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정착-신명기계 역사와 역대기계 역사

 

가나안 정착


 


  기원전 13-12세기는 이집트 탈출, 시나이 광야에서의 방랑생활, 가나안 정착 등 이ㅡ살엘의 기원이 된 중요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 고대 근동의 두 큰 세력, 곧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가 처한 상황을 살펴보면, 이스라엘처럼 작은 민족이 어떻게 이처럼 큰 사건들을 일으킬 수 있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당시에 메소포타미아의 패권을 쥐고 잇던 아시리아인들은 세력이 매우 약해진 상태였고, 이집트인들도 기원전 1295년 카데쉬 전투에서 북쪽에서 밀고 내려온 헷족의 공격을 힘겹게 막아 낸 다음 또다시 크레타와 그리스와 소아시아 서쪽 해안(리디아)에서 배를 타고 쳐들어온 해양민족의 공격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런 힘의 공백을 틈타 팔레스티나의 도시국가들은 한편으로 자기네들끼리 세력 다툼을 벌였고, 다른 한편으로 하피루인들이 일으키는 소요에 끊임없이 휩싸였다. 이 시기에 팔레스티나 소왕국의 제후들이 이집트의 파라오에게 써 보낸 아마르나 문서들은 이 같은 상황을 잘 묘사한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도 바로 이런 무질서와 소요에 힘입어 이루어졌고 동시에 거기에크게 한 몫 이바지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은 한 번의 무력정복으로 이루어진 것일까 아니면 점진적인 진입으로 이루어진 것일까? 여호수아서는 가나안 땅이 야훼의 도움을 받아 순식간에 정복되었고, 그 뒤에 12부복에게 나누어졌다고 전하다. 반면에 판관1장은 여러 무리가 오랜 세월 동안 가나안 땅에 조금씩 진입해 들어간 것으로 제시한다. 과연 실제 역사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먼저 같은 계열인 두 책의 저자가 한 사건을 두고 왜 이처럼 서로 다르게 설명하였는지 살펴보자.




         가. 신명기계 역사와 역대기계 역사




  구약성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태동에서 바빌로니아 유배까지의 사건들을 다루면서 두 가지 서로 다른 역사적 관점을 드러낸다. 하나는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신 시나이계약을 중요시하는 관점이다. 이 관점은 모세오경의 마지막 칙인 신명기의 신학 사조를 반영하는 것이므로, 성서학자들은 이를 신명기계 역사라고 부른다. 신명기계 역사는 히브리어 성서에서 여호수아서, 판관기, 사무엘 상․하, 열왕기 상하에 반영되어 있고, 예레미야서를 비롯한 일부 예언서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신명기계 역사는 이스라엘 최초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신명기계 역사서의 저자들은 오랜 구전 전승과 더불어 유다나 이스라엘의 왕조실록 등, 다른 책들과 문헌들을 참조하였다. 예를 들면 ‘야살의 책’(여호 10,13;2사무 1,18)이나 ‘왕위 계승 설화’(2사무 9-20장; 1열왕1-2장) 같은 문헌들이다. 그런데 옛 사료들은 같은 사건을 가지고도 세부사항에서 서로 다르거나 심지어 상충되는 서술을 하는 경우도 많다. 신명기계 역사서의 저자들은 이렇게 내용이 서로 다른 사료들을 다루면서 경직된 태도를 보이지 않고, 그 내용이 시나이 계약을 중요하게 부각시키는 한 관용을 보이면서 상이한 서술과 다양한 묘사들을 그대로 수용한다. 이 역사의 신학 사조에 관해서는 성서의 낱권을 다루는 성서입문 하권에서 자세히 밝히기로 한다.


  다른 또 하나의 역사적 관점은 역대기계 역사라 부르는데, 역대기 상․하, 에즈라서와 느헤미야서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역대기계 역사는 하느님께서 다뒷과 맺으신 계약을 중요시하며, 다윗 왕국의 역사를 가장 길게 다룬다. 역대기계 역사가는 신명기계 역사가와 달리 다양한 사료에 대하여 매우 치밀하고 경직된 태도를 보인다. 그는 입수한 다양한 사료에서 자기의 고유한 신학 사조에 조금이라도 어울리지 않거나 모순 되는 내용을 발견하면 과감히 그것을 삭제하거나 수정한다. 이 역사의 신학 사조에 관해서도 성서입문 하권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앞에서 제기한 질문, ‘가나안 정착을 두고 같은 계열의 역사서인 여호수아서와 판관기의 묘사가 왜 서로 다른가?’에 관해서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신명기계 역사가는 역대기계 역사가와 달리 사료들 사이의 다양한 전통을 존중하였기 때문이라고. 곧 그는 사료들의 다양성이 자신의 신학 사조에 크게 모순 되지 않는 한 그대로 수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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