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편지의 인사(1,4-8)
1,4-8은 전례적 대화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부분은 묵시록의 종결사인 22,6-21과 문학적으로 유사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즉 전례의 개회 인사는 삼위 일체 하느님이 주체가 되시고, 폐회인사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체가 되고 있다. 하느님께서 지금 이 자리에 현존하고 계시고, 성령의 충만함이 주어져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승리를 거두셨기 때문에, 은총과 평화가 교회 공동체들에게 보증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묵시록의 전례 방향은 하느님에게서 그리스도에게로 옮겨가고 있다. 즉 묵시록의 종결사는 예수가 종말론적 주님이시고 구원자이시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점에서 요한 묵시록은 편지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종교의식적인 대화의 형태를 취하고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에게 보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삼위일체이신 하느님(1,4-5a)
1.1. 하느님 야훼
‘지금도 계셨고 전에도 계셨고 또 장차 오실 그분’이라는 표현은 하느님의 이름을 의미하는 것인데 8절에서 재차 언급되고 있다. 그 이름은 출애 3,14의 야훼의 이름을 신학적으로 의미를 확대시킨 것으로 야훼 하느님은 어제도 여기에 계셨고, 신앙의 눈으로 역사를 바라봄으로써 지금도 이 자리리에 계시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희망의 결실로서 다시 이 자리에 오시어 현종하실 것이다.
1.2. 성령
그분의 옥좌 앞에 있는 일곱 영이란 메시아 위에 머무시게 될 일곱 영(충만한 영을 의미)을 열거해 주는 70인역 성서 이사 11,1 이하의 내용을 암시해 준다. 성령은 계약의 보증인이요, 수호자이다. 여기서는 계약의 완성에 있어서의 그분의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상징적인 일곱이라는 표현을 성령의 모습을 지칭하고 있다. 성령은 교회를 이끌어 갈 책임을 맡고 있으며, 그래서 각 교회 공동체 안에 현존하셔야만 하시는 분이시다.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을 변호하시기 위해 로마 법정에서 변호사가 앉았던 자리를 차지하고 계시므로 성령께서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 교회 공동체들에게는 성령은 위로자가 되시는 것이다.
1.3. 예수 그리스도
여기서는 그리스도께 세 가지 호칭들이 부여되고 있는데 이 호칭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요약해 준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살아나신 분’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지칭하는 것이고, ‘땅위 왕들의 지배자’라는 것이 하느님 우편에 들어 올려 지심으로서 얻게 된 주님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분께서 ‘충실한 순교자로서의 증인’으로 당신 자신을드러내신 것은 그분의 수난과 죽으심을 통해서이다.
2.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사목적 행위와
그에 대한 공동체의 응답(1,5b-6)
이 찬미가는 구약의 예언들이 성취되었음을 선포하고 있는데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업적의 내용을 세가지로 선포하고 있다.
2.1.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
여기서 ‘사랑하다’라는 동사는 현재분사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지금 베풀고 계시는 사랑은 지난날 그분께서 인간들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받아들이심으로써 구체적으로 표명되었다. ‘사랑하다’라는 동사가 예수의 구체적인 행위를 묘사할 경우, 신약성서 어느 곳에서도 묵시 1,5b에서처럼 현재형으로 사용되고 있는 곳은 없다. 즉 묵시 1,5b는 그리스도께서 오늘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2.2. 당신 피로 우리를 지에서 풀어주신 분
예수께서 이루신 첫번째 업적은 당신의 사람들에 대한 구원사적 사랑의 업적이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당신 피로써 우리를 죄에서 풀어 주셨다. 즉 파스카적 구속을 의미한다.
2.3. 우리로 하여금 왕국을 이루게 하시고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들이 되게 하신 분
순교자와 같이 진실한 증인으로서의 당신의 모습을 표명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위와 같이 두가지 결과를 가져다 주게 되었다. 묵시록의 맥락적 관점에서 볼 때, 사제직이란 제사 거행과 전례적 찬미를 위한 것이라는 데에는 원칙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수 없지만, 세례 받은 모든 이가 사제가 된다는 것은 우선적으로 세상을 위한 것이 아니고 하느님을 위한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은 하느님의 사제들이고 하느님을 찬양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2.4. 아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업적을 상기시키는 공동체의 응답으로서의 1,5b-6은 묵시록 다른 곳에서 길게 언급하고 있는 찬미가의 내용들과는 달리, 부활하신 그분께 영광과 권세라는 이중적인 찬미가를 드리고 있는데, 이것은 매우 논리적이라 할 수 있다. 영광과 권세를 통해 신앙인들은 그리스도의 승리를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승리에 대한 공동체의 고백에 대해서 전 공동체는 유다교와 그리스도교가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아멘이라는 말로 응답을 하고 있다.
3. 묵시록의 서문을 종결짓는 찬미가(1,7-8)
요한 묵시록의 저자는 신앙 공동체의 아멘이라는 응답에 뒤이어, 주도권을 갖고 독자들에게 1,3에서 이미 정의된 바 있는 그런 의미로 예언을 전한다. 묵시록 저자는 여기서 다니엘 7,13과 즈가12,10을 혼합해서 인용하는데, 이것은 그리스도 신자들이 거행하는 전례가 구약의 예언서 본문의 독서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도래를 알려주는 것이다. 그분은 구름을 타고 오시는데(다니7,13), 구름은 인간의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하느님의 영광을 뒤덮고 있는 신적인 표상이다. 이와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신적인 분으로 오시지만, 영광을 번뜩이며 오시는 것이 아니라, 구름에 가리워진 채 오신다.
요한 묵시록은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오신다는 것과 그분의 도래가 목전에 다다랐다는 확신을 강조해서 표명해 준다. 그러기에 우리가 현재 과연 교회 공동체에 속해 있는가 아니면 이방 민족들 가운데 속해 있는가에 따라 그분께서 오시는 형태는 구분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교회 공동체의 관점에서 볼 때 그리스도께서는 세 가지 방식으로 오신다고 볼 수 있다. 첫째, 그리스도께서는 심판하시기 위해서 오신다. 그러나 공동체들을 치유하고 위로해 주기 위한 심판이다. 둘째, 첫 번째 것을 보완해 주는 것으로서 그리스도께서는 용기를 북돋아 주시고, 보상해 주시기 위해서 오신다. 셋째, 교회 공동체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권한은 영속적인 형태로 행사되고 있다. 그러한 권한은 말씀을 실천하는 행위와 행동을 유발케 하는 말씀으로 행사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권한은 강생하신 로고스에 정확하게 걸맞는 것으로서, 본질적으로 말씀 자체라고 할 수 있다.
3.1. 그렇습니다. 아멘
여기서는 희랍어와 히브리어가 동시에 사용되고 있으나 의미는 같은 것이다. 여기서와 같은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는 표현은 마르 14,36에 나오는 아빠/아버지라는 식의 표현이다. ‘그렇습니다’라는 용어가 묵시록에 3번 나타나는데, 그것이 때로는 응답을 지칭하지만, 인간들 편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아들이신 예수와 성령 그리고 하느님 계획의 일체성을 표현해 준다.
3.2. 알파요 오메가(1,8)
요한 묵시록 서문은 이 구절을 통해 찬미가의 형태로 종결된다. 여기서는 하느님을 ①알파요, 오메가이신 분, ②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또 장차 오실 분, ③만물의 주재자로 3중적으로 찬양한다. 알파요 오메가는 시작과 마지막이라는 의미인데 이것은 모든 것의 시초에서부터 끝까지 그분께서 현존하고 계신다는 점을 지적해 주려는데 있다. 그리고 인간들의 삶은 이렇게 역사의 시작과 성취라는 두 지점 사이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시간 속에서 하느님께서는 만물의 주재자로 군림하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