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세상과의 투쟁 속에 참여하고 있는 교회
(4-5장: 일곱 봉인에 관한 책과 어린양)
요한 묵시록은 4장에서부터 고유한 의미에서 묵시적이고 예언적인 부분을 시작하고 있다. 이 4장에서부터 어조 자체가 바뀌고 있다. 또 묵시4-5장은 창조와 구속을 기리는 전례라 할 수 있다. 묵시 4장은 5장에서 소개될 봉인된 두루마리와 어린양의 출현을 위한 테두리를 형성하고 있다. 4-5장에서는 3개의 환시가 소개되는데, 하늘에 열려져 있는 문, 옥좌에 앉아 계신 분(하느님), 그리고 일곱 봉인된 두루마리를 받아 든 어린양에 관한 환시들이 그것이다. 하늘에 열려져 있는 문은 에제키엘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문’과 비교해 볼 수 있는데 요한이 본 환시 속에는 에제키엘이 전해주는 성전에서의 환시와 어쩌면 베델에서의 환시가 포개져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예언자들에게 있어서는 청각이 항시 환시보다 더 강렬하게 나타나는데 요한 묵시록에서는 그와 반대로 환시가 청각보다 더 강렬하게 나타난다.
‘열다’라는 것은 묵시록에서는 인간들에게 진리와 구원을 통교하시기 위해서, 그들을위해 개입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표명하기 위해 사용되는 은유법적 표현이다.
1. 묵시 4장의 내용 설명
1.1. 마치 나와 더불어 이야기하는 나팔소리처럼 내가 들었던 그 음성이 말하였다(4,1)
이 구절에서는 하느님께서 초대하고 계시는 분임을 알 수있다. 하느님께서는 요한을 하늘로 들어올리시어 신비들을 깨닫게 해주신다. 요한이 나팔소리처럼 들었던 그 음성은 요한에게 ‘올라오라’고 명령한다. 그 명령은 첫 번째 계약인 출애굽을 상기시켜 줌과 동시에 새로운 계약을 향하고 있다.
요한 복음에서 ‘보여주다’라는 동사는 계시를 매우 특징적으로 표명하는 용어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심오한 계획 속에서 펼쳐지게 될 역사의 흐름을 보여주시려 하시는 것이다.
1.2. 환시(4,2-8)
항시 그러하듯 요한은 우선 하나의 물체를 보는데, 여기서 요한이 본 것은 하늘에 놓여져있던 한 옥좌였다. 구약성서에서는 하늘을 하느님의 옥좌(이사66,1)로, 그리고 하느님의 천상 옥좌(시편11,4)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옥좌는 왕권을 상징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요한은 지금 세상을 심판하기 위하여 지고의 법적 권한을 갖고 있는 누군가 앞에 서 있는 것이다. 그분은 은총의 하느님, 자비의 하느님, 계약의 하느님이시다.
요한은 하느님 주위에 흰옷을 입고 있는 스물 네 명의 장로들을 보고 있다. 그들은 스물 네 개의 옥좌 위에 앉아 있는 자들로서 구원의 상징인 흰옷을 입고 있고, 금관을 쓰고 있는데 단지 장로들이라고 명명되고 있다. 그런데 흰색은 승리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스물 네 명의 장로들은 분명 승리자들이다. 월계관은 항시 승리를 상징하는 것인데, 그들은 이미 머리에 금관을쓰고 있다. 그들이 옥좌에 앉아 있다는 점에서 그물 네 명의 장로들은 왕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흰옷을 입고 있다는 점에서 전례적이고 사제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번개와 천둥은 구약성서에서 전통적으로 하느님의 현현에 연계되어 있는데 특별히 시나이 산에서의 사건을 특징적으로 묘사해 주는 것으로, 그것은 계약 사상을 상기시켜 준다.
일곱 개의 횃불은 1-2장에 나오는 일곱 등경과 혼돈해서는 안된다. 희랍 교부들은 일반적으로 하느님의 일곱 영들인 일곱 개의 횃불이 천사들이라고 말한다. 라틴 교부들은 옥좌 앞에 자리하고 계신 성령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는데, 현대 학자들은 대부분 이 견해를 따르고 있다.
4,6a와 유사한 표현은 에제 1,22에서도 나타나는데 여기서 문제의 핵심이 되는 것은 하늘일 것이고 고대 우주론에 의하면 그 하늘 위에 옥좌가 자리하고 있다. 유리바다는 출애굽기의 내용을 상기시켜 준다. 즉 장로들은 산에 올라가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보았다(출애 24,9-11).
요한은 4,6b-8에서 에제키엘서에 나오는 네 생물들에 관한 환시와 이사야의 환시로부터 영감을 받고 있다. 에제키엘서에서 묘사되고 있는 생물들은 각각 사람의 얼굴, 사자의 얼굴, 황소의 얼굴 그리고 독수리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묵시록에서는 각 생물이 그 네 가지특징적인 모습 가운데 하나만을 취하고 있고, 넷이라는 숫자는 즉시 우주의 근원적인 네 방향과 관계가 있음을 암시해 준다. 즉 이 네 생물들이 대표하고 있는 것은 Cosmos이다.
4,8b의 찬미가는 이사6,3을 연상케 한다. 요한은 이사 6,3에 나오는 ‘만군의 야훼’를 ‘만물의 주재자이신 하느님’으로 변형시켰고, ‘그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시다’를 주님은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또 장차 오시리로다‘로 바뀌었다.
그러므로 묵시 4장의 천상 전례는 요한이 고안해 낸 것이 아니라 유다인적인 모델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이 확실하며, 그러한 유다인 전례는가장 오래된 그리스도교 전례에 나오는 ‘거룩하시다’ 찬미가의 원천이거나 모델이 되고 있다.
1.3. 천상 전례(4,9-11)
이 천상 전례의 내용은 요한이 하느님으로부터 시작해서 바라본 세상 역사에 대한 계시를 담고 있다. 4,9에서는 문법적으로 미래 직설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구절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미래에도 영광과 존경과 감사를 드리는 찬미행위가 계속 반복될 것이라는 점이다.
10절에서는 창조된 세상이 하느님을 경배한 이후에 사람들이 하느님께 경배를 드린다. 하느님의 통치에 연계되어 있는 장로들은 자기들의 관을 옥좌 앞에 벗어 놓음으로써 유일하신 참된 하느님께 대한 존경과 경외심을 표명하고 있다.
11절에서는 감사의 행위를 하게 되는 동기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규명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창조주로서 찬미를 받으시는 것이다.
2. 봉인된 두루마리와 어린양(5장)
5장에서 궁궐과 제단, 옥좌와 천상 전례를 관조할 수 있었던 요한은 모든것의 창조주이시며, 역사의 주님이신, 살아 계시는 하느님께 바치는 전례에 마치 넋이 빠진 사람처럼 참관하고 있다.
2.1. 일곱 봉인된 책(5,1-3)
이 이미지는 에제키엘서에서 가져온 것이나(에제2,9-10), 여기서 언급된 두루마리는 열려져 있지 않고 일곱 개의 봉인이 찍혀 있었다는 점에서 에제키엘서에 나오는 이미지와는 별개의 것이다. 봉인된 책의 이미지는 구약성서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봉인이라는 이미지 속에는 지켜져야만 할 비밀과 보증에 관한 사고가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그 책은 하느님의 오른손에 쥐어져있다. 즉 그 책은 하느님의 뜻을 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군다나 그 책이 봉인되어 있는데, 그 모습은 로마법에 의거해서 유언서의 경우 봉인되어 있었던 것과 같다. 일부 주석자들은 봉인된 두루마리와 봉인된 유언서가 법적인 차원에서 유사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고무되어, 봉인된 두루마리가 계속 이어지는 묵시록의 내용들 속에 묘사될 사건들을 예고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하느님의 유언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일부 주석자들은 봉인된 책을 구약성서와 동일시하기도 한다.
봉인된 책을 열 수 있는 인물이 구약성서에 언급되고 있는데, 장로는 그 인물이 봉인된 책을 열 수 있는 이유가 그가 승리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해 준다. 장로가 언급한 이 승리는 두말할 여지없이 부활 날에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것을 지칭하는 것이다. 봉인된 책을 열 수 있는자가 누구인지 알고자 하는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자이다. 봉인된 책을 열 수 있는 자격을 가진자로 지칭된 사람은 승리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메시아로 기다려 왔던 자인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그 책을 건네 받으시는 분이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여시는 분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분 자신이 그 책의 내용 자체이신 것이다.
2.2. 어린 양(5,6)
여기서 그리스도께서는 옥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가운데에 살육당한 것 같은 분으로 모습을 드러내신다. 그리스도께서 서 계셨다고 소개하는 것은 승리와 부활사상에 연계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어린양은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칠 때의 상흔을 지니고 있다. 영광을 받으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육체에 상흔을 지니고 계시다는 사고는 요한적사고의 특징적인 면이다(요한 20,20)
구약성서에서 볼 때, 뿔의 이미지는 권세를 상징한다. 그 이미지가 때에 따라서는 권위나 왕적 존엄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한편 일곱이라는 숫자는 충만성 내지는 완전을 의미하는데 상징적인 숫자이다. 묵시록에서 어린양을 묘사하는 첫 번째 내용이 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악의 동물도 뿔을 가지고 있지만 일곱 뿔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오직 어린양뿐이다. 그러므로 어린양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하느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입고 계신분으로 숙고되고 있다. 그리고 일곱 눈은 일반적으로 하느님의 전지하심을 의미한다. 눈은 스스로 빛을 발하는 그리고 사물을 비추는 빛이요 등불이므로 세상을 비추는 주님의 보편적 활동을 상징하는 것이다. 어린양의 일곱 눈은 일곱 영을 대표한다. 어린양은그 일곱 눈을 통해 모든 민족들을 비추게 될 것이다.
2.3. 성도들의 기도(5,708)
모든 전례는 어린양의 영광을 기리고 있다. 두루마리를 받기에 합당하고, 봉인을 떼기에 합당한 어린양을 찬미하기 위해 모든 전례가 거행되고 있다. 어린양이 이처럼 영광의 찬미를 받는 것은 살육 당했기 때문이다.
2.4. 찬미의 노래(5,9-10)
전례는 어린양의 영광을 노래하는 것으로 확대되는데, 그것은 곧 하느님 자신의 영광을 노래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인자’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신 바 있다. 이제 그분은 어린양 즉 구속자 어린양으로 지칭되고 있다. 일부 주석학자들은 어린양의 이미지가 그 기원을 성서에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사야서 53,7처럼 야훼의 종과 어린양을 비교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요한 묵시록에서의 어린양이 이사야서의 야훼의 종에 연계된다는 것을 정당화시키기에는 충분치가 못하다. 단지 비교하는 것에 불과할 따름이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어린양의 이미지는 이사 53장을 종합 명제화 한 것이다. 이 종은 이사야의 하느님의 종에 근거하고 있는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지칭하고 있다. 따라서 묵시록에서 말하는 그리스도는 이사야서가 기술하고 있는 참다운 하느님의 종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파스카 희생제물로서 승리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파스카 어린양이시기 때문에 어린양으로 지칭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어린양은 하느님을 위해 하신 업적과 구속하신 업적으로 인해 찬미 찬양을 받으시는 것이다.
3. 묵시 5장의 신학적 요약
3.1. 구속
5장의 서두에서부터 새로운 요소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먼저 지적할 수 있는 새 요소란 “옥좌에 앉아 계신 분의 오른손에들려져 있는”(5,1) 두루마리이다. 이 두루마리는 4장과 5장의 환시를 접합시켜 준다. 그 두루마리는 옥좌에 앉아 계신 분으로부터 봉인 하나 하나를 떼는 어린양에게로 건네진다. 봉인이 떼어지는 순간, 환시의 내용들은 밝혀지게 된다. 그리고 이 두루마리는 의미론적으로 볼 때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생명의 물을 내려주신다는 근본적인 사고를 표출시켜 준다.
책은 하느님으로부터 퍼져나가는 생명을 상징한다. 그러한 생명의 혜택을 첫 번째로 받은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요한은 “어린양은 나와서 옥좌에 앉아 계신 분의 오른손에서두루마리를 받았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책(두루마리)이 어린양이 인간들에게 통교하는 구원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봉인들은 원초적 잘못을 표상하는 것인데, 그 원초적 잘못으로 인해 인간은 생명을 잃게 되었다. 예수만이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침으로써 그 생명을 인간들에게 되돌려 줄 수 있다.
피흘리는 희생제물을 연상시키고 있는 어린야의 상징은 에집트로부터 해방을 체험하기 전날 밤 히브리 각 가정의 문설주에 바르기 위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 그 조회점이 되고 있다. 요한은 그러한 상징을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시키기 위해 파스카 의식의 중추적인 부분으로 자리잡고 있는 어린양의 희생제물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의미를 근거로 삼고 있다. 요한은 인자를 어린양으로 대체시키면서 어떤 의미로 자신이 다니엘에 의해 예고된 메시아적 사건을 주석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다니엘 예언자가 전하는 환시가 세속적이고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매력적인 것일 수 있었다. 사실 그런 모습이 당대의 유다이즘이 이해했던 메시아관이기도 했다. 요한은 어린양의 상징을 사용함으로써 그런 유형의 주석에 빠져들지 않도록 모든 유혹을 단숨에 제거시켜 버린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