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장 심판의 예고(14,6-20)
이 부분은 희마이 가득 찬 감동적인 권고 내용을 담고 있다. 황제와 제국이 자행하는 범죄를고발하는 것, 그들이 스스로의 패망을 자초하고 있다고 외치는 것, 그들의 행위가 한계 상황에 직면하고 있으며, 결국 그들의 포악한 행위들이 이제 가라앉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는 것, 그런 모든 것들은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말로써 특별히 불행의 순간을 살고 있는 시점에서는 무척 희망적인 미래를 열게 해 준다.
1. 심판의 예고(14,6-13)
1.1. 제국에 대한 심판(14,6-11)
묵시록 저자는 우상 숭배에 빠져든 제국을 상징하는 짐승들이 보여준 외적인 승리에 대한 응답으로 이 순간부터 신앙인들이 어린양과 함께 현존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었다. 여기서는 세상의 심판에 관한 주제를, 구체적으로 제국과 그를 경배하는 자들을 심판하는 것에 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6절을 보면 환시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각각의 환시는 천사가 선포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번째 천사는 하늘 가운데서 날고 있다. 그것은 그가 큰 소리로 선포하게 될 그의 말들을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가 선포하는 메시지는 영원한 복음이라고 특징지어지고 있다. 요한 복음서에서 영원한 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대부분의 경우, 핵심사상은 그리스도의 업적에 의해서 시작된 실재는 종말론적 질서에 속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데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영원한 복음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복음은 명령형으로 나타나는 세 개의 동사와 하나의 확정적인 내용 속에 요약되어 있다. 복음은 우선 하느님을 두려워하라고 요구한다. 이것은 하느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한다는 것과 관련을 맺고 있다. 교회 공동체가 바치는 경신례는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영광을 고백하고 노래하는 것 이외의 다른 목적을 지니지 않고 있다. 그분께 영광을 드린다는 것은 그분이 우리에 대해 가지고 계신 그분의 무게를 인정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끝으로 복음은 경배하라고 요구한다. 여기서 경배한다는 것은 그분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을 말하며, 그것은 전례적 행위를 거행할 때, 인간이 하느님 앞에서 간직해야 하는 태도를 지칭한다.
8절에서 두 번째 천사가 복음을 열정적으로 선포하고자 하고 있다. 그가 예고하는 내용은 바빌론의 패망에 관한 것이기에 기쁜 일이다.
세 번째 천사가 선포하는 내용을 통해 이 부분의 핵심적인 것이 표출되고 있다. 즉 심판 예고는 바빌론을 처벌하는 것으로 구체화 되었었는데, 이번에 이루어지는 심판의 처벌은 우상 곧 짐승을 경배하는 자들에게 미치고 있다. 황제 의식에 참여하는 자이면 누구든 우상 숭배자들에게 유보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하느님의 분노는 여러 개의 상이한 이미지를 통해 표명되고 있다. 첫번째 이미지는 잔에 아무것도 섞지 않고 부은 술의 이미지인데, 부었다라는 것은 18,6에서처럼 준비되었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며, 아무것도 섞지 않았다는 것은 술에 물을 타지 않았다는 것을 그래서 술이 순숫한 그대로라는 것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두 번째 이미지는 불과 유황을 연결시키고 있는 것으로 이미 구약성서에서 그런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개의 전승이 합쳐져 있는데, 첫번째 전승은 하느님께서 불과 유황을 쏟아 부우신 타락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를 대표적으로 처버하셨던 것으 상기시켜 준다. 두 번째 전승은 마지막 심판에 대해서 유다인들과 뒤이어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강박 관념처럼 갖고 있던 신앙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심판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선포되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인들은 더 이상 처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 반면 그리스도의 적은 동조자들과 더불어 패앙하기로 예정되어 있다. 유황과 불은 그 속에 빠진 자가 질식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1.2. 행복(14,12-13)
‘복되다’는 것은 묵시1,3에 이어 여기서 두 번째로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마지막 일곱 가지 재앙들이 나타나기 직전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을 제시해 주는 것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리스도교 신자는 죽는 순간부터 그러한 복됨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사용되고 있는 ‘수고’라는 용어를 2,2에서의 의미와 동일한 의미로, 즉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친 선교사의 상태를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해야만 한다면, 수고라는 것이 그러한 신앙인으로 하여금 언약된 땅에서의 휴식을 취할 자격이 있게 하는 모든 능동적 활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다시 한번 강조해서 지적할 것은 그러한 복됨이 일곱 대접에 관한 준비적 환시의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것은 오히려 재난과 처벌 속에서, 여기서 나타난 행복의 외침을 확인하도록 용기를 북돋아 준다.
2. 땅의 추수와 포도 수확(14,14-20)
본문에서 인자는 그의 손에 낫을 들고 있는데 낫이라는 용어가 이 짧은 본문 속에서 정확하게 일곱 번 나오는데 다른 곳에서는 그 용어가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 이것은 좋은 징조이기도 하다. 추수에 관한 이야기에 뒤이어 포도 수확에 관한 이야기가 소개된다. 여기서 추수는 인자에 의해서 선택된 자들이 회동하는 것을 의미하고, 포도 수확은 배척 당한 자들에게는 천사에 의해 행사되는 처벌의 이미지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도성 밖에서 흐르는 피는 두가지 방향에서 그 내용을 숙고하게 해준다. 첫째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고, 둘째는 실질적이든 상징적이든 간에 도성 밖에서의 죽음은 사도들과 순교자들, 나아가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죽음을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포도주 확에서 흘러나온 거대한 피는 순교자들의 피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