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리아인들에게 계시되는 세상의 구세주 (4:1-42)>
위 증언이 있은 후에 예수께서는 사마리아로 오신다. 이곳에서 일아난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는 매우 흥미가 있다. 니꼬데모와의 말씀은 학자와의 대화였으나 지금은 무식한 사람과의 대화다. 그런 말씀하시는 방식은 자연에서 영신의 생명에 관한 물로 올라가시고 비밀을 들어내사 그 물(生水)를 더 원하게 만들고, 다시 그 여인의 장부를 물어서 그의 내면을 통찰하시는 모습으로 대화를 잇고, 그의 장부가 없다는 말의 진실성을 시인하사 당신이 그 여인에게 한 예언자로 나타나시게 만들고 다시 예언자에 대한 말씀을 하시고 당신이 멧시아라고 말씀하시며 자꾸 올라가고 계시다. 성체 성사에 관한 말씀 (6장)에서도 이러한 예수의 교육 방법이 잘 나타난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오사 니꼬데모와의 대화를 나누시고 다시 세자요한의 마지막 증언이 나온다. 그리고 요한은 헤로데에 붙잡혀 투옥된다. 이 기회에 예수께서는 갈릴레아 지방으로 가신다.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를 지나가시면서 사마리아 여인과의 담화가 있었고, 그리고서 가나에 이르사 두번째 기적을 행하셨고 다음에 다른 공관 복음에 나오는 갈릴레아의 전교가 시작된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말한 모든 부분이 요한 사도에게 고유한 것이다. 앞에 이러한 공백 즉 다른 복음에서 언급하지 않은 점을 메꾸어 준다. 이런 것은 갈릴레아가 아닌 곳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사마리아를 지나시는 것도 특이한 것으로 본다.
보통으로는 사마리아 가운데 지나지 않고, 사람들이 강가로 올라가거나 티베리아로 올라간다. 그리스도는 사마리아도 팔레스틴의 한 부분으로 보시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렇게 전교하셨으나 사도들이 전교할때에도 가장 먼저 복음을 받은 곳 중의 하나이다. 이런 점으로 보아서는 사마리아가 갈릴레아와 유데아 사이에서 특별히 혜택을 받은 곳이라고 보겠다. 민족으로 보아서는 본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지만 팔레스틴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이러한 혜택을 받았다고 본다.
이곳에 오사 예수께서 야곱의 우물에 도달하여 피곤하시기 때문에 물을 달라고 하시는 말씀에서부터 실마리가 풀려나가고 있다. 사도들은 이때 잡수실 것을 사기 위하여 읍으로 들어간 사이에 예수께서는 우물에 물을 길러온 사마리아 여인과 말을 시작한다. 사마리아 여인의 말은 유데아 사람으로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시냐는 말을 한다. (9) 그때 예수께서는 이르시기를 하느님의 은혜를 알고, 물을 달라고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았다면 더 높은 물을 달라고 청했으리라는 말씀을 하신다. 구약에 있어서 물샘은 성총의 상징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영생에 이르는 영혼의 샘을 생각하게 하신다. 물도 깊고 풀 것도 없는데, 또한 선조 야곱도 이물을 먹었다고 하며 땅에 있는 물에 대해서 그 여인은 자꾸 말을 이어가지만, 예수께서는 이물은 한번 먹으면 다시 목마른 그러한 물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세상의 물은 육신을 위한 것이나, 영원한 생명으로 솟아 오르는 샘이 당신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것도 다 구약에서 나오는 말씀을 이용하여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좋은 것을 다 가지고 계시면서도 물을 달라고 하시는 것이므로 이상하도고 생각되난, 그 여인이 그 물을 달라고 하시는 것이므로 이상하다고 생각되나, 그 여인이 그 물을 주어 다시는 목마르지 않게 해 달라는 청을 하도록 하신다. 그러나 그 물은 세상의 물이 아닌 것이다.
16절 : 이러한 것을 알아 듣게 하시기 위해서 그 마음을 들여다 보시는 내막을 말씀하여 장부를 불러오라고 한다. 17절전 그 대답은 장부가 없다고 한다. 17절후-18절 이때 예수님은 장부가 없다고 한 말이 옳다고 하시며 그 여인과 과거지사를 말씀하신다. 여러장부를 가진 여인의 비밀을 알아내심으로 그 여인은 주께서 예언자시라고 말한다. 19절 그리고서 그 여인은 말을 이어 우리선조들이 예루살렘에서 공경했는데 이제는 가리짐 산에서만 공경해야 한다는 말을 한다. 이때(20절-21절) 예수께서는 이산저산 하는 것은 구약에 관한 문제이니 신약에서는 필요없다는 것으로 말씀하시며 참으로 성부를 공경하는 것이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22절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시고, 또한 참된 계시가 예루살렘에서 나온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성부의 진리, 영신으로 흠숭하도록 된다는 종교의 영신성을 여기서 가르쳐 주신다.
23절 : 하느님은 영이시니 하느님을 공경하는 자는 진리와 영신으로 공경해야 한다고 하신다. 흠숭예절이 어떠한 지역에 구애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ㅆ므하시며 구약에서 복잡한 예식, 예루살렘을 벗어나는 환경을 개조하려는 것이다.
기구, 예식등이 살벌한 구약과는 다르다. 구약에서도 역시 참된 윤리의 기초가 있어야 하고 애덕이 중심이 되고 하느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는 것을 토대로 하고서 예절이 있던 것이다. 그것을 무시하고 예절하는 것은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누누히 말씀하시는 것은 근본정신의 변화가 아님을 일깨워 주신다.
예식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며, 구약의 예식 대신에 신약은 신약대로의 예식이 있는 것이다. 그러브로 예식을 전혀 배격하고 육신 없는 단체를 만든다는 것은 인간 사회겅에서 볼때에 온전히 불가능한 것이다.
25절 : 부인은 이제 멧시아가 올줄은 안다고 하며, 자기들은 모이세 오경밖에 모르지만 모이세 5경에 멧시아의 예언이 있으므로 이분이 오시면 가르쳐 주시리라는 대답을 한다.
26절 : 이때 예수께서는 당신이 바로 그라고 하시며 당신의 지위를 들어내신다.
27절 : 여인은 집으로 들어 가고 제자들이 예수께 잡수실 것을 드리나 예수께서는 드시고져 하지 아니 하시며 당신을 보내신 성부의 뜻을 준행하는 것이 당신의 음식이다(34)고 하신다.
35절 : 이 기회에 하시는 말씀은 아직 몇달이 지나면 추수기가 온다고 하신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이것은 시간으로 보아 난처하다. 바로 현장을 보면 난처하다. 무슨 추수기를 말하는가? 보통으로 보리나 밀을 거두는 것을 생각한다면 4-6, 7월에 거두는데, 이때는 파스카를 지내시고 얼마 있다가 오신 것이므로 5, 6월까지는 아닐 것이고 아직 4달이 더 있어야 한다면 가을 추수를 하시는 말씀인지? 또는 가을을 두고 하시는 말씀인가? 그렇다고 겨울에 해당하도록 하면 공관복음과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다음 봄 파스카 때 관한 것이 6장에 나오기 때문에 그 사이와 사정과의 사이를 오랜기간으로 떼어 볼 필요는 없다.
그러므로 이것을 보통으로 격언으로 생각한다. 격언에 그러한 말이 있지 아니 하느냐? 넉달만 있으면 추수다. (물론 심어 놓은 다음 4달 후는 아니다. 넉달 보다는 더 많은 기간을 요한다. 11월 12월에 심어서 5, 6월에 거두니 6달 정도이다.) 심어 놓고서 자란 것을 볼 때에 [4달만 있으면 추수해 먹는다.]는 격언이 있는 모양이다.
그것을 이용하시면서 그것을 기다릴 필요없이 벌써 하얗게 되었다는 식으로 말씀하신다. 이때가 바로 목전의 현상인지도 모를 일이다.
높은 산에서는 늦게 베기 때문이다. 이것은 당시의 곡식을 두고서 말씀하실 수도 있으나 여기서는 영원한 생명의 결실을 거두어 드리는데 관한 것, 그래서 이미 씨를 뿌린 예전 분들을 생각하시고, 거두어 들이는 사람들이란 예수께서 보내시는 사도들이라고 보게 된다.
그러나 역시 다 같이 즐거워 할 수 있게 된다. (36)
심는자가 다르고 거두는 자가 다르다고 잠언에 말이 있으나 나는 너희를 거두는 자로 보낸다고 말씀하신다.(37)
자신은 수고하지 않고 남이 수고한 것에 같이 즐거움을 나누도록 된다는 말씀이다. 영신적으로 사마리아 사람들은 서로 교제도 없던 사람들인데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므로 그 여인은 들어가서 이야기를 하여 사람들과 함께 나와 예수께서 며칠 머무시게 하고 머무시는 동안 듣고서 믿은 것이다. 희망에 찬 좋은 결실이 여기서 이루어 진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사마리아에서의 전교를 자주하신 것은 물론 아니고, 다른 기회에는 받아들이지 않는다하여, 사도요한 야곱이 하늘에서 불이 내려 오라고 자주 때도 있다. 보통은 전교가 잘 되던 것은 아니다.
어떻든지 사마리아 사람과 유데아 사람과는 사마리아 행인의 비유에서 본 것처럼 사마리아 사람이 착한 경우도 있겠고 또한 예수께서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비방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으실 때도 사마리아 사람이 아니라고 하시지는 않으셨다.
당신은 사마리아 사람은 아니셨으나 이것을 구별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께 부마하였다고 할 때에는 그렇지 않다고 반대하셨다. 사마리아인들에게 호감을 가지시고 전교하시는 예수께 반공이 없더라도 나중에 사도행전에 보면 마술자 시몬에 대한 말도 이러한 기회에 나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