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바탕으로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풀어 놓은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성서를 읽을 때 사건으로서의 역사가 아니라 기록으로서의 역사를 먼저 대하게 된다. 그렇지만 사건과 기록을 따로따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건이 먼저 일어나고 그 사건의 의미를 밝혀 후세에 전달하기 위하여 기록이 이루어졌으므로 성서의 기록 뒤에는 언제나 사건이 있었음을 마음에 두어야 한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공부하는 목적은 성서의 역사 기록을 학문적으로만 탐구하는 데에 있지 않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성서에 소개된 사건들의 뜻을 깨닫고 그 뜻을 오늘의 현실 안에서 되새기는 데에 필요하다. 현대인들과 달리 고대인들은 역사의 첫 번째 기능을, 사건의 사실을 확인하고 정확하게 알리는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무슨 일이 있었는가보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 또는 그 일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들에게 역사는 사건의 참뜻, 곧 사건의 진실을 전달하는 수단이었다. 그들은 진실을 올바로 전하기 위해서 사실을 다소 과장하거나 수정하기도 하였다. 이 점은 성서 저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현재 이스라엘의 역사는 고문서학, 고고학, 언어학, 인류학, 사회학, 해석학 등 다양한 학문의 도움을 받아 가며 폭넓게 연구되고 있다. 엄청난 양의 논문과 글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학자들 사이에서 완전한 의견 일치를 본 내용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의견의 불일치는 흔히 이스라엘의 역사를 전해 주는 사료들의 진위 여부나 다양함 때문이 아니라, 사료들에 대한 해석의 차이 때문에 일어난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루면서 우리가 내세우는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성서 저자가 역사 기록으로 제시한 첫 번째 사료로 삼는다. 이는 성서 외적 증언인 고대 근동의 문헌과 고고학적 발굴에 힘입어 역사적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실히 드러나고 판명되지 않는 이상, 이스라엘 역사와 관련된 성서의 증언을 참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둘째, 가능한 한 성서 외적 증언을 폭넓게 수요하되 성서의 역사 기록을 보완하고 그 배경을 밝히는 데에 그 증언을 이용한다. 성서 외적 증언을 다룰 때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성서 외적사료들도 성서의 기록들처럼 서로 상충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성서 외적 사료와 성서 기록이 서로 맞지 않을 때에, 무조건 전자가 후자보다 더 신빙성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역사적 사료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둘 다 정당한 비판과 학문적 검증을 거쳐야 한다.
셋째, 성서 본문에 나오지 않아서 이스라엘 역사의 흐름에 공백이 생긴 부분은 필요한 대로 성서 외적 증언과 일반 역사 문헌의 도움을 받아 재구성 한다.
이스라엘 역사의 범위는 어떻게 정할 것인가? 성서학자들 가운데에는 이스라엘 역사의 시작을 이집트 탈출로 보는 이들도 있으나, 우리는 성서 본문에 따라 성조 시대로 삼는다. 그리고 이 역사의 끝은 기원후 2세기 유다인들과 유다교의 상황으로까지 넓힌다. 한편 창세 1-11장의 내용은 비록 사람들의 구체적 삶이 그 뒤에 깔려 있기는 하지만 역사적인 사건에 바탕을 두지 않기 때문에 이스라엘 역사에서 제외 한다. 그 대신 성조들이 등장하기 이전의 고대 근동사를 뭉뚱그려 살펴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