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머리말(1,1-3)

 

제1장 머리말(1,1-3)


1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할 때, 계시를 지칭하는 용어가 바로 ᾀποκαλυψις이다. 성 예로니모 교부는 ᾀποκαλυψις라는 용어가 성서 저자들이 고유하게 사용하는 용어라고 지적한다. 70인역에서 사용되고 있는 ‘계시하다’라는 의미의 αποκαλυπτω동사는 하느님의 현현을 지칭하기 위해서 또는 그분께서 가지고 계신 계획과 그분의 정의와 구원을 지칭하기 위해서 사용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표현은 소유격 때문에 두 가지 의미로 이해도리 수 있다. 첫째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의 소유격을 목적 소유격으로 보는 경우이다. 신약성서에서 αποκαλυπτω라는 동사가 항시 종말론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계되는 최종적인 계시의 동의어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둘째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의 소유격을 주어적 소유격으로 보는 경우이다. 이 경우 구원사적 업적과 계시의 대상인 예수께서는 종말의 시대를 열어 젖히시는 분으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계시의 주체가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면, 계시의 객체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묵시록을 통해 깨닫게 될 것이다.


1절에서 볼 때 계시의 원천은 하느님이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로부터 전해 받은 계시의 내용은 “곧 일어나야만 할 일들”이다. 여기서 곧 이루어져야 할 일들이란 “내가 곧 오겠다”라는 것이다. 요한 묵시록은 그리스도의 도래를 예고하고, 그로부터 유래하는 격려의 내용만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1.당신 종들에게(1.1)


계시의 수신자들은 하느님의 종들이다. 그런데 ‘하느님의 종’이라는 표현은 이사 42,1에서 유래하는 메시아적 호칭이다. 묵시록에서는 그 호칭이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되고 있으며 나아가 하느님 나라의 시민이 되기를 갈망하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기로 한 자들에게 적용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와 역사에 대해서 아버지 하느님께로부터 받아 전해주시는 계시는 한 천사의 중재를 통해 요한에게 전달되고 있다. 여기서 요한을 통해서 인간의 상황이 두 단계로 소개되고 있는데, 첫 번째 단계에서 요한은 분명 예언의영으로 가득 찬 예언자였으나 하느님의 소리를 직접 들을 수 없기에 천사들의 소리를 통해서 계시를 전해 받아야만 했다. 두 번째 단계에서도 첫 번째 단계에서처럼 요한은 예언의 영으로 가득 찬 예언자였다. 이제부터는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는 천사들의 중재 없이 공동체 한 가운데 직접 전달된다.




2.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1,2)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라는 형태는 하느님께서 명령하신 계명들을 준수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역사적 도래 이전과 이후에, 그분의 도래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중거란 예수의 증거에 동참하는 것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는데, 그것은 하느님이 요구와 더불어 하느님의 말씀의 가장 완전한 표현이다.


‘자기가 본 모든 것’이라는 표현은 묵시록 즉 환시에 대한 것을 지칭하는 것이다. 성서에서 말한다는 것은 단순히 발언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고, 창조하고, 선별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귀만을 빌려주는 의미가 아니라 그것은 말하는 사람의 입을 향해 육체를 움직이는 것까지 포함해서 주의를기울이는, 한 인격의 행동인 것이다. 그러므로 ‘듣는다’와 ‘순종하다’라는 것 사이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 하느님의 말씀을 익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얼굴을 어느 정도 볼 수 있게 해주는 유일무이한 가시적 행위라 할 수 있다. 하느님을 본다는 것은 환희이며 말씀을 읽고 듣는 자들이 누리게 되는 행복이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시적인 분이 되셨다(요한 14,9-10).




3.복되어라, 이 예언의 말씀을…(1,3)


지복(至福)에 관한 내용이 요한 묵시록 안에서는 여기서 처음으로 언급되고 있지만 그와 동일한 표현이 묵시록 안에서 7번이나 언급된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묵시록 안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일곱이란, 충만함과 완전성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기에 여기서는 행복의 완전성이 문제의 핵심이 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요한 묵시록은 완전한 행복의 길을 제시해 주는 계시를 담고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하느님 나라의 때는 이미 이 자리에 그리고 우리 안에 현존하고 있지만, 그것은 인간의 고통스러운 역사의 시간 속에서 드러난다. 요한 묵시록은 고통스런 역사의 시간을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라고 촉구하면서, 그러한 삶이 행복과 위안을 가져다주게 될 것이라고 언명한다.   




1,1-3을 정리한다면 이 부분은 전례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이 부분 속에서 언급된 인물들 상호간의 관계는 사실상 말씀의 전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은 경로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다.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시고 신앙인들은 그 말씀을 듣고 아멘으로 응답함으로써 그 말씀에 동의를 표한다. 전례란 서로가 서로에게 말을주고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일종의 원탁이 아니라,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는 말씀을 듣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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