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증인들의 예언자적 소명(10,1-11,14)
1. 복음의 메아리(10,1-11)
이 환시는 세 부분으로 구분될 수 있다. 환시를 보는 요한은 첫 번째 환시인 1-4절과 마지막 환시인 8-11절 속에서 직접 등장하고 있지만, 두 번째 환시인 5-7절에서는 수동적으로 환시를 참관하는 자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첫번째와 마지막 환시 속에서 하늘, 바다, 땅이라는 삼항식 순서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두 번째 환시에서는 그것이 상이한 순서로 두 번에 걸쳐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같은 사실은 작은 두두마리 속에 담겨져 있는 메시지가 우주론적인 차원의 것임을 반영시켜 주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1.1. 천사와 작은 두루마리(10,1-4)
천사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는 ‘힘센’이라는 형용사는 묵시록에서 세 번이나 사용되고 있다. 천사의 머리를 휘두르고 있는 무지개는 묵시 4,3에서의 옥좌에 좌정하고 계신 창조주의 모습을 상기시켜 준다. 그것은 계약을 상징해 준다. 태양과 같이 빛나는 그의 얼굴은 개막 환시(1,16)에서 묘사한 바 있는 인자의 모습과 비슷하다. 하지만 그 천사를 그리스도와 동일시하는 생각은 결코 지지를 받을 수 없다. 그 천사는 작은 두루마리를 들고 있는 자로서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자이다. 작은 두루마리 속에 내포되어 있는 메시지가 중요성을 띠고 있다는 것은 ‘큰 소리’로 외쳤다는 것의 정당성을 입증해 주는데, 그 큰 소리는 포효하는 사자의 소리에 비교되고 있다. 그런데 사자가 울부짖는 것처럼이라는 표현 속에서 ‘울부짖다’라는 것은 황소가 소리를 낼 때 사용하던 표현이다. 한편 사자와 소는 메시아 시대가 도래할 때 함께 평화롭게 뛰어 놀게 될 두 동물이들이다(이사11,7)
천사의 그러한 외침에 대해서 일곱 천둥이 각각 제 소리를 내며 응답하였다. 일곱천둥의 소리를 통해 하느님께서 승인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1.2. 천사의 맹세(10,5-7)
이 장면은 분명 다니 12,7로부터 영감을 받고 있다. 사람들은 맹세하기 위해서 하늘을 향해 오른손을 펼쳐드는데 그런 행위는 아주 오래 전부터 사용해 오던 관습적이 모습이다. 손을 펼쳐든다는 것은 ‘맹세한다;라는 것을 의미해 주는 표현법이다. 천사가 행한 맹세의 말들은 하느님을 천지의 창조주로서의 인격을 지니신 분으로 표명하고 있다. 엄격한 의미에서의 천사의 맹세는 세가지 주장을 내포하고 있다. 첫번째 맹세는 종말에 관한 것이고, 두 번째 맹세는 준비의 시간이 주어졌다고 정확하게 지적해주는 것이며 그 시기는 오늘날에 계속 울려 퍼지는 말씀을 향한 기다림과 희망의 시기였다. 세 번째 맹세는 하느님의 신비가 성취되었음을 알려준다. 하지만 그러한 하느님의 신비는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처형되셨으나 죽음으로부터 되살려지심으로써 보증된, 하느님의 아들이 강생하신 것을 의미한다.
1.3. 복음 선포자의 선교(10,9-11)
4절에서는 하늘로부터 한음성이 들려와 일곱 천둥이 말한 것을 기록하지 말라는 명령의 내용을 전해주었다. 바로 그 음성이 이번에는 환시를 보고 있는 요한에게 천사의 손에 펼쳐진작은 두루마리를 받아들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두루마리는 어린양이 받아들게 될 두루마리가 결코 아니다. 그 두루마리 속에 쓰여진 것은 어린양의 신비 자체인 것이다. 그 두루마리 속에는 적어도 어린양의 신비의 일부인 어린양의 역사적 운명의 신비가 담겨져 있다.
작은 두루마리를 받아 먹는다는 것은 그 두루마리 속에 담겨져 있는 내용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이미지로서 에제키엘서로 거슬러 올라간다(에제2,8-3,3). 그러나 비록 복음이 실제적으로 꿀처럼 감칠 맛을 갖고 있고, 그리고 우리 자신을 변화되게 하고 우리를 세상의 무기력한 대중을 도와주는 자로 변화시키는 누룩과 같다 하더라도 그것은 쓴 맛을 내는 음식인 것이다.
신약성서의 언어 표현속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예언을 한다’라는 것은 복음을 전한다는 것과 동의어가 될 수 있다. 예언한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 선포하는 것이며, 이것이 복음에 심취한 복음 선포자가 해야 할 사명이다.
2. 두 증인(11,14)
묵시 11장은 구체적으로 두 증인을 제히해 보이는데 그들이 로마 제국에 대해서 어떻게 예언자적 선교를 수행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인 두 증인들을 통해서 묘사해 준다. 그들은 온 교회를 대표하는 자들이요, 민족들 가운데서 활약하는 예언자를 대표하는 자들이요, 모든 시대의 정치적 환경권 속에서 살아가는 교회를 대표하는 자들이다.
2.1. 성전 측량(11,1-2)
선견자 요한은 성전을 측량하도록 갈대를 부여받는데, 그것은 측량 도구로서, 성전에서 측량된 부분들은 성역으로 보존될 것인 데 반해, 나머지 부분들은 이방 민족들 손에 넘겨지게 될 것이다. 금으로 만든 갈대는 훗날 천상 예루살렘을 측량할 때 사용될 것으로서 더 이상 쇠지팡이와 유사성을 갖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측량하라는 명령은 두 가지 문제점을 야기시킨다. 첫째는 측량하는 행위의 의미에 관계되는 것이고, 둘째는 측량된 건축물에 관련된다. 만일 묵시묵학적 협약 속에서 그것이 건축이나 파괴된 것을 복구하는 것을 지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 여기서는 성전이 파괴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지적하지 않고 있기에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그리고 사흘 반이라는 축소 형태의 표현은 두 증인들의 죽음과 그들의 부활을 갈라놓는 시간격 간격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숫자는 7의 반에 해당되는 것인데, 역사를 통해 우연하게 나뉘어진 상징적 시간인 것이다. 그 역사 속에서 모든 것은 하느님과 인간들과의 계약을 방해하기 위해 작동되었던 것이다.
2.2. 두 증인과 그들의 활동(11,3-6)
측량된 성전이 당신 교회에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는 그리스도를 연상케 하는 것이라면, 두 증인들은 역사적 운명을 타고난 나자렛 예수를 표상 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다. 두 증인들이 자루옷을 걸치고 있었다고 하는 것은 그들이 영광스러운 선교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해 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루옷을 입었다는 자체가 예언자라는 것을 특징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아니며, 일반적으로 자루옷에 대해 언급할 때는 애통해 하는 태도와 회개하는 태도가 따르기 때문이다.
2.3. 짐승이 두 증인들을 죽이고 승리하다(11,7-10)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에 대해 증언할 수 있는 시간은 제한되어 있다. 그 시간은 상징적으로 삼년 육개월 동안 지속되게된다. 그 시간은 성서에서의 메시아 시대를 표상해 주는 것이다. 묵시록은 박해가 묵시록의 메시지를 듣는 교회들을 강타하고 있다는 이유로 해서 겉으로는 실패한 것 같은 침울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더 선호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들의 눈에는 사탄이 승리자터럼 비쳐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 ‘큰 도성’이라고 할 때, 묵시록에서는 항시 하느님의 적대세력인 바빌론-로마를 지칭하는 것이다. 두 증인들은 무덤도 없이 큰 도성의 광장에 내던져졌기에 11절에서 나타나는 그들의 소생은 시체를 바라다보는 모든 이들에게 대단한 감명과 충격을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죽어 있던 기간은 상대적으로 짧았다. 그 같은 사실은 예수를 제거해 버렸고 예수가 제기한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질문들을 모두 제거해 버렸다고 믿고 있는 자들이 누리게 될 기쁨도 일시적이었음을 지적해 주는 것이다.
2.4. 두 증인의 부활과 현양(11,11-13)
사흘 반이 지난 후 두 증인들에게 에제 37,5.10이 예언했던 것이 이루어지고 있다. 묵시록 저자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속한 말라 비틀어진 뼈들에 관한 신학 속에서 사용될 용어를 갖다 쓰고 있는 것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계되어 있음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전통적인 신학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아버지 하느님께서 이루신 업적이며 그것은 십자가에 처형되신 분을 하느님의 세계에 속하는 분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2.5. 결론 및 전이(11,14)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 속에서 보여진 교회론적 역사와 일곱 봉인에 관한 내용 소에서 드러난 일반적인 역사뿐만 아니라 일곱 나팔에 관한 내용을 통해서 표명된 역사의 종말과 일곱 대접에 관한 내용을 통해서 드러나게 될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영원함이 그리스도요 주니이신 나자렛 예수에게로 집중되어 있다. 그분은 일곱이라는 형태 속에서 표명되신 엠마누엘이시오, 인간이시며 동시에 하느님이신 분으로서 창조된 피조물은 그분 안에서 그 의미를 찾을 뿐만 아니라 창조 역시 성취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