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장 심판과 은총(15-16장)
1. 묵시 15-16장에 대한 개괄적 고찰
묵시 15장은 16장에서 상세하게 설명하게 될 일곱 대접에 관한 내용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첫째, 일곱 나팔은 일곱 대접의 모델로 사용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첫번째 나팔이 땅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처럼, 첫번째 대접 역시 땅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둘째, 일곱 대접에 관한 내용은 일곱 나팔에 관한 내용에 상응한다고 할 수 있다. 일곱 대접에 관한 내용에서는 일곱 나팔에 관한 내용속에서 전해주는 메시지 중에서, 특별히 중요한 내용들을 취하여 사용하고 있다. 즉 존재들이나 사물들의 삼분의 일에만 미치게 되는 재앙들이 이제는 보다 드라마틱한 모습을 취하고 있다. 세 번째 대접은 샘물이 마실 수 없는 피로 되었다는 사실을 전해주지만, 세 번째 나팔 속에서는 그 내용이 언급되지 않고 있다. 다섯 번째 나팔은 출애10,12-13에서처럼 메뚜기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있는 재앙을 소개해 준다. 그리고 어둠은 출애10,21의 아홉 번째 재앙에서 나타나는 어둠을 직접 연상케 하는 듯하다. 여섯 번째 대접은 출애 7,27에서처럼 개구리들을 표현에 부각시키고 있다.
묵시록 저자에게 있어서 일곱 대접이 지니고 있는 의미는 일곱 나팔이 지니고 있는 의미에 의해 사실상 준비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게 해준다. 중심점이 되는 것은 속량 곧 에집트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그런 모습의 구원으로써, 그것은 전체 내용의 축이 되고 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구원된 자들이며, 그들은 하느님께 속해 있음으로 종말에 있게 될 시련들을 두려움 없이 헤쳐 나가게 될 것이다.
2. 묵시 15장의 내용 설명
2.1. 일곱천사(15,1)
일곱 천사의 출현은 하나의 표지에 불과한 것이다. 즉 제자들이 볼 수 있도록 보여주신 부활하신 분을 믿음으로 알아볼 수 있다는 의미와 같은 의미로 보여진 표징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1. 전례적 찬미의 노래(15,2-4)
2절에서 ‘보았다’라는 표현을 통해 또 하나의 환시를 소개하고 이는데, ‘보았다’라는 형태는 5절에서 세 번째로 나타난다. 5절에서의 환시가 1절에서 소개되고 있는 환시와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에 2-4절이 묵시록 저자에 의해서 원초적으로 일곱 천사들에게만 관계된 전승 속에 삽입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4,6에서 언급한 유리바다는 창공에 있는 물을 의미했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유리바다에 불이 섞였다는 내용을 첨가하고 있다. 그리고 홍해를 건넌 히브리 사람들과 승리자들이 비교되고 있고, 그들이 모세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맥락을 생각할 때, 이 불을, 구원이 필연적으로 표명될 수 있게 하는 시련을 암시해 주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있어서 시련의 바다는 하느님의 권좌가 있는 곳으로 이끌어 가는 확실한 찬상바다인 것이다. 승리자들이 그런 바다 위에 서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들이 이룩한 승리는 그들을 어느 면으로 볼 때 하느님의 옥좌와 어린양 앞에서 천상의식을 거행한 자들과 동일한 자들이 되게 해준다. 따라서 그들이 부르는 찬미가가 여기서는 심판관이신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조금도 놀라워할 것이 없다. 그런데 심판관이신 하느님께 찬미 드리는 경배 의식이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규정되고 있다. 승리자들은 심판의 표징들 속에서, 당신 백성을 에집트에서 나오게 하신 그리고 이제는 죽임을 당한 어린양과의 통교 속에서 그 백성을 구원하신 구속자 하느님의 개입을 분별해 내고 있다. 이처럼 승리자들이 부른 노래 속에는 출애굽의 주제가 분명하게 암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승리자들이 부른 찬미가는 형식적인 면에서 볼 때, 주님, 하느님, 임금님이라는 호칭이 이 찬미가 속에 공존하고 있는데, 그런 모습은 묵시록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일이다. 이 찬미가는 구약성서, 특별히 시편에서 발췌한 구절들로 엮어져 있다.
2.3. 천사들의 출현(15,5-16,1)
천사들의 옷차림은 지성소에서 나오는, 성전에서의 직무를 수행하는자들에게 완전하게 걸맞는 것이다. 가슴에 두르고 있는 일곱 천사들의 띠는 그들이 곧 행동을 개시할 것이라는 것과 1,13에서 언급하고 있는 인자처럼 아직은 승리와 휴식을 취하는 단계에 있지 않다는 것을 지적해 주는 것이다. 그들이 하고 있는 금띠는 왕적인 외모라기 보다는 사제의 복장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아마포 옷, 금띠, 금대접과 같은 것들은 무엇인가 안심을 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즉 그것들은 모든 사람들이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과 그것들 전부가 최소한 고문이나 복수의 도구로 바뀔 것들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황금 대접의 이미지는 씨앗을 고르는데 사용되는 키와 유사하다. 갑자기 성전은 연기로 가득하게 되는데 이 연기는 하느님의 영광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대접들은 땅에 곧 피조물 위에 쏟아 부어질 것이다. 충실한 자들을 위해서는 통교의 잔을, 계약을 거부한 자들에게는 분열의 잔을 쏟기로 결정했다.
3. 묵시 16장의 내용 설명
3.1. 하느님 분노의 첫번째 세 대접(16,2-7)
첫번째 천사가 쏟은 대접은 땅과 관련된다. 첫번째 천사가 자기 대접을 쏟자 지독한 종기가 나타났다. 지독한 종기의 비극은 더 이상 부분적으로 누군가에게 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강타하게 된다. 그러나 어린양의 주위에서 있는 승리자들은 심판의 첫번째 처벌과는 무관한 자들이다. 여기서는 에집트에 내린 여섯번째 재앙에 관한 것이 암시되고 있다. 두 번째 나팔의 경우 피로 변화된 물에 관계되었는데, 피로 변화된 바다는 생명의 원천으로서가 아닌 죽음의 표지로 나타나고, 그 바다는 첫번째 짐승 곧 제국을 탄생시킨 바 있던 바다이다.
7절에서 ‘그렇습니다’와 ‘삼중호칭’ 그리고 ‘참되고 의로운 이’라는 표현은 모든 사물들이 그들의 정의로운 결실을 맺고 있다는 점에서 모든 사물들이 제대로 창조되었음을 확인하는 기쁨인 것이다.
3.2. 나머지 네 개의 대접(16,8-21)
네 번째 대접은 네 번째 나팔처럼 태양과 관계되는데, 태양은 이스라엘 백성이 축제를 지내기 위해 회동치는 것을 표명해주기 위해 그리고 필요한 빛을 발산해 주기 위해 하늘에 걸려 있었던 커다란 빛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태양으로부터 발산되는 열의 해로운 결과와 일광욕을 동시에 체험하기도 했었다. 구약에서 볼 때 태양이 상징하는 바는 대부분의 경우 긍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태양에서 발산되는 열은 가공할 만한 위력을 갖고 있기에, 그 열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또 성서적으로 볼 때 태양열은 계약에 대한 불충함을 드러내 주는 표징이다.
다섯 번째 대접은 외형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다섯 번째 나팔을 상기시켜 준다. 두 경우 어둠과 사탄의 왕국 그리고 인간 고통을 문제시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본문은 에집트에 내린 아홉번째 재앙 즉 파라오의 왕국에 드리운 그림자를 직접적으로 참조케 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12절에서 보면 여섯 번째 천사는 자기 대접을 유프라테스라는 큰강에 쏟는다. 묵시록 저자는 로마에 대한 침공이 전통적으로 하느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유프라테스 강물을 말려 버림으로써 항거와 봉기를 일으킨 동양으로부터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깨어 있어라’라는 것은 시련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 시간을 ‘잘 맞이하라’는 복음적 권고이다. ‘옷을 간수하다’라는 것은 잘 사용되지 않는 표현이기는 하나, 그리스도를 입은 자들의 세례성사적 의복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옷을 간수하라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충실성을 지켜 나가라는 촉구의 말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