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집트를 빠져 나왔겠는가? 탈출 12,37을 보면 장정만 60만 명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것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 어린이, 여자, 십대, 노인 등 딸린 식구들끼리 합하면 200만 명도 더 되었을 것이다. 이 같은 숫자는 후대의 이스라엘 인구수를 보아서도 불가능하고, 파라오에게서 히브리 영인의 사내아이를 모두 죽이도록 명령을 받은 산파들이 단지 둘 뿐이라는 기록(탈출 1,15)과도 모순 된다. 학자들은 그 당시 이집트 전체의 인구가 약 280만 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더구나 현실적으로 시나이 광야는 그 십분의 일(가축 수까지 합하여)을 먹여 살릴 만한 초원과 물도 제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 시나이 반도에서 살고 있는 베두인족들을 보더라도 모두 합해 봐야 4만 명을 넘지 못하고,19세기에는 5천 명도 안 되었다.
따라서 소수의 단체가 이집트를 탈출한 것으로 추측되는데, 기껏해야 일 이천 명 정도의 노예집단이었을 것이다.
라. 탈출 경로
실제로 어떤 길을 통해서 이집트를 탈출하였는가? 아홉 가지 재앙 설화에서 모세가 파라오에게 사흘 길의 광야에 나가 야훼께 제사를 지내게 해달라고 청했을 때(탈출 5,3;7,16.26 등), 파라오는 고센 땅(8,21)이나 가까운 이집트 변방(8,24)에서 제사를 드려도 좋다고 허락한다. 그러나 모세는 파라오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는 야훼께 대한 제사를 구실로 이스라엘백성과 더불어 파라오 밑에서의 노예살이를 청산하고 자유를 쟁취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파라오의 권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나이 광야로 나가야 했다.
시나이 광야로 나가는 가장 가까운 탈출로는 북쪽 길(라메세스에서 오늘날의 엘-콴타라 근처를 지나 가자로 가는 길), 곧 ‘불레셋인들의 땅으로 가는 길’이었다(탈출 13,17).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 길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지 않으셨다. 그 곳 국경 수비대와 맞닥뜨려 전투라도 벌어지는 날이면 그들이 마음을 바꾸어 이집트로 되돌아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원전 13세기에, 지중해변을 따라 팔레스티나로 뻗어 이 길에는 아시아인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이집트 요새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하느님은 이 노예집단의 지도자로서 앞장서시며 시나이 광야로 가는 험난한 여정을 친히 인도하셨다. 그들은 수르 광야의 관문이 수꼿을 떠나 에담에 진을 쳤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밤낮으로 행진할 수 있도록, 그들을 앞장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기둥속에서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을 떠나지 않았다”(탈출 13,21-22). 여기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사막의 더운 바람(Sirocco) 때문에 자주 일어나던 모래구름, 천둥과 번개 같은 기상현상을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북쪽 길을 버리고 남쪽 길을 택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갈대바다에 이르렀다. 갈대바다의 위치를 두고 여러 가지 의견이 있다. 우선 칠십인역에 따라 전통적으로 홍해가 제시되었다. 홍해는 시나이 반도 동쪽 바다인 아카바만(참조:1열왕 9,26; 예레 49,21)을 가리킬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서쪽 바다인 수에즈만을 가리킨다. 탈출 14,21에서는 강한 동풍이 바다를 밀어붙여 이스라엘인들이 마른 땅을 걸어가도록 했다고 하고, 22절에선는 더 극적으로 물이 양쪽으로 갈라지면서 벽을 만들어 이스라엘 사람들의 바다 횡단을 도와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학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처럼 갈라진 홍해를 바른발로 건넜다는 기록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슬기로운 지도자였던 모세가 백성을 드넓은 바다로 이끌고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성서학자들을 갈대바다로 옮긴 히브리 원전의 얌-수프(탈출 10,19; 15,4)를 홍해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는 데에 동의한다. 왜냐하면 홍해에는 담수 지역의 식물인 갈대가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중해로 흘러드는 나일강 하류 삼각주에 있는 타니스의 북쪽 멘잘레호나 북동쪽 시르보니스호, 아니면 좀더 남쪽의 팀샤호나 ‘쓴물 호수’(참조: 탈출 15,22-25)를 이집트 탈출의 무대로 미루어 짐작한다. 이들 지역에는 갈대가 자라고, 홍수로 자주 범람하지만 평상시에는 마른발로 건널 수있는 얕은 늪지대가 넓게 퍼져 있었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대로 하느님께서는 북쪽 길을 원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남쪽 길, 팀샤호나 ‘쓴물 호수’로 난 길이 더 유력하다 하겠다.
모세가 이런 늪지대를 탈출로로 택한 것은 전략적 이유에서일 것이다. 도망가는 이스라엘 백성은 행장이 가벼운 반면, 그들을 뒤쫓은 이집트 군사들은 무거운 병거로 무장한 탓에 늪지대를 통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 갈대바다가 갈라졌다는 성서의 기록을 자연 현상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이런 늪지대에 동쪽에서 사막의 더운 바람이 불어닥치면 일시적으로 물이 마르거나 갈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자연 현상을 거슬러서 기적을 행하시기보다 그것을 이용하여 하시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이집트 탈출에 관하 이 같은 설명은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이지 성서 이외에 이를 증명할 만한 역사적 또는 고고학적 증거는 없다. 또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할지라도 자존심이 강한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자신들의 실패담을 굳이 기록해 놓거나, 한 무리의 노예집단의 탈출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관심을 기울여 문헌을 남겨 놓았을 리도 없다.
이상 세 가지 물음에 대한 답변은 적어도 이집트 탈출이 고대 근동의 역사에 분명히 자리잡고 있음을 증언한다. 그러나 탈출기 저자의 역사적 관심은 세부 사항에 이르기까지 사실을 충실히 묘사하고 전달하려는 데에 그 목적이 있지 않다. 저자의 관심은 단지 하느님께서 역사 안에서 활동하신다는 진실을 보여 주려는 데에 있다. 곧 이스라엘의 억압과 해방이 역사 안에서 일어났고,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실제 역사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으셨으며, 이 계약이 역사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진실이 올바로 전달되는 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언제 어디를 거쳐서 이집트를 빠져 나갔느냐 하는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때로는 역사적 진실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사실을 과장하거나 각색할 수도 있다. 이 점에서 고대인들의 역사 개념이 우리의 그것과 다르다는 앞에서의 지적을 다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