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 1세기에 로마 제국은 확고한 기틀을 마련하고 있었다. 제국이라 할 때 통치권을 장악한 황제의 모습이 맨 먼저 생각되기 마련이다. 제국의 정치 체제가 수립되어 가는 과정을 살펴보지 않는다면, 이 제도의 성격과 이 제도가 가졌던 종교적인 영향력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단적인 표현으로 정치와 종교가 혼합되어 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교회가 당면해야 했고 극복해야 할 장벽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1) 제국의 황제들
주전 751년에 국가 도시로서 출발한 로마는 주전 509년에 공화국을 수립했다. 공화정 시대에 여려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영토와 지배권을 넓혀 가기 시작했다. 칼타고에 승리함으로써 시시리아섬을 비롯하여(주전 241년) 소바나(주전201년), 북아프리카(주전146년)까지 다스리게 되었다.
귀족들의 이해관계와 기사계급의 공명심에 자극받아 로마 공화국은 계속해 동방으로 침략의 손길을 뻗친다. 주전148년에 마케도니아가 속주가 되었고, 146년에 그리스가 점령되고 만다. 63년 품페이우스 장군은 시리아와 유대아를 침공하고 굴복시킴으로서 셀레오쿠스 가문이 다스리던 영토는 이제 공화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2세기 중엽부터 로마 공화국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수많은 전리품을 얻고 포로들을 노예로 삼은 귀족계급은 부요해졌으며, 상업으로 번영을 누리던 기사 계급은 막강한 정치력을 차지하게 된 반면 평민들은 빈궁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때 그라치(Gracchi)두 형제가 토지의 재분배를 시도했으나 실패한다. 그라치 형제가 피살되자 귀족들과 민중당이 대립하게 됨으로써 공화국은 내란 상태에 돌입하게 된다. 마리우스에 이어 솔라 장군이 ‘일인통치’(一人統治)를 수립하여 귀족들의 권리를 확보하려고 하였으나 솔라의 죽음과 동시에 이 제도는 무너지고 만다.
70년 품페이우스(Pompeius)와 크라수스(Crassus)가 집정관(執政官)이 되어 솔라의 헌법을 폐지한다. 60년 품페이우스, 크라수스, 체살(Caesar)은 비밀리에 서로 합의를 보고 정권을 장악한다. 그러나 체살이 갈리아(현 불라서)를 정복하려 나간 틈에 품페이우스는 원로원에 의한 유일한 집정관으로 임명되어 귀족들과 타협하여 체살에 반대하는 원로원의 앞잡이가 되었다.
49년 체살은 루비콘강 전투에서 품페이우를 격파하고 나서 공화정을 회복하려 했으나 하지 못하고 일인통치 체제를 수립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