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법전(신명 12―26장)
신명기는 그리스어로 ‘두번째 법’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이름은 12―26장에 일련의 법 규정들을 포함하고는 있지만, 이 책의 형식이나 내용에 썩 어울리지는 않는다. 신명기는 모세가 가나안 땅으로의 진입을 눈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의 준수를 촉구하는 일종의 설교 형식으로 쓰였다. 설교의 요지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 행복과 번영을 누리고자 한다면, 주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전해 주신 율법을 반드시 성실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탈출기와 레위기는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백성에게 선포하신 법을 전하는 데에 비해 신명기는 율법에 대한 모세의 반성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권고하는 그의 노력을 보여 준다.
신명기 법전으로 분류되는 12―26장의 법 규정들은 십계명의 우선 순위를 따르고 십계명의 몇몇 조항과 뚜렷하게 연결된다. 12―13장은 제1계명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마라’를 15―16장은 제 3계명 ‘안식일과 축일을 거룩하게 지켜라’를 17―18장은 제4계명 ‘부모와 웃어른을 공경하라’를 19―21장은 제 5계명 ‘살인하지 마라’를, 22―23장은 제 6계명 ‘간음하지 마라’를 23―24장은 제 7계명 ‘도둑질하지 마라’를 25장은 제 8계명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를 각각 다룬다. 여기서도 하느님께 대한 의무에 이어 이웃에 대한 의무가 뒤따른다.
(7) 율법의 완성
율법에 대한 유다인들의 반성과 태도는 가장 긴 시편(176절)인 시편 119장에 잘 나타나 있다. 그래서 이 시편을 율법시편이라 부르기도 한다. 율법시편은 각 대목의 첫 글자가 히브리어 알파벳 22자로 시작되어, 여덟 절로 이루어진 한 대목은 매절 시작마다 같은 알파벳 글자가 되풀이되어 나타나는 ‘알파벳 노래’이다. 이 시편에 나오는 중요한 통찰들을 몇 가지 열거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율법은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이요 그분의 가르침이다. “행복하여라, 그 길이 온전한 이들/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걷는 이들!”(1절; 참조 26-27.33-35절 등). 둘째, 율법은 이스라엘인들에 짐과 괴로움이 아니라 큰 재산이요 기쁨이다. “온갖 재산을 얻은 듯/ 당신 법의 길로 제가 기뻐하나이다”(14절; 참조: 24.72.92.143절) 등. 셋째, 이스라엘은 율법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사랑한다. “저는 당신 계명으로 기꺼워하고/ 그것을 사랑하나이다”(47절; 참조 113.119.159.163절 등). 넷째, 율법을 실천하면 구원을 얻는다. “주님, 저는 당신의 구원을 바라며/ 당신의 계명을 실천하나이다”(166절;참조 50-51.81.88.93-94.134.146절 등).
유다인들은 율법을 이렇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데, 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가? 아마도 율법에 대한 예수님과 바울로 사도의 비판적인 말씀 대문에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과 바울로 사도는 율법 자체를 문제시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율법에는 분명 하느님의 뜻이 담겨 있다. 예수님은 언제나 율법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알아보고 실천하라고 하셨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고 하신 예수님의 선언은 바로 이를 두고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과 바울로 사도가 비판한 것은, 율법의 시행세칙에 매달려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보지 못하거나 일부러 지나치는 ‘율법주의’였다. 예수님은 율법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사랑의 두 가지 중대한 계명, 곧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밝혀 주셨다(루가 10,25-28).
율법에 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는 또 다른 원인은, 율법을 의무 규정으로만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율법을 동양사상의 도와 연관시켜 생각하면 이런 의무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율법은 하느님께 가는 길이요 가르침이 그것은 하느님께 대한 도리요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인 것이다. 도를 닦고 안 닦고는 형법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도를 훌륭하게 닦는 사람은 올바른 인간이 되고, 자신뿐 아니라 주변의 다른 사람들까지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 율법을 단순히 윤리 도덕의 지침과 규정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인간이 마땅히 닦아야 할 덕이요 지켜야 할 도리로 이해한다면, 형식적이고 경직된 율법주의에서 좀더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