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박해

 

교회 박해




바리사이요 율사 후보생인 바울로는 율법을 구원의 방편으로 여겼다. 따라서 그는 율법 실천과 연학에 몰두하였다(갈라 1,13-14; 필립 3,5-6). 그러므로 그는 율법을 심히 비판한 예수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고, 예수의 처형은 당연한 것이었고 절대로 메시아일 수 없다고 확신했다. 또한 부활은 역사의 종말에 있을 미래의 사건이지 역사 한가운데서 일어난 과거 사건일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예수의 부활을 믿을 수는 없었다. 그런 까닭에 박해에 나선 바울로가 박해한 것은 토박이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 아니고 율법과 성전에 대해 비판적인 해외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었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그는 해외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의 대표자인 스테파노가 순교할 때 가담했고, 시리아 지방의 다마스커스 교회를 박해하러 출장 가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예루살렘 교회를 박해했다(사도 22,4 이하)는 것은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의 편지에 이에 대한 언급이 없을 뿐 아니라, 그의 선교 초기에 그는 예루살렘 신자들에게 별로 알려진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갈라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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