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천: 신화인가 상징인가

 

승천: 신화인가 상징인가




승천은 예수님이 생전에 가르치고 활동하셨던 지상 생애의 마감이다.


부활하신 다음부터 승천하시는 날까지 사십 일 동안을 무슨 일을 하시면서 지내셨는가?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발현하시고 여러 가지 증거로 당신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드러내고 또 하느님 나라에 관한 일들을 말씀해주신 기간이다. 부활하신 예수 님의 발현 기간이자 제자들을 증인으로 파견하기 위한 준비 기간이다: 제자들이 나가서 선포해야 할 것은 바로 하느님 나라이기 때문이다.


승천에서 성령 강림 때까지는 성령을 기다리는 기간이다. 9일 기도는 그래서 한다. 성령을 받는다는 것을 성령의 세례를 받는다고 표현했다. 성령을 마치 세례처럼 받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성령의 세례 다르고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받는, 말하자면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로서의 보통 세례가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세례와 함께 성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견진 때 받는 성령 역시 다른 성령이 아니다. 견진 성사와 함께 우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를 증거 하여 세상을 복음화 하라는 사명 수행에 나서게 된다. 증인은 과연 성인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라를 재건해주시겠느냐고 묻는다. 이스라엘 나라를 재건한다니, 무슨 뜻인가? 예수는 평생을 바로 이 이스라엘 나라의 재건을 위해서 애쓰셨다. 그러나 이 나라는 정치적인 민족 국가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 옛날 12 부족으로 이뤄진 계약 공동체의 재건을 의미했다. 하지만 예수는 대부분의 이스라엘로부터 거부당했다. 그래서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당신의 피를 쏟아 새로운 이스라엘 계약 공동체를 세우시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예수는 그 이튿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3일만에 부활하신 다음 오늘과 같은 날 승천하여 아버지 하느님께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그렇다면 제자들로서는 예수 님께 여쭤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주님, 주님이 부활하신 지금 이제 마침내 이스라엘을 위하여 나라를 재건하시겠습니까? 과연 예수 님은 당신의 죽음으로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셨지만 정작 당신이 하느님의 새 백성으로 재건하시려 했던 이스라엘은 언제 어떻게 회복된다는 말인가? 왜냐하면 당신은 이제 제자들 곁을 떠나 아버지 하느님께로 되돌아가시고 이 지상에는 대부분의 이스라엘이 예수 님을 거부한 자리에 그의 제자들만 남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구약 시대부터 예레미야나 에제키엘과 같은 예언자들이 기대하던 이스라엘의 재소집과 회복은 종말론적 사건이었고 궁극적인 구원을 의미했다. 그리고 이 구원에는 만물의 회복도 포함되어 있다. 예수 님은 승천하신 다음 이 만물의 회복이 이뤄질 때까지 하늘에 계셔야 한다고 베드로는 성령 강림 날 예루살렘 시민들에게 외친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광복과 하느님의 새 백성의 소집은 지금 당장이 아니라 만물이 회복될 때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 말은 결국 예수 님의 승천과 종말의 구원 사이에는 어떤 중간 기간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예수 님은 그런 의미의 이스라엘 나라의 재건이라면 그 때와 시기를 하느님께 맡겨둘 일이라고 하시면서 종말이 당장이라도 닥쳐올 것처럼 생각하는, 이른바 종말 임박 대기 사상을 일축하신다.


그러나 제자들의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과연 주님이 가고 안 계신 이 마당에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이 숙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곧 성령과 선교이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온 유대아와 사마리아와 세상 끝까지 주 예수를 증언하러 나서게 된 것이다. 성령과 선교는 그러기에 교회의 창설과 존속을 위한 절대적 전제요 그 가능성의  조건이며 그 합법성의 근거가 된다. 성령과 선교 없이는 교회는 존립할 수도 없고 그 존재 이유도 없으며 교회를 꾸려갈 그 어떠한 명분이나 권한도 없다.


생전의 예수 님이 하느님의 새 백성으로 소집하려던 사람들은 원칙적으로 그리고 일차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제한이 완전히 철폐되어 온 세상 사람 누구나 이 소집에 초대받게 되었다. 새로운 이스라엘은 개방된 이스라엘이다. 새로운 이스라엘은 보편적 이스라엘이다. 교회가 보편적인 교회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정리해 보자. 승천은 예수 님에 대한 하느님의 보상이다: 십자가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예수 님이 사실은 무고한 의인이며 그래서 하느님은 그분을 의인으로서 인정하고 그분의 주장이 옳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뜻으로 그분을 드높여주심으로써 그분에게 정의와 영광을 되돌려주신 사건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예수 님의 승천은 이 세상에 남게된 그의 제자인 우리에게 선교와 증언이라는 사명을 주어 이 세상 사람들을 하느님의 새 백성으로 모아들여 새로운 이스라엘이라는 구원 공동체를 건설하시려는 하느님의 새로운 구원 경륜에 동참하라는 지상 명령을 남기고 가신 결정적인 계기이기도 하다. 우리도 예수 님이 가고 없는 이 세상에 혼자만 남게 되었다. 성령을 받고 기운을 차려 선교에 나설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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