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조들의 이름
창세기 저자가 전하는 성조의 역사는 가나안을 향한 아브라함의 순례에서 시작하여 요셉과 그의 형제들이 이집트에 진출하는 이야기로 끝난다. 고대 근동의 문헌에도 성조으이름과 풍습이 비슷한 반유목민 족장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은 기원전 2000년대 전반기에 비옥한 촛ㅇ달을 주름잡던 인물들이었다. 성조들의 이름은 주로 그 시대에 메소포타미아와 팔레스티나 지역에 널리 퍼져 살던 아모리족의 인명과 일치한다. 예를 들면 야곱은 메소포타미아의 샤가르-바라르에서 발견된 기원전 18세기의 문서, 힉소스족이 남긴 문헌(족장의이름으로 등장), 마리에서 발견된 토판 문서 등에 나타난다. 아브람이라는 이름은 바빌로니아 제1왕조 (1850-1530년경)의 문헌과 마리 문서에 나온다. 또 야곱의 아들 가운데 베냐민은 마리 문서에서 어느 큰 부족의이름으로 등장한다. 그 밖에 즈불룬, 단, 레위, 이스마엘 등의 이름들도 마리 문서에 나온다. 고대 근동의 문헌들이 증헌하는 대로라면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등은 확실히 기원전 20-15세기에 주로 팔레스티나에서 활동한 북서 셈족 출신의 족장들이었다.
성조들의 이름뿐만 아니라 창세기의 성조설화의 여러 사건들도 고대 근동의 문헌에 잘 반영되어 있다. 누지 문서는 기원전 15세시 동부 티그리스강 유역에 가장 널리 분포되어 살던후리족의 혼인계약, 법률전승, 생활습관 등을 비교적 상세하게 보고하는데, 성조들의 관습과 유사점이 많다. 예를 들어 사라가 임신을 못하자 몸종 하갈을 아브라함의 첩으로 들어앉힌 이야기(창세16,1-4)는 부부 사이에 아이가 없으면 아내가 남편에게 자기를 대신 할 첩을 얻어 주도록 규정한 누지 문서의 혼인계약과 일치한다.
그러나 이런 산발적인 문헌 고증들에 의지하여 창세 12-50장의 내용을 역사적 문헌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그리고 그의 열두 아들로 이어지는 성조 이야기는 무엇보다 모험담과 전설의 성격을 띤다. 이 이야기를 쓴 목적은 정확한 역사적 기록을 남기려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기원을 밝히고 후손들에게 민족적 단결과 정기를 굳게 지켜나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동시에 성조설화는 이스라엘과 이민족들 사이의 관계를 설명한다. 아람족 곧 시리아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손자가 그 원조이다. (창세 22,20-24. 미디안족은 아브람함의 다른 아내 크투라가 낳은 자식에게서 유래한다. (창세 25,1-4). 열두 부족으로 갈라진 이스마엘인들은 아브라함이 사라의 몸종 하갈에게서 얻은 이스마엘의 자손들인데(창세 25,12-16), 오늘날 이스라엘인들은 이들을 아랍인들로 간주한다. 이런 식의 설명은물론 타민족의 입장에서 볼 때, 다분히 인위적이요 자기본위적이다.
성조설화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성조들은, 이스라엘 민족을 탄생시키시려고 자신들을 선택하고 방문하시어 복된 계약을 맺으신 하느님께 충실한 삶으로 응답하였다. 성조 아브라함은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주님께서 가라고 명하신 순례의 길에 나섰으며 외아들을 번제물로바치라는 그분의 명령에도 주저함 없이 따르는 믿음을 보였다. 야곱은 형 에사오에게서 장자권과 축복을 가로채고 그의 분노를 사서 가나안을 떠나 방랑의 길에 들어섰지만, 하느님을 충실히 섬기며 자기에게 닥친 역경을 슬기롭고 용감하게 헤쳐 나갔다. 요셉은 형들에게서 질시와 미움을 받고 이집트로 팔려가는 신세가 되었으나, 늘 하느님을 경외하고 의롭게 살려고 노력한 결과 이집트의 재상이 되어, 팔레스티나에서 기근으로 생명을 위협받는 부모와 다른 형제들을 구출해 냈다.
성조 이야기의 일관된 주제는 하느님께서 순례의 길로 이스라엘의 선조들을 친절하게 이끄셨다는 것이다. 선조들은 인간적인 약점과 잘못 때문에 자칫 안주나 방황에 떨어질 수 있었으나, 그들이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의롭고 용기있게 처신하는 한, 그들에게 복을 내려 주시고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해 주셨다. 이리하여 성조 이야기는 그 세부 사항들의 역사적 사실 여부와 관계 없이 이스라엘의 기원을 밝힌다는 본디 의도를 뛰어넘어 온 인류에게 하느님을 향한 순례 여정의 기본 방향을 제시하면서 구세사의 초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