은 값진 기물들은 그의 아들 르흐보암 통치 때에 이집트의 파라오 시삭에게 빼앗겼다(1열왕 14,25-26). 또한 후대의 임금들, 심지어 히즈키야(2열왕 18,15-16)마저도 동맹 관계를 유지하거나 조공을 바치기 위하여, 아니면 침략자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전의 금은 기물을 갖다 바치고 장식물을 떼어다 바쳤다. 우상숭배에 빠진 임금들은 이방 신들의 형상을 성전에 세워 놓기도 하였다. 아하즈는 종주국 임금인 아시리아의 디글랏-빌레셑을 만나러 다마스쿠스에 갔다가 그 곳 제단의 모형을 만들어 가지고 와서 예루살렘 성전의 제단을 아시리아식으로 바꾸었다. 그래서 요시야 임금은 종교개혁(622년)의 첫번째 사업으로 예루살렘성전의 전면적인 개축과 보수를 지시하였다. 당시에 성전은 지어진 뒤 300여년 동안 오랜 영욕과 인고의 세월을 보낸 데다가 역대 임금들의 무관심으로 낡고 방치된 상태였다. 이렇게 재건된 성전은 다시 587년 바빌로니아 임금 느부갓네살에게 철저히 약탈당하고 파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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