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1월 가톨릭과 개신교 대표로 구성된 공동번역 편찬공동위원회는 구약의 경우 R. Kittel(ed). Masoretic Text in Biblia Heberaica, 1937(제 3판)을. 신약의 경우에는 세계성서공회(United Bible Societies)가 1966년에 펴낸 The Greek New Testament를 대본으로 삼기로 결정하였다. 신. 구교 성서 학자들의 공동 작업을 거쳐 신. 구약 합본 공동번역이 탄생된 것은 1977년 4월 10일이다.
우선 공동번역 구약성서의 대본인 키텔의 마소라 본문은 무슨 수사본을 바탕으로 편찬된 것인가? 1947년 쿰란에서 상당수의 구약성서 수사본들이 발견되기까지 현존하던 가장 오래 된 수사본들은 9세기에 필사된 것이었다. 이 가운데 가장 완전하게 구약성서 전체를 담고 있는 수사본은 1009년에 필사된 레닌그라드 사본이다. 이 레닌그라드 사본이 바로 키텔의 마소라 본문의 바탕이 된 수사본이다. 그러면 마소라 본문은 또 무엇인가? ‘마소라’는 히브리어로 ‘전통’이라는 뜻이다. 500년경 성서 전통의 권위있는 스승들이 두 곳에서 학교를 시작하였다. 서부 학교는 팔레스티나의 티베리아에, 동부 학교는 바빌로니아의수라에 세워졌다. 마소라 학자들은 그때까지 모음 부호들이 찍히지 않은 성서 본문을 히브리어를 모르는 사람들이 읽어낼 수 있도록 모음 부호들을 만들어 성서 본문의 자음 위 아래에 찍어넣었다. 그후 9세기와 10세기에 벤-아쉘과 벤 납달리 두 마소라 가문이 히브리어 본문의 모음을 제대로 활성화시켰다. 14세기에 들어와서 두 가문의 전통이 합해져 하나의 융합된 구약성서 히브리어 본문을 탄생시켰고, 이 본문은 1524-25년에 다니엘 봄베르크어(Bomberg)에 의해 파리에서 출판되어 마침내 구약성서의 공인본(textus receptus)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키텔의 Biblia Hebraica의 초판(1906년)과 재판(1909년)은 이 본문에 근거하지만, 제3판(1937년. 3판의 초본은 키텔이 죽은 해인 1929년에 이미 마련되었음) 부터는 레닌그라드 사본에 바탕을 둔다.
키텔의 Biblia Hebraica 제3판은1966-77년에 다시 독일 성서학자들의 견실하고 근본적인 수정을 거쳐 BHS( 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로 거듭난다.
이 BHS와 그별하기 위하여 키텔의마소라 본문을 BHK로 약칭한다
한국천주교회의 성서위원회에서 새로 번역하고 있는 구약성서는 공동 번역과는 달리 BHS를 대본으로 삼는다.
그 다음, 공동번역 신약성서의 대본이 된 The GREEK nEW tESTAMENT는 어떻게 나온 것인가? 활자화된 최초의 그리스어 신약성서는 1514년 스페인에서 히메네스 추기경이 출판하였으나 교회의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 2년 뒤인 1516년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가 바젤에서 그리스오와 라틴어로 된 신약성설ㄹ 출판하였는데, 제5판(1533년)이 나오기까지 히메네스판보다 더 큰 호흥을 얻었다. 1550년 파리에서 로베르 스테파누스가 에라스무스의 신약성서 제5판을 재출판하자, 영국에서 이 로베르판에 공인본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대륙 쪽에서는 네덜란드의 엘세비르 출판사가 1633년에 출판한 그리스어 성서를 공인본으로 인정하였다. 엘세비르판은 테오도르 베자가 1565년에 시리아어역 신약성서를 참조하여 한 쪽은 그리스어, 다른 쪽은 라틴어(불가타)로 출판한 신약성서에 바탕을 두었다. 그 이후 19세기까지 이 공인본은 가장 권위있는 그리스어 신약성서로 받아들여졌다. 개신교에서 널리 사용되는 영어판 ‘흠정역(King James Version)은 바로 이 엘세비르판을 번역한 것이다.
한편 이상의 공인본들은 후대의 또는 질 낮은 수사본을 기초로 만들어진 것임이 밝혀지고 오래 되고 질 좋은 수사본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보다 비판적이고 믿을 만한 신약성서 본문을 만들려는 시도가 줄기차게 이어졌다. 그 가운데 19세기 후반기에 나온 두 개의 그리스어 신약성서, 곧 티센도르프판과 웨스트콧-호트판이 돋보인다.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의 신약성서학 교수 티센도르프는 유럽과 근동을 줄기차게 여행하면서 오래 되고 중요한 성서 본문의 대문자 수사본들을 여럿 발견하였다. 그 중에 대표직인 것으로 시나이산의 성카타라니 수도원에서 발견한 시나이 사본(4세기경의 사본), 바티칸 사본(4세기경), 클라로몬타누스 사본(6세경), 에프렘 사본(5세기경)등을 볼 수 있다. 티센도르프는 이 사본들을 바탕으로 1841-1872년에 무려 8판이나 그리스어 신약성서를 출간하였다. 티센도르프의 마지막 8판(editio octava critica maior)은 아직도 신약성서 원전비평의 중요한 참고서로 유효하다. 1881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도 두 교수웨스트콧과 호트는 시나이 사본(4세기경)과 바티칸 사본(4세기)에 주로 의존하여 비판적 그리스어 신약성서를 출간하였다.
이런 학자들의 노력과 그 동안 공동작업을 한 끝에 1966년에 출간한 역작이다. 1993년에 보다 정교한 수정을 거쳐 출판된 제4판을 독일의 네슬-알란 제27판과 더불어 그리스어 신약성서 가운데 가장 최근에 나온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