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조 시대 – 아브라함의 순례

 

아브라함의 순례




  성조설화가 역사적 사실의 정확한 기록이 아니라 하더라도 창세 12-50장을 황당무계한 기록, 또는 아무 쓸모도 없는 문헌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성조 이야기의 바탕에는 역사에 발자취를 남긴 신앙인들의 진실한 삶이 자리잡고 있다. 그들 가운데 으뜸은 역시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의 고향에 관해서 성서는 두가지로 증언한다.


  첫째, 창세기 저자는 아브라함의 고향을 하란으로 제시한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창세 12,1) 하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아브라함은 하란을 떠난다(창세 12,4). 메소포타미아 북쪽에 있는 이 성읍 하란은 다른 곳에서 아람-나하라임(두 강 사이, 곧 메소포타미아: 창세 24,10; 신명 23,5; 시편 60,2)과 바딴-아람(창세 25,20; 28,2.5-7)으로 불린다. 두 이름 다 ‘아람’을 포함하는데, 이로써 아브라함과 그의 씨족이 아람족에 속하였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실제로 이스라엘인들이 맏물을 봉헌하기 전에 주님의 제단 앞에서 고백하도록 명한 신명 26,5의 내용은 이 추측을 더욱 뒷받침해 준다. “저의 조상은 떠돌아다니는 아람인이었습니다. 그는 몇 안 되는 사람들과 이집트로 내려가 이방인으로 살다가, 거기에서 크고 강하고 수가 많은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창세 12장과 24장에서 말하는 ‘고향’은 아브라함의 출생지라기보다 그의 친족이 머물러 살던 곳을 의미할 수 있다. 우리 풍습에서도 고향은 곧잘 자기의 출생지보다 친척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을 뜻한다. 이 곳 하란에 사는 셈족들은 달신 ‘신’을 섬겼다.


  둘째, 같은 창세기 저자가 다른 곳에서는 우르를 아브라함의 고향으로 소개한다. (창세 11,28.31). 이 전승에 따르면 하란은 아브라함이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도중에 머무른 임시 정착지일 뿐이다. 1930년대에 메소포타미아 남쪽의 옛 도시 우르의 유적지가 대대적으로 탐사되기 전까지 이 우르는 하란에서 북서쪽으로 3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시리아의 우르파 또는 헷족 영토의 우라로 여겼었다. 그러나 고고학 또는 고문서학의 발견으로 우라라는 이름의 도시들이 소아시아의 여러 곳에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우르에 덧붙여진 갈대아(창세 11,31; 15,7)는 메소포타미아 남쪽의 바빌로니아를 가리킬 뿐, 메소포타미아 북쪽과 같은 곳으로 보는 예가 없었다.


  우르가 메소포타미아 남쪽의 옛 도시 우르와 같다면, 아브라함의 믿음과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부터 우르 지방에는 찬란한 수메르 문화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세계에서 최초로 문자를 만들어 사용하였고, 창세 1-11장의 이야기에 영감을 불어 넣은 것으로 보이는  ‘길가메쉬 서사시’도 이 곳에서 나왔다. 또 이곳의 유적지에서 바벨탑 이야기의 배경이 된 거대한 신전, 지구라트가 발견되었다. 이 지역에서는 셈족의 달신인 신에 해당하는 난나르를 섬겼다. 이스라엘인들은 아브라함을 혈통상 자신들의 선조로 내세우는 것은 물론, 믿음 면에서도 그를 참다운 조상으로 고백한다. 그가 하느님의 명령을 받들어 그 당시 종교와 문화의 중심지였던 큰 도시 우르를 미련 없이 떠나 떠돌이 유목민의 신세를 기꺼이 택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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