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민족의 형성과 가나안 정착
한 부족 집단이 민족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이 집단은 역사적으로 중대한 사건을 함께 체험하고 주체 의식을 지녀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모여 살 수 있는 땅을 소유해야 한다. 이스라엘 민족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은 이집트의 노예살이와해방을 함께 체험하면서 신앙공동체로서의 주체 의식을 가지게 되었고, 가나안에 정착함으로써 한데 모여 살 수 있는 땅을 마련하였다. 이 과정을 살펴보자.
1. 이집트 탈출
이집트 탈출은 이스라엘 민족의 종교사에서 가장 깊은 흔적을 남겼던 체험이다. 그래서 많은 서서학자들은 이스라엘의 역사가 성조 시대가 아니라 이집트 탈출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가. 하비루인들
성서는 이집트 탈출이 이집트의 북부 고센 지방에서 파라오의 석축작업에 동원되어 노예 생활을 하던 한 무리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전한다. 1887년 상 이집트에서 발굴된 아마르나 문서 (기원전 14세기에 쓰인 것으로 추정됨)에서는 고대의 시리아- 팔레스티나와 그 인근 지방에서 평화를 위협하던 자들을 하비루 EH는 하피루라고 불렀다. 학자들은 처음에 이들을 같은 자음으로 표기하는 히브리인들과 동일한 민족으로 보았다. 그러나 고대 근동의 여러 지역에서 더 많은 문서들이 발견되면서 이들은 히브리인드과 같은 혈통과 언어와 문화를 갖춘 민족 집단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마리(기원전 18세기)와 알라라크(기원전 17세기와 15세기)에서 출토된 문서들은 하비루인들이 성조 시대에는 언제나 상부 메소포타미아에 살고 있었음을 증언한다. 이처럼 상부 메소포타미아에서 시리아-팔레스티나를 거쳐 이집트에 이르기까지 기원전 2천년기에 고대 근동 곳곳에 흩어져 살던 하비루인들은 안정된 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떠돌던 하층민들로 볼 수 있다. 범법자들, 용병들, 노예들, 반란자들이 이 부류에 속하였다.
그러면 멀리는 기원전 20세기 무렵부터 가까이는 11세기 무렵까지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팔레스티나, 이집트 전역에 흩어져 살던 하비루인들을 이스라엘의 선조로 볼 수 있을까? 앞에서 밝혔듯이 성서에서는 히브리라는 말을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한다.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키기도 하고 소외 집단이나 천민들을 가리키기도 한다. 첫 번째 의미로서는 하비루인들과 이스라엘 선조들을 같게 볼 수 없다. 그러나 두 번째 의미로는 서로 연결이 된다. 하비루인들이 어떤 한 종족이 아니라 종족과 언어를 달리하는 잡다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의 소외계층을 일컫는 말이라면, 이집트 북부 고센 지방에서 살던 히브리인들(탈출 1-5)도 이런 소외계층에 속하였다고 할 수 있다. 공민권이 없었던 이 소외 계층은 용병으로 고용되어 비정규군으로 전쟁에 가담하기도 하였고(아마르나 문서), 지체 높은 사람들의 피보호민으로 몸붙여 살거나 노예로 팔려가기도 하였다.(누지 문서).특히 이집트에서는 수많은 하비루들이 파라오의 갖가지 석축작업에 강제노역자로 동원되었는데, 고센 지방에 살면서 벽돌 만드는 일을 하던 이스라엘의 조상 히브리인들이 바로 이런 강제노역자들이었을 것이다. 한편 하비루인들 가운데 능력이 있는 자들은 높은 지위에 오르기도 하였다(기원전 12-11세기 바빌로니아 문헌). 창세 37장 이하에 나오는 요셉의 이야기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음직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