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촌 혼인 잔치(2:1-12), 예수님의 첫번째 기적

 

2. 가나촌 혼인 잔치(2:1-12)


2:1에 보면 3일 되었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 3일이 언제부터인가 하는 것도 문제가 될 것이다. 대개는 나타나엘을 부르신후 3일후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떠나시기 직전에 나타나엘을 부르시고 3일 걸려서 가나에 이르셨다고 볼 수 있다.


요르단 강에서 가나에 이르기 까지의 거리는 약 90km-100km이다. 그러므로 3일을 요한다고 불 수 있다. 대낮에 많이 걷지도 않고 아침 일찍 떠나는 것도 아니므로 또 길을 멀리 가려고 하는 것도 아니므로 일찍 떠나지도 않고 일찍 쉬는 것이다. 다리를 풀어야 이틀 3일째 날에는 많은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이며 걷는 방법이 이러했다. 이렇게 해서 3일로 보고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곳에 계셨다는 것에서 마리아라 하지 않고 예수의 어머니라고 한 것은 초기에도 마리아가 예수님의 어머님으로 존경을 받으신 때문에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마리아란 이름은 여러사람에게도 공통으로 부르는 이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똑똑이 피하려는 의사도 있다고 본다.


예수님도 초청을 받으시고 제자들도 초청을 받으셨는데 성모께서 그곳에 계신 것을 보면 가까운 친척이었던 관계로 그곳에서 일을 도와 주시기 위하여 가셨다고 볼 수 있다. 예수께서 갈릴레아로 공생활 초에가사 가나 잔치집에, 당신과 성모님과 제자들이 모이게 된 이러한 상진에 관한 말은 뒤로 미루고 가나란 지명과 기타 사정을 간단히 보고자 한다.


실제로 가나가 어느 곳에 위치하였는지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고 있다. 가나는 Tyre에서 8마일의 Qana(cana)가 아니고 Sepphoris 근처.Kirbet Qana도 아닌 것으로 알며 그 보다는 나자렛 동북쪽4마일 가량되는 Kefr Kenna가 보다 개연적인 지방이다. 이곳에는 이치에 맞는 견고한 전승이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 어떤이들은 위에서 말한 Kirbet Qana (Sepphoris근처), 나자렛에서 북쪽으로 14km되는 곳이라고 한다. 확실한 것을 알 수 없다. Kefr Kenna에는 발도로메오를 기념하는 성당이 있다. 이곳에 가보면 예전 물동이 비슷한 것이 있는데 이곳이 나타나엘의 집이라고 할 수도 없고, 영적을 행하신 그 집이라 할 수 없는 집이었다.


잔치는 당시 풍속대로 1주일 이상이었다. 그 동안에는 미리 준비한 것이 부족할 수도 있다. 당시에는 포도주 같은 것도 많이 사용했으므로 끝날 즈음에 포도주가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성서에 나온 경우는 술이 떨어져서 난처한 환경에 있으므로 성모께서 무관심 하실 수 없는 어떤 관련이 있기 때문에 어려운 것을 면해 달라고 하시는 의향으로 예수께 사정을 말씀드리는 거이다. 말씀은 간단하다. [술이 없다.] 이말에는 은연히 이 어려운 사정을 면해 달라는 뜻이 들어있다. 반드시 기적을 요구하신 것으로 판정하기도 어려우나, 어디가서 돈으로 사다 달라고 하신 뜻으로 알아 듣기는 더욱 어렵다. 물론 다른 곳에서 술을 구하시지 못할바는 아니겠지만 성모님은 예수님의 능력에 대하여 믿으셨으므로 이러한 말씀을 하셨고 또 간접적으로 기적을 바라시는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해 본다. 실제로 여기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 너무도 많아서 잘 판단할 수 없다.


성모님의 이러한 말씀에 예수님은 무뚝뚝한 어조로 [여인이여!나와 네게 무슨 관여함이 있나이까?]라고 답하신다. 이 말씀에 대해서는 너무나 의견이 많아서 결정적으로 무엇이라고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 표현에 각각 뜻이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가? 무엇이 생략되어 어떻다는 것인지? 공동으로 보아 우리로 보는 것인지 아니면 서로 대립을 시키는 것인지? [나와 당신사이에 의견이 같지 않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라고 알아 들을 수도 있으나 [서로 무슨 공통된 점이 있습니까? 나는 모릅니다.]라고 거절하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걱정할 바가 아니라]고 문제를 제쳐 놓는 것인지 [제가 알아서 하겠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하는 말씀인지 학자들은 자기 멋대로 말하고 있으므로 결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저 모른다고만 할 수는 없고 여러 문제, 또는 문맥상으로 보아 가능한한 해결을 모색하는 것이 좋겠다. 역시 예수님은 더없이 착한 아드님이시고, 또한 성모께서도 믿고 말씀하시는데 대하여 노엽게 생각하는 점이 없고 또한 예수께서도 순순히 기적을 행하신 환경도 보아야 하는 것이므로 더욱 어렵다. 여기서 가장 어려운 말마디는 [나의 시간(Hora mea)]이란 말씀이다. 나의 시간이 언제인지 알기가 어렵다. 여담으로 이러한 사실을 모두 알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성모님과의 대화를 생생한 말로써 그 억양과 기분을 가지고서 말씀하시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어투가 어디에서 나왔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런 말마디가 나오는 것을 성서상에서 찾아보면 판관기 11:12, 2역대 35:21, 사무엘후 16:10, 19, 22, 3열왕 17:18, 4열왕 3:13, 마태오 8:29, 마르꼬 1:24에 나온다. [바흐말]에 의하면 [당신과 나 사이에 무엇이 있느냐]는 말을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나와 당신사이에 이견이 없고 동감이라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다른 해석은 [내가 무엇을 잘못했길레 당신이 내게 이러십니까? 무슨 불만이 계십니까?]라는 반문의 어조라는 것이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 또한 창세기 22:24, 4열왕 3:13에서 나오는 같은 식의 말에는 서로 관련이 없다. 서로 상관없다는 식으로 나오고 있다. 즉 우리들에게는 상관이 없다. 그러므로 공동적인 것이 없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우리와는 서로 처지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러한 말을 어떻게 바로 보아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바흐말]에 의하면, 성모님께서 기적을 요구하신 것이 아니고 다만 걱정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심에 대하여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이 우리들에게는 공통한 점이 없으나 서로의 이견이 없다는 것으로 본다. 나도 같은 생각으로 걱정이 된다는 것이며 좋게 하시겠다는 염려를 들어내고 있다는 뜻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해석을 하는 것은 최선을 다하여 좋게 해석한다. 모자지간에 의견이 다를 바 없는 효성스런 아들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 뒤에 나오는 문장 [나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한다.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란 말을 보면 단순히 부인하고 마는 것인가?부정하는 어조로 말하여 내때가 오지 않았습니까? 문장을 의문식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뒤 문장도 의문식으로 간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참으로 맞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 경우에 [나의 때]는 무엇을 뜻하는지?


어떤이는 갈바리아의 마지막날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이는 예수께서 들어내시는 시간 즉 기적을 하시면서 당신을 들어내시는 기간을 말한다는 것이다. 나자렛에서 생활하실 때와 멧시아로서 활약하실때와를 구별하는 것이다. 여기서 [나의 때]란 당신을 들어내시는 때를 생각하는 것이다. 나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까? 전엔 이런 일을 하지 않았지만 어머니께서 원하시는 대로 내가 들어낼 수 있으므로 기적이라도 들어내어 보이겠으니 어려울 것 없습니다.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하고 생각하여 기적을 행하신 것으로 보는 것이 최상이라고 보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간접적으로 거절하는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직접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모답게 거절하시는 것으로 보고 있는데 그 뒷받침에서 여인이란 말이 박정하게 하는 말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루까 2:49에 보면 어머니의 승낙도 없이 성전에서 앉아 있다가 [찾아 오실 필요가 뭐 있습니까?]하신 말씀과 [아버지의 뜻이 있는 곳에 나 마땅이 있을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하고 당신의 멧시아업에 대한 가르침, 또한 [어머님의 권하에 속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 혼자 마음대로 할 것이니 모친은 상관치 마십시오.]했으므로 기적하는 데도 당신이 이러저러 하실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해석도 있다. 이런 경우 여인이란 친절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어머님의 정에 순종하는 착한 아들의 범위를 벗어 나려는 말로 생각한다.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는 잘알 수 없으나 여기서 [여인]이란 말을 쓰는 경우는 우리가 잘 아는대로 당신이 어머님을 요한 사도에게 맡기실 때 어머님을 부르면서 [여인(mulier)]이라고 하였다. 이때는 가장 처참한 때이다. 이때는 효성스런 아들로써 모친을 보호할자를 염려하시는 것이므로 친절치 않은 어조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마음을 표시할 때 쓰신 것이므로 여기에는 신비가 있다고 본다. 여인은 창세기 3장에 나오는 멧시아의 어머니로써 우리에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여인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고 Domina로 생각하는 자가 있어서 존칭으로서 대중앞에 말씀하실 때에도 [마마] 마나님] 모양으로 존경하는 것으로 부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여러 풍습을 연구하여 좀 더 알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여기에 말해둔다.


예수께서는 모친께 대한 효성으로서 기적을 행하시는 것으로 본다. 예수께서 잠시 거절했다가 후에 기적을 행하시는 잠시 변덕을 부리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라그랑제의 말을 보면 “그것을 내게 맡기요.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잘 알아서 하겠습니다.” 하고 생각한다. 그안에 여러 가지가 포함된 것으로 보고있다. 이러한 말을 생생한 말로 볼 때에는 알아듣기가 더욱 쉬웠을 것이나 문장으로 된 현금에서 알기가 어려운 것이다.


또 다른이들은 “당신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내가 십자가에 있지 않으니까 내가 마음대로 기적도 행할 수 있다.”는 것으로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상과 같이 이말은 이렇게 저렇게도 부칠 수 있는 것이다. 좋은 환경을 생각하여 보면 같은 말을 다 하고서도 남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는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장으로 보아 성모께서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하시고 그 자리에서 안심하고 떠나가신 것이다. 성모께서는 시키는 대로 하면 잘 될 줄 믿으신 것이다.


7절 -예수께서는 이에 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셨다. 유데아인들의 풍속에 따라서 hydria는 39.3리틀, 우리의 대두 두말이나 돌항아리이다. 이것이 둘내지 셋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보면 대두 4-6말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므로 대두 닷말 가량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 것이 6개나 있었으므로 두섭 네말에서 석섬 엿말이나 되는 약 서너섬 가까이 된다. 술이 석섬이면 매우 많은 양이다. 많은 사람이 사용할 수 있다.


8절 -물을 채우고 난 후에 퍼 가라고 하신다. 퍼 가라고 하시니 이때 술이 되었다. 어느 순간에 영적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퍼 가라고 말씀하시는 순간이었는지 아니면, 물로 항아리를 채울 때였는지는 모른다. 일군들은 그 물을 가져 가면서 “그 물을 갖다 주면 안됩니다.” 라고 반문한 말이 없다. 어떻든지 술이 된 것을 보고서 갖다 준 것이다.


9절 -어떻든지 파방직이 (잔치 관리하는 자)가 있었다. 3개의 Triclini(상)가 있는 상을 주관하는 사람이 그 술을 보고 영뭉 몰라 하면서, 이렇게 좋은 술을 그대로 두었느냐고 신랑을 불러 말을 한다.


10절 -이때 파방직이의 하는 말은 [본시 좋은 술은 먼저 대접하고 다음에 나쁜술을 대접하는 것이 원칙인데 어찌해서 이렇게까지 좋은 술을 그대로 두었는가]하고 반문한다. 그는 신랑이 그 술을 어느 곳에 두었던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 술을 퍼간 사람은 그 사정을 알던 것이다. 이것은 포도나무에서 농사하여 즙을 짜서 만든 것이 아니고 물이 직접 술이 된 것이다. 말할 것 없이 자연대로 시간이나 노력없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11절 -예수님께서 첫 기적을 행하셨고 가나촌에서 당신 영광을 들어내어 제자들이 그것을 빋게된다. 여기서 보면 영광을 들어 내시는 것이 영적을 행하시는 것으로 되고, 그것은 신덕을 일으키기 위한 수단으로 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목적에 관한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당신이 사명을 받아서 하느님의 멧시아로 오셨다는 것을 들어 내시는 것이므로 이런 것이 위에 말한 당신의 시간에 연결이 된다고 본다. 그러나 다음으로 돌려서 아직 기적을 공개치 않고, 남에게 기적을 일러 주지 말라고 하신 태도도 물론 우리가 아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바깥 사람들, 즉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 예수를 거짓 멧시아로 생각하는 허황에 날뛰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으로, 이교인과도 다르고, 가까운 예수의 제자와도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경우에 따라서 그것을 알아들어야 한다. 여기서는 몇몇제자에게 좋은 결과를 들어내도록 하시기 위해서 첫 영적을 행하셨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것을 준수하기 위한 알레고리아를 보기로 하자. 이것은 자의를 들어내는 것보다는 의역하여 상징을 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연구해 보면 퍽 재미있는 것이므로 여기에 대한 것을 말하려 한다.


여기에 나타난 신랑은 예수를 가르키고 있다. 예수께서 혼인식에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술을 만드신 사실이 대단히 뜻이 있다고 보는 것은 예수께서 교회와 일치하사 인류를 당신의 몸으로 삼으시어 신부(Sponsa)에 대한 사랑과 같은 사랑을 들어내시고, 십자가와 피로서 깨끗이 씻으셨다는 신비를 들어내는 바오로의 말씀을 아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어느 임금님이 자기의 아들 혼인잔치를 베푸는 것을 천국에 비유하고도 있다. 여기서는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께서 인류와 혼인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다음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은 재를 지키지 않는 이유를 말하며 그 제자들은 기쁘고, 신랑의 친구도 있으므로 신랑이 돌아가신 후에 재를 지킨다고 말씀하시고 있는 비유가 있다.


세자 요한이 당신은 친구의 신랑과 같다고 말씀하시는 것들을 보아서 영신적으로 당신의 집안으로 이끄시려는 그 풍부한 영신에 참여하는 우리는 매우 좋다. 혼인이 성사로써 귀중한 가치를 갖는 것을 이런데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신부(Sponsa)는 그리스도교 신자단체를 뜻하고, 영신적 혼인관계이고, 당신의 어머니는 유데아의 공동체를 생각한다. 다음 초청받은 사람들은 당신의 제자로, 여섯항아리는 한주간에 일할 수 있는 엿새를 생각하고 혹은 구약을 생각하고 여섯 다음 숫자 7은 신약시대를 생각한다고 상징적으로 말한다. 물이 술이 되었다는데 있어서 신약시대에 나오는 물은 정화를 위한 것이다. (에젤 47:1, 이샤 9:1)세자도 물로 세를 준다. 신약이 가까이 왔음을 뜻한다. 그러나 물이 술로 변한다는 것으로 보아 술은 더 큰 뜻이 있다고 본다. 이것은 술은 평화의 시대를 뜻한다. 창세기나 예언서에서 예언된 새로운 멧시아 시대를 말하는 것이다. 술이 흔하게 많다는 것은 생활력과 즐거움울 뜻한다. (집회서 40:20) 여기서 특별히 알 수 있는 것은 잠언에 의해서 지혜가 손수 빵을 만드시고 술을 빚어서 사람들에게 대접하는 것으로 말한다. 여기서도 제자들과 함께 초청을 받고 잔치에 참석하사 잘 잡수셨을 것이다. 세자요한은 고복을 입고, 재계를 지키나, 예수께서는 친구가 많아 먹고 마신다는 비난을 들으셨음을 복음에서 본다. 이 때 예수께서는 같이 간 제자들과 잡수셨을 것이다. 이렇게 기뻐하는 것을 생각하므로 신약시대에 예수께서 오신 것을 들어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음에 물이 술이 되고, 술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은 예수께서 성체 성사를 세우실 때에 술을 가지고 당신의 피로 만드셨다. 그러니 물과 피 사이에 술이란 중간물을 두어서 물과 성신과 피로서 오셨다는 말씀이 있다. 여기서 물은 세로 생각하여, 새로운 성사로서 다시나는 것을 말한다. 피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는 구속에 관한 것이다. 성신은 강림이후에 교회의 영혼으로서 교회를 이끄시는 것이고, 성신의 힘으로 모든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직접 수난을 뜻하기 위해서 만드신 술은 아니고 나중에 되는 것이다. 마지막 성찬에서 피가 된 술을 생각한다.


예수께서는 항상 중심이 되나 여인은 협조하는 임무를 띈다. 처음에 남자에게 협조하여 잘못되게 하였으나 성모는 반대로 제 그의 새로운 애와로서 새로운 아담을 선의로 도우려 오신 것이고 성모를 통해서 예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힘을 잊을 수 없는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따뜻하며, 어머니를 사랑하는 아들의 정성을 교회안에서 영신생활에서도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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