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복음의 입문

 

요한 복음의 입문




1. 사도요한의 생애


사도 요한(헤: Jehochanan = 야훼께서 자비로우시다)은 요한(John Baptist)의 이름과 같다. 사도요한은 벳사이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제베데오이며, 어머니는 살로메이다. 그의 형은 야고버로, 이 형제난 고기잡이를 업으로하여 살아왔다. 처음에 그는 세자요한의 제자이였다.


요한 1:35-40에서는 자기 이름을 대지 않고 다른 두 제자와 예수를 만나러 간다. 세자 요한의 소개로 안드레아에 대한 말씀을 하신다. 여기에 나오는 모든 점을 자세히 기록한 것으로 보아 그는 목격증인임이 잘 들어나고 있다.


이때 요한은 처음으로 요르단 계곡에서 예수님을 만난후 예수닌과 함께 갈릴레아에 돌아롸 가나(Cand 요한 2:1-2)에 혼인잔치에서 예수의 첫 영적의 증인이 된 것이다. 그후에 그는 그의 업인 어부직을 계속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형과 또한 그가 잘 아는 안드레아와 베드로가 예수님께 제자로 불릴때에 그도 함께 불림을 받았다(마태 4:18-22 루까 6:14 = 사도로 불림) 두 형제는 열성이 많았기 때문에 Boanerges(마르꼬 3:17)란 별명을 받았다. 그 뜻은 「뇌성의 아들」이란 뜻이다.


그는 성미가 급하고 과격했으나 덕을 닦아 양순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으므로 특별한 환경에 참석할 수 있었다. 야이로의 딸은 부뢀시킬때에 베드로와 야고버와 함께 이를 보았고 (마르꼬 5:37)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시에(마르꼬 9:1)와 또한 겟세마니아 동산에서의 마지막 번민(마르꼬 14:34)에도 참석하고, 최후만찬시에는 예수님의 가슴에 기대어 누가 당신을 잡아줄자인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이렇게 예수님께 사랑을 받은 사도이다. 또한 그는 십자가 밑에서 예수님을 지켜보며 예수님으로부터 마리아를 모친으로 위탁 받았다(요한 19:26) 이러한 사랑을 받은 제자는 복음에서 자기의 이름을 한번도 기입하지 않았다. 이 사실에 대한 것은 후에 비판할 때에 자세히 설명하기로 한다.


성신을 받은 다음 요한의 인기는 베드로 다음가는 인기를 모았다. 또한 그는 베드로와 함께 여러 곳으로 다녔다(사도 3:1 8:14). 그는 어디를 가나 베드로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닌 것을 볼수 있다. 사도행전 8:14-25에 나오는 것에서 그는 사마리아에서 그 사도직을 행했고, 예루살렘에 전교를 하시어(사도 3:1-4:32) 예루살렘의 기둥과 같이 여김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팔레스틴에 머물렀다가 성모께서 승천하신 후에 돌아가셨으리라 본다. 그가 돌아가신 때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소아시아에서 생애를 마친 것으로 본다. 여기에 대한 증거는 너무도 많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한다.


어떤이들은 성모님을 에페소로 모시고 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에페소에 요한이 머물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바오로께서 디모테오에게 서간을 보내실 그때까지는 생존했다고 본다. 왜냐하면 디모테오가 에페소의 교회를 다스리고 있을 때에 요한이 오셔서 바오로께서 돌아가신 후 그의 일을 계승하여 다스렸다고 보기 때문이다. 묵시록에 나오는 일곱교회에 관한 것도 잘 알고 있다.


사도 성 요한께서 에페소에서 살았다는 것은 여러 가지 증언이 있다. 일곱교회에 보낸 그의 편지는 그곳이 그의 임지였음을 암시해주고 있다(묵시 2:1-3:22). 그의 임지에 대해서 2,3세기의 성 예로니모, 성이레네오, 성유스티노, 빠삐아스 등의 교부들이 일반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들이 요한에 대하여 말할 때 주의 품에 기댔던 사람이라는 것을 명백히 말해주므로 주의 사랑을 받는 제자였음을 명백히 말하고 있다.


그의 생애의 말년에 그는 Patmos섬에 유배되어 묵시록을 기록하였다. 네르바(Nerva)황제(96-98)때에는 에페소에 다시 돌아와서 사시다가 (성 이레네오 Ado․Hoer, Ⅲ 3, 4) 뜨라야노 황제 7년에(강생후 10년경) 에페소에서 돌아가셨다.


그는 이렇게 오랫동안 살으셨다. 그는 어려움을 많이 당하셨으며 로마에서는 기름가마에까지 들어가셨다가 나오셨다.


복음의 마지막에 그가 죽지 않고 내가 올 때까지 살겠다고 한 것과 베드로는 십자가에 죽을 것이나 요한은 주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돌아가시리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알 수없다. 그는 오래 사시고 여러 자료를 모아 복음을 기록하신 분이다.


그분에 대한 일화는 풍부하다. 서로 사랑하라고 전하는 유언(성 예로니모), 즉 그가 연로하여 걸어다니지 못하고 제자들을 훈계하실때에 항상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이유를 묻는데에 대한 대답은 그 안에 모든 것이다 포함됐다고 답하셨다 한다. 그분께서 새를 가지고 노실때에 누가 놀리므로 대꾸하기를 “활은 항상 당기고 있으면 안되니 사람도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이러한 사도 요한의 역사성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가 A.D 70년전에 돌아가셨다고 하며 또 그의 형인 아고버와 함께 치명하셨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2. 제 4 복음은 요한과 관계가 있는가?


가톨릭 전승은 제4복음이 사도요한에 의해서 기록되었다고 주장해 오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반대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제4복음안에는 성신에 관한 것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예전엔 반대하는 자들이 있더라도 쉽게 물리칠 수 있었으나 후대에 와서 이를 논하게 됐다.  E. Evanson(1792) 이 처음으로 제4복음의 요한적 기원을 반대했다. 그는 공관복음과의 차이점을 들어서 반대하였다. D. F. Strauss(1835-1840)는 알렉산드리아의 철학에서 만든 것이라 했으며 F. C. Bauer(1844)는 A.D 170년경에 기록된 것이며 이것을 역사의 진전이라고 했다. 그는 Thesis를 베드로로 보고 Untithesis를 바오로로 볼때에 Synthesis가 요한복음에서 나타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렇게 머리로 마음대로 생각하고 있으나 교회는 20,30 년경의 사본을 이미 발견하였다. 교회의 전승을 손상시키려는 이러한 자들은 그를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2세기말 또는 3세기 초까지 이야기 모양으로 끌고 나가려고 하며 우리의 전승과 계시를 손상시키려고 하고 있다. 애굽까지 간 것을 보면 2,30년경 안에 발견된 것이다. 그것은 18장의 단편에 불과하나 우리가 가진 1장에서 14까지는 다 있다. 이것은 신약의 사본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렇게 반대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프로테스탄 중에도 요한의 기원을 말하는 화자들도 많다. 이상말한 그러한 태도와는 달리 중간입장을 취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므로 한 다리를 놓아가지고 요한까지 올라가려는 학자도 있다(Harnack) 그는 예루살렘에 살던 장로 요한이 사도 요한의 제자모양으로 생각한다. 장로 요한에 대해서는 앞으로 이야기 할 예정이다.


제4복음이 요한의 저서가 아니라고 하는 일들은 요한 8장 15절을 근거로 하여 다른 제자가 기록했다고 하고 있다. 야고버의 동생 요한과 예루살렘의 장로와는 같은 사람이 이니라는 것이다. 갈릴레아의 어부가 어떻게 예루살렘에서 된 일을 알 수 있는가란 것이다. 그러니 복음을 기록한 자는 예루살렘 사람으로서 예수의 짜인 요한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순순히 교휘의 전승을 받아들이기를 싫어하고, 합리주의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그러나 교회전승에 의해서 확실히 요한은 복음을 남겼다는 증언을 댈 수 있다. 이러한 증거도 없이 우리의 생각이 그렇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3. 제4복음의 요한적 기원을 증명하는 그 세기의 증언


이를 증언한 교부들 중에 성 이냐시오, 불리갈보, 유스티노 등이 있으며 이교인도 있다. Celsus, montanist를 빼놓고는 다 이것을 인정한다.


아뽀그리파(apocripha)에서도 이 글을 이용하고 있다. Odes Salomonis, Epistola Apostolorum(2c초의 것) Actu Joannis(160-170년경) 등에서도 제4복음의 요한적 기원을 알 수 있다.


삽바뚬, 사마리의 여인, 배내 소경에 관한 것에서도 알 수 있고 나자로의 부활등이 3세기에 나타나고 있고 로마의 까다꿈바의 여러 가지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애급에 발견한 여러 단편에 보아도 요한적 기원을 알 수 있다.


① 빠삐아스는 제4복음이 요한적 기원을 Prologus Antiquior Latin Mss. Codex Vat. Alex. Tolelonus. Stuttgat에서 증언하고 있다.


② 성이레네오와 뽈리깔보의 증언 – 성이레네오는 소아시아 스미르나 태생, 리옹의 주교이며 뽈리깔보의 제자이었다. 그는 빠삐아스의 문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동방과 서방의 전승에 중대한 증거자이다. 그는 예전의 모든 전승을 합하여 잘 알 수 있던 자이다. 그는 동방에서 태어나 서방 리옹까지 갔으므로 동서전승의 종합을 한 분이다. 뽈리깔보는 바로 요한 사도의 제자이며 요한 사도에 의하여 스미르나의 주교로 임명된 분이다. 그러나 뽈리깔보에게 공부한 이레네오는 후에 로마를 거쳐서 리옹에 와 있다가 178년에 주교가 되고 202, 203 경에 치명하셨다. 그는 많은 책을 기록하였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ad. Hoer 〈5권〉)이다. 여기에 나오는 증언이 자기의 스승을 통해서 요한으로 올라가는 것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뽈리깔보를 스승으로 모시고 배우는데 있어서 그는 친근하였으므로 모든 것을 잘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일상 생활도 잘 알고 있고, 계시된 자리, 생활양식, 몸모양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다른 이들과도 친근하였다. 그리스도의 생활을 목격한 자들에게서 들은 뽈리깔보는 모든 것을 다 잘 알고 있었다.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던 이러한 사실에서 성이레네오가 잘 아는 것은 논의의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에 대해서 그는 주님의 제자인 요한은 그리스도의 가슴에 기대었고 소아시아에서 거주하는 동안 복음을 친히 기록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레네오는 마태오가 마태오 복음을 헤브레아 말로 최초에 기록하였다는 것을 말하며, 베드로와 바오로는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건설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마르꼬 복음에 대해서도 말하며, 루까는 바오로께서 전하는 복음을 책으로 기록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주님의 제자 요한 가슴에 기댔던 제자, 그도 복음을 아시아 에페소에서 머물면서 기록하였다고 말한다( ad Hoer, Ⅲ, 1. 1. 184-189년 사이에 기록)


우리는 이렇게 명확한 증언을 듣는 것이다. 이레네오가 뽈리깔보의 제자로 있으면서 배운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을 부인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증언에서 요한의 제자 뽈리깔보, 또한 뽈리깔보의 제자인 성이레네오의 직계를 통해서 볼 때에 그 명확성을 재삼인식치 않을 수 없다.


③ 무라또니 단편(Fragmentum muratorianum) ~ 2세기말 경 성히뽈리뚜스에 의해 이루어 졌다는 이 단편은 제4복음의 요한적 기원을 확실시 하고 있다. “3일간 나와 함께 대재를 지켜라 계시된 대로 새로 받은 바를 이야기 하자 안드레아가 기록하도록 했다. 요한이 모든 것을 다 쓰도록 하자” 이러한 모든 것은 요한이 기록한 것이다. 이 단편에서 안드레아의 이름이 나오는 것은 이상하지만 이것은 전승이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④ 성유스티노(100-162) ~ 사도들의 회상록이 나오는데서 복음에 대한 말이 나온다(Fonseca 참조)


⑤ 성예로니모 ~ 사도 요한께서 사도로서 복음을 기록한 성사이며,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가슴에 기댈 수 있도록 사랑을 받은 제자임을 말한다.


교회는 이러한 많은 증언을 갖고 있다. 교회를 무시하는 태도로써 역사를 무시하는 것은 옳지 못한 태도이다.


이상과 같은 증거에서 그 외적 기준을 보았다. 이러한 외적인 기준과 성서안에서 말하는 기준이 부합하는 것을 알게 될 때 여지없는 사도 요한의 저자성을 확실히 알게되는 것이므로 제4복음의 요한적 기원에 관한 내적 자명성을 보기로 한다.




4. 내적 기준(증명)


복음자체에서도 제4복음의 저자가 사도 요한이라는 전통적인 견해를 확증할 수 있다. 이제 저자에 대한 지식을 우리가 주장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특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문장 내용을 분석하여(고등비판) 그 안에서 결론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비판을 하는 이유는 제4복음이 공관 복음과 다른 곳이 많으므로 요한의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기록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고등비판자들의 견해를 반박하기 위해서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난점을 차차 보기로 한다. 설명을 하면서 여러 가지 난해한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① 제4복음의 저자는 팔레스틴 사람이다. 저자는 Aramaism을 많이 쓰고 있다  희랍말(어)로 기록하지만 언어상으로 볼 때 히브리어 또는 아라메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 예로써 랍비(1:38). 립보니(20:16), 멧시아(1:41), 케파(1:42), 호산나(12:13), 실레오, 가발타(19:13), 골고타(19:11)등의 이름을 원어대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헤브리아이즘을 말하는 것은 gaudio gaudere(즐기고 즐기느니 3,29), Filius perditionis(멸망한 자식 17:12) 등이다. 이러한 것으로 보아 본말로 기록한 것이 본대 아라메아어라고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구약성서를 인용한 곳이 16곳이며 헤브리아 텍스트를 따라서 인용하였다. 신약 전체의 350개 중에서 300개가 70인역(LXX)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렇게 복음에서 나오는 것이 헤브레아본과 일치한다는 것이 재미 있다.


②저자는 유다인이다. 그는 헤브레아 사람들의 풍속, 축일, 예절 등을 잘 알고 있었다. ㉠ 잔치집의 돌항아리 ㉡ 사마리아 사람과 유다인과 교제하지 않는 것 (4,9) ㉢ 축일에 관한 것- 장막제 (7:2) ㉣ 첨례 예식도 잘 알고 있다(7:37 이하) ㉤ 삽밭날에 금지된 의술(9:14이하) ㉥ 성전 중수 첨례(10:22) ㉦ 파스카에 예루살렘에 모이는 것 ㉧ 사람들이 영원히 머문다는 말 ㉨ 삽밭날 시체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으면 안되므로 바로 그날로 장사 지내야 한다는 것(19:31) 이렇게 이 제4복음을 기록한자가 유다인이 아니고 외국 사람이었다면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없다는 것은 명롹관화한 일이다.


③ 저자는 팔레스틴의 지리를 잘 알고 있다. ㉠ Salim 근처 aenon에서 요한이 세를 준데 관한 사실(3:23) ㉡ 가리짐산 근처의 야곱의 우물 ㉢ 베타니아는 예루살렘 성전 가까이 있는 것이고 ㉣ 회랑이 5개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 때문에 문제가 되어 회랑이 4이면 4이지 어찌 5개가 있겠는가 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으나 발굴결과 5개 였음이 증명되었다  ㉤ 살로몬 문각도 잘 알고 있다 ㉥ 베타니아가 예루살렘에 가깝다고 한다 15 Stadia 가량 예루살렘에서 떨어진 곳이라는 것이다. ㉦ 또한 같은 베타니아를 말하더라도 요르단 강건너에 있는 베타니아를 말하고 있다. ㉧ 체드론 계곡이 겨울에만 물이 흐른다는 것으로 형용하는 것도 그 지방을 잘 아는 사람이 말하는 것이다.


④ 저자는 예수의 생활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다. 그는 시간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말하고 있다. 그가 그곳에 살지 않았다면 이러한 시간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가상을 기록한 것이 아니다. 그는 자기가 본 것을 증명함으로써 자세한 것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목격증인이 아니면 기록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보고서 증인으로 쓴다는 것을 여러번 말하였다(1:14 14:35 21:24) 4:6에는 야곱의 우물가에서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실때가 6시경이였다. 그 이유는 요르단강에서 올라오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4:52 어제 일곱시에 학질이 떨어졌나이다. 당시엔 대개 3시간씩 나누어서 따졌다. 여기에 보면 1시간 표준으로 말하는 것은 너무도 정확하다 아니할 수 없다. 그는 「대략」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이것을 보면 퍽 정성을 들여서 하고 있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제네사렛 동쪽에서 빵이 많게하신 기적이 있은 다음에 역풍이 불어서 가지 못하였다가 25 tadia – 30 Stadia밖에 가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다(9:19) 8:10 에서는 부자와 과부의 애긍을 비교하여 말한다. 11:6에 보면 나자로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신다. 18:16에서는 수난에 관련하여 베드로가 배반하고 우는 사실을 기록하였다.


이와같이 예수를 본 증인이 기록한 것이라는 증명을 하였다. 다음에 논하고자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사도단의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겠다.


⑤ 저자는 사도단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여러 가지 성격을 잘 알고서 그들이 말한 것을 그대로 옮기고 있다. 안드레아가 하는 말, 비리버가 하는 말, 나타니엘이 무엇이라 하든가, 도마가 뭐라하든가, 우리와 다두가 무엇라 하든가 등등의 말이 나온다(1:41 6:68 10:1-9 24:36 18:17 20:2-20 21:3 11:15-29). 이렇게 누가 뭐라한 것을 아는 것은 사도단안에 있으면서 같이 기록한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곁들은 것에서 그렇게 기록하지 못할 것이다.


⑥ 저자는 「사랑하는 제자」사도요한이다. 그는 최후 만찬에도 참석한 자이다. 예수의 가슴에 기대어 예수께 당신을 파는 자가 누구인가를 물어보던 제자이다. 이렇게 그는 예수와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소근소근 가까이서 하는 말까지 다 알고 있던 자였다면 확실히 그 자리에 있었어야 함은 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없는 사람이 현대처럼 어떤 녹음 장치 또는 마이크 장치로 듣게 되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가슴에 기댔던 사도들만이 있었다 13:23 19:26 20:2 21:24 26:7.20에 보면 사도 중 한 사람이며 예수님과 가장 친근한 사이였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예수님과 가장 친근한 사람이 3명 있었다. 즉 베드로와 야고버와 요한이다. 이 셋 중에 베드로도 아니고, 야고버도 아니면 요한 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세사람 중에 둘을 빼고 한 사람만 남을 때에 그 한 사람이 시대적으로 다른 시대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정신병자일 것이다.


베드로, 야고버, 요한이 예수님의 측근자라는 것은 한 사람을 말해야 한다(마르 5:37 9:12 14:33). 그런데 베드로는 아니다. 저자는 베드로와는 다른 사람임을 들어내 보이고 있으므로 분명히 베드로는 저자가 아니다(13:24 8:15 20:2 21:7.12). 베드로는 요한 복음에 40번 나온다. 이 만큼 가까이 지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태오에는 26번, 마르꼬에는 25번 그리고 루까에는 29번이 나온다.


이외 요한 복음에 필립보가 12번 나오고, 유다스 이스카 리오데가 8번, 도마가 7번, 안드레아가 5번, 제베데오의 아들 유다가 1번 나온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오는 베드로와는 가까운자였다. 그리고 21,19에서 베드로는 이미 죽은 것으로 되있다. 그러나 사랑을 받은 제자는 죽지 않은 사람이다. 그는 베드로가 죽은 다음에도 자기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것을 말한다.


다음에 사랑하던 제자란 야고버도 아니다. 그는 44년에 돌아가셨다. 사도12,2에서 보아서 알 수 있듯이 그는 헤로데 아그리빠에게 처형되었다.


사도 중에 맨 먼저 치명한 사람이 야고버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제자란 야고버일 수 없다. 저자는 오래도록 살아서 줄지 않는다는 별명을 들은 것이다(21:21) 그러므로 이 세사람중에 요한이다. 또한 그가 많은 사도들의 이름을 기록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쓰지 않은 것이 증명된다. 또한 선구자 요한이란 말을 하고 있는데 이때까지는 세자(Baptista)란 말을 부치지 않았다. 그래도 요한이란 것은 모든이가 다 알고 있는 것이므로 기록할 필요가 없던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의 이름도 없다. 제베데오의 아들이란 말(21:2)은 나오고, 그의 어머니의 이름 살로메는 나오지 않는다.


또한 공관 복음이나 사도행전을 보아도 사도단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림이었다. 그리고 요한 세자와 혼돈하지 않기 위해서 요한이란 이름으로만 기록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교회 전승의 외적증명과 복음(내적증명)을 보아서 제4복음의 요한적 기원을 증명할 수 있다.


5. 제4복음의 역사적 가치


제4복음의 역사적 문제는 요한적 문제인 것이다. 즉 제4복음의 역사적 가치는 가톨릭 전통과 소수의 비가톨릭학자들 Westcott(1903). W. Sanday(1903). F. Godet(1904). T.Zanh(1907). F..Barth(1911)등이 옹호해오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비가톨릭 학자들은 제4복음의 역사성을 부인하고 있다.


비판주의 학자들은 제4복음은 풍자시 또는 상징적인 책이라고 주장하고 본 의미로 말하는 역사를 말하지 않고 있으며 어떤 실제적인 강연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저자가 누구이든지 상관없이 제4복음은 역사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신학자로서 기록하고 있다면서 복음안에 모든 사실이 그의 주관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그의 말은 복음에 대한 신비로운 명상을 표현하고 있어서 그 강연은 구원의 신비에 대한 신학적 명상일뿐 역사적 진실성이 없다고 한다.


또 제4복음은 예수그리스도의 천주성의 증명이 아주 명확하기 때문에 합리주의자들은 그들의 의견을 제4복음과 공관복음사이에 지역연대 및 기독론에 모순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제 그들의 주장의 3가지 관점을 나열하면서 하나 하나 비판하기로 한다.


그리스도의 전교지역에 대하여 ~ 비판학자들에 의하면 공관복음사가들의 저술에는 예수의 공생활이 “갈릴래아(예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고 제자들을 모으신 곳)”와 “띠르”지방, “비리버 체사레아 지방”에 국한 되며 예수는 남쪽으로 여행하고 처음으로 예루살렘에 갔으며 그 곳에서 죽었는데 제4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은 공생활을 시작하고, 세례를 받고서, 그의 제자들을 불렀다고 말한다. 더군다나 성요한은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가르치시기 위하여 5번 가셨다고 하고(2:13 5:1 7:10 10:2.25 12:12) 또한 예수님은 가끔 갈릴래아도 잠시동안 방문하셨다(2:1-12 4:31. 43-45 6:1-72 7:9-9 21:1)하므로 제4복음은 역사성이 없다고 한다.


이상의 주장을 토막토막 나열하여 비판하면 다음과 같다.


공관복음사가들은 예수님의 전교지역이 갈릴래아이고 사도 요한에 의하면 유대아의 전교를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공관복음사가들과 요한이 서로 반대되고 일치하지 않는다는 증명이 충분치 못하다. 왜냐하면 공관복음사가들은 유대아 또는 예루살렘 전교를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말하고 있으며, 또한 예수님은 여러 기회에 유대아와 예루살렘에 계셨다는 낌새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마태오 23:27(루까 13:34)에는 성읍을 자주 방문함을 말하고 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네가 선지자를 죽이고 네게 보내신 자들을 네가 또한 돌로 쳐 죽이는 도다. 나 몇번이나 네자식들을 모으기를 마치 닭이 제 샊끼를 제 날개 밑에 모음과 같이 하려 하였으되, 너는 싫어하였도다」라고 말하고 있다.


성루까(10:38-42)는 예수께서 유대아를 방문하셨다고 말하고 있으며 또한 요한 11:1에서는 베타니아는 방문한 도시 이름이라고 말하고 있다.「그때에 한 병자 나자로가 베타니아에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형 말다의 본촌이요…」


사도행전(10:39)에서 성루까는 베드로의 강론을 보고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예수가 유대아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증거하는 자로다」라고 말한다.


수난때의 많은 사실들은 공관복음사가들이 예수께서 자주 예루살렘을 방문했고 또한 예루살렘에서 수고하셨다는 것을 전제하는 학설에만 합리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나귀 가진자들 (루까 19:33), 예루살렘으로의 개선행진(마태오 21:1), 최후만찬시의 다락방의 소유자(마태오 26:28), 예수의 제자, 요셉 아리마태아(마태오 27:57)


또 성마태오 4:25(마르꼬 3:7)에는 예루살렘과 유대아에서 많은 무리가 예수를 따랐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의심없이 그가 이 지방사람들에게 이름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착한 사마리아사람의 비유는 유대아에서의 것이다. (루까 10:30-37) 그러므로 마태오 21:10이하 마르꼬 11:11의 공관복음사가들에게서 예수는 예루살렘에 첫 번 개선하실 떄에 들어 가셨다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성요한은 예수께서 오랜동안 갈랠래아에 계셨다는 것을 전개로 하고 있다. 그이 복음에서 예수님은 주기적으로 갈릴래아에서 강론하셨다는 것을 명확히 암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곳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고(2:13 5:1 7:10. 14) 또란 갈릴래아에 돌아오시고(4:3. 43. 54) 또한 그곳에서 떠나신 것이다(6:1 7:1. 9)


요한 4장 5장에 보념 갈릴래아에서 몇 달 지난다(4:35와 이름없는 축일 Purim제, 파스카제 5:1)


요한 7:1에 의하면 예수는 갈릴래아로 간다. 왜냐하면 유대아인들이 그를 죽이려 찾고 있기 떄문이다. 이러한 갈릴래아 전교기간은 약 7달을 전제로 하고 있다(6,4 3,4월에 파스카 그리고 7,2 9,10월에 장막제).


요르단 건너 베타니아 지역(1:28 10:40)에서 요한이 세례를 주고 예수를 만난다. 그리고 Salim 근처 Genon에서도 세례를 주었다. 이 지역은 헤로데 안티파스 영에 속해 있는 듯하다.




복음의 연대성에 대하여~ 비판 학자는 공관 복음을 들어 에수의 공생활이 세자의 투옥이후(마태 4:12 마르꼬 1:14에 시작되고 1년 동안 계속하였다고 한다. 반대로 성요한은 세자 투옥전에(3:24)에 시작했다고 환다. 이 전교는 제4복음에 의하면 몇 년간 계속된다. 더구나 제4복음사가는 예수의 공생활시초에 성전을 깨끗이 하시는 것을(2:13-22에) 두고 있고, 반대로 공관복음 사가들은 공생활 마지막에 성전을 깨끗이 하는 것을 넣고 있으므로 (마태 21:12-17) 최후만찬과 예수의 죽으신 날자에 관한 모순도 있다고 한다.


우리는 먼저 공관복음이 말하는 모든 사건들을 1년안에 요약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고, 다음에 성요한은 공관복음사가들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이어서 모순되지 않을 뿐아니라 공관복음의 부족성을 채우기 위함임을 말함으로써 이상 견해에 관한 비판을 하려한다.


공관복음이 말하는 모든 사건들을 1년안에 요약할 수 없다. 공관복음사가들은 공생활이 보다 오래 지속되었음을 여러 가지로 말하고 있다.


성루까(6:1)은 바리세이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이삭을 뽑을 때 반대하는 것을 묘사하는데 「둘째 상등 과공날에」라는 말을 하고 있다. 이 표현은 파스카와 어떤 관계를 갖고 있고 또한 수난의 파스카와는 다른 파스카를 전제로 한다.


첫 번 빵이 많아지는 영적은 4명의 복음사가들에 의해 기록되었다(루까 9:10-17 마태 14:13-21, 마르 6:31-44; 요한 6:1-15) 이 기적은 「푸른 물(Super viride foenum, 마르 6:39)」 또한 파스카가 가까운데(요한 6:4)로 시작한다 이 파스카는 루까 6:1에서 말한 것과 다르고 또 수난의 파스카와도 다르다.


성요한은 공관복음 사가들과 모순되지 아니한다. 오히려 공관복음을 옳지 않게 해석하려는 자를 저지한다.


세자요한의 투옥은 예수께서 갈릴래아의 오사 하느님의 왕국의 복음을(마르꼬 1:14이하 마태오 4:12.17 루까 4:14이하)전하기 시작할 때 공관복음사가들에 의해 명확하게 긍정됐다. 이것은 또한 요한4:1 이하에서「갈릴래아로 다시 가실새」라고 말하고 있고 그 때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요한 4:1이하보다 앞서서 제4복음사가는 유대아(1:35-51) 갈릴래아 (2:1-12)와 세자 투옥전(3:24)에 유대아(2:1-36)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베타니아에서 마리아에 의해 예수께서 기름을 발리움에 대하여 ~ 마태오(26,6-13)와 마르꼬(14,3-9)는 「파스카 이틀전」(마태 26,2; 마르 14,1)에 그 일이 있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러나 산헤드린의 공모(마태 26,1-5; 마르꼬 14,2)와 유다스의 배신(마태 26,14-16; 마르 14,10이하) 사이에서 예수님은 파스카전 6일에 (12,1) 기름바르셨다고 말해주는 넷째 복음사가와 논리적으로 연결이 된다.


여러 사소한 일과 환경이란 이유를 걸고서 우리가 예수님의 공생활 시초에 성전을 깨끗이 참(요한 2,13-22)은 예수 공생활 말기에 공관복음사가들에 의해 기록된 것과는 같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최후만찬과 예수의 죽음에 있어서 요한과 공관복음사가들간에 나타나는 문제점은 공관복음 강해 Ⅰ p79-90을 참조)


③기독론에 대하여~ 자유학파는 복음들에 나타난 기독론에 대하여 공관복음과 사도요한의 기독론이 다르다고 3가지 모양으로 주장하고 있다. 첫째로 사실에 대한 대화면에서, 둘째로 예수님을 그리는 방식면에 있어서 셋쩨로 예수님의 강연에 있어서 다르다고 한다. 이제 그 하나 하나를 소개하여 비판하고자 한다.


a) 사실에 대한 대화면~ 에서 성요한은 공관복음사가들과 다르다. 그의 주제의 92%가 고유하지만 6,7 어구(수난복음은 제외)안에서 그는 공관복음에 의존함을 보이고 있으며, 공관복음과 대치되거나 부인하려는 그이 경향을 표시하고 있다. 즉 예수를 대하는 세자의 증거(1,19-34). 성전을 깨끗이 함(2,13-220, 관리아들의 치료(4,46-54), 빵을 많아지게 함(6,1-13), 물위를 걸으심(6,16-21), 베타니아에서 기름바름(12,1-8), 예루살렘으로 승리의 입성(12,12-26)등이 있다.


예수의 목격증인이요, 애제자인 성요한이 그에게만 고유한 주제를 많이 가졌다는 것은 과히 놀랍지 않다. 또한 공관복음의 출현후에 여러 해동안 새로운 적절한 많은 사실 특히 예수께서 유대아와 예루살렘에 가시어 전교하신 것에 대한 것은 물론 예수의 성(natura)과 사명(missio)에 대한 유다이즘의 제관장들과 대립하는데 있어서 다른 것을 첨가 했다는 것 역시 놀라운 것이 못된다. 요한과 공관복음에 공통되는 대화에 있어서 몇가지 차이를 꼬집어서 자유학자는 실제로 모순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하여 야비하게 과장하고 있으나 그러한 모순은 없다. 차이점 또는 나타나는 모순은 가톨릭과 정통 프로테스탄트 주석에 있어서 서서히 조화시켜오고 있다.


b) 예수께 대한 초상~ 비판주의자들에 의하면 예수의 초상에 있어서는 공관복음 사가들은 예수를 순 인간으로 표현한다. 예수는 순 인간적인 존재로 말하고 행동한다. 그는 베드로에 의해 처음으로 메시아로 알려졌으며(마태 6,16), 다음엔 산헤드린 앞에서 메시아로 들어냈다는 것이다. 반대로 제4복음엔 당초부터 예수님이 초자연한 존재(Loisy), 천상존재로 표현되었다고 주장한다. 어디서나 그는 하느님으로 행하며(요한 6,63이하; 18,32) 또한 메시아이며 하느님의 아들로서 말한다(1,51; 3,11이하; 4,26; 9,36이하)


자유학파는 예수의 초상에 관해서 복음을 냉정하게 주석하고 있다. 성요한 역시 명백히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강조하고 공관복음사가들은 그의 천주성을 명확히 선언한다. 이제 제4복음에서 예수님을 인간적인 존재로 나타나는 것을 먼저 보이고 다음은 공관복음사가들이 예수의 천주성을 언급하는 사실을 보이려 한다.


제4복음에 있어서 예수님은 다른 인간 존재와 같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그는 인간이 되었고(1,14), 어머니를 가지고(2,1이하; 6,42; 19,25), 양부 요셉(1,45; 6,42), 그리고 친척(7,3이하)을 가진다. 그는 나자렛읍 사람이고(1,45), 인간적인 일에 흥미를 느겼다(2,1이하; 11,1이하; 12,1이하), 그는 자유의지와 경험적 지식을 가진 인간이며 영혼을 소유하고 있다(4,1; 5,6이하; 6,5 참조), 그는 자유의지와 경험적 지식을 사용한다(예 4; 3; 7; 9 등). 그의 느낌은 흔히 적절하다. 당신 제자들(13,1; 1,12-15). 나자로 가족을(11,5) 사랑하시고, 무서움과 슬픔도 당하시며(12,27; 13,21), 지친 인간 육신을 가지고(4,6), 또한 갈증을 느끼신다(19,28), 눈물을 흘리고(11,35), 고통을 당하시고, 죽으시고 묻히신다. 그는 백성들과 함께 생활하고 그의 제자들을 (1,38이하; 6,5이하) 가르치신다.


그는 그의 동료들에게(11,1이하), 병자들에게(5,5이하, 9,1이하)아주 친절하다. 그러나 당신을 적대시 하는 자들에게는 엄하게 대하신다.


공관복음사가들도 그리스도의 천주성을 언급한다. 공관복음에 나타난 예수는 전지하시다. 그는 다른이들의 은밀한 생각까지 알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마태 9,4; 12,25; 루까 11,17이하)또한 그는 앞으로 무슨일이 일어날지도 안다. 예를 들면 그는 당시의 수난과 부활을 명확히 묘사한다 (마태 16,21-23).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도 안다(마태 24,1이하). 또한 당신 복음의 전파도 알고 계시다(마태 24,14; 마르 13,10) 그리고 당신 교회에 대해서도 안다(마태 16,18).


공관복음사가들이 말하는 그리스도는 사람들의 주인이다. 그는 마지막 날에 최고의 판관이 되실 것이고(마태 7,22이하; 25,31-46), 당신 천사들을 보내실 것이다(마태 13,41; 16,27). 그는 다윗의 주인이시고(마태 22,41-46), 삽밭의 주인이시다(마태 12,28). 그는 성전보다 위대하시고(마태 12,6), 요나보다 위대하시고(마태 12,4; 루까 11,32), 또한 솔로몬보다 위대하시다(마태 12,42).


공관복음사가들이 말하는 그리스도는 당신의 권위로 죄를 사하시고(마르 2,5-7), 당신의 권위를 증명하시고저 기적으로 완성하시며(마르 2,10-12 병립), 당신은 천상적 사랑의 대상이시라고 선언하시며(마태 25,40. 45), 산상수훈(마태 5,1-7,29)에서 당신 천상 권한을 선포한다(마태 5,21이하; 27이하; 31이하; 38이하; 43이하)


공관복음사가들이 말하는 그리스도는 성부와 같으시고(마태 11,27; 루까 10,22), 하느님의 아들이시며(마태 26,64; 마르 14,62), 성전에서 세금을 바치는데서 제외된다고 선언하시며(마태 17,25), 또한 당신은 성부와 성신과 같다고 선언하신다(마태 28,19). 그는 베드로에 의해서 실로 생활한 하느님의 아들임이 알려진다(마태 16,16; 14,33)


비판주의자들은 예수의 영적은 공관복음에 의하면 순전한 측은한 동기에서 이루어졌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그 기적들은 당신의 천주성을 증명하는데 보다 좋은 증명이고 제4복음에서는 천하게 과강되었다고 선언한다. 복음을 이렇게 자유로 해석하고 있다. 공관복음사가들은 그리스도의 천주성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기적을 기록한다(마태 14,28-33 물위에 베드로가 걸음).


성요한은 단 7개의 기적만을 제공한다(21,6 이하까지 8개로 봄) 이 7개의 기적중에 다섯 개는 요한에게만 있는 것이다(2,1-14; 4,46-54; 5,1-18; 9,1-12; 11,1-44) 이것은 개인적인 사소한 일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그가 환경을 과장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자로의 부활(요한 11,1이하)을 말하고 있는 기적이 나임 과부의 아들을 부활시키는 것(루까 7,11-17)보다 더 큰 기적이라고 하겠는가? 과연 요한은 그러한 기적을 이렇게 과장하고 있는가? 다시 생각하거나 가나에서의 물이 술로 변화되는 기적(2,1-11), 이 빵을 두 번째 많게 하신 기적(마태 15,32-39; 마르 8,1-10)보다 더 위대하고 더 과장된 기적이라고 하겠는가?


④ 예수의 강연에 대하여~ 비판논자들은 예수의 강연안에 많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공관복음안에 청중은 일반적으로 많은 무리이다. 그러나 요한복음안에서는 보통으로 개인적이고, 사무적으로 다루고 있다. 공관복음안에 주제가 예수님의 윤리적인 가르침이거나 때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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