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는 분명 역사를 바탕으로 기록된 책이다. 그러나 역사를 두고 고대인은 현대인과 다른 견해를 갖는다. 우리는 역사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고대인은 역사의 사건이 가르쳐 주는 교훈을 중요하게 여긴다. 역사는 사실(fact)과 진실(truth)을 함께 포함하는데, 고대인은 역사에서 사실보다는 진실을 찾으려한 반면, 현대인은 진실보다 사실에 더 역점을 둔다. 성서의 기록과 사건들은 우리에게 사실보다는 진실을 전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예를 들어 창세기 처음에 나오는 천지창조, 아담과 하와, 첫 조상의 범죄와 추방에 관한 이야기들은 목격자의 증언이 아니라, 고대 이스라엘 조상들이 창조주 하느님과 세상과 인간 실존을 두고 깊은 명상과 반성을 통하여 깨우친 신학적 진실이다. 이 태고사가 제일 처음 글로 엮어진 연대는 기원전 950-800년이고, 구 뒤 후대 편집자들의 손을 거쳐 기우너전 550년경에 완성된다. 고학자들은 지성을 갖춘 인간(home sapiens)이 지상에 출연한 시기를 대략 70만년 전으로 잡고 있다. 그렇다면 69만 8천여년 뒤에 나타날 창세기 저자가 아득한 옛날 인류의 첫 조상이 창조되어 낙원에서 살던 사실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지구의 생성과 생물의 창조 연대는 몇십억, 몇백억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가야 되는데, 그때에 있었던 사실들을 까마득한 후대 사람이 어떻게 눈으로 보듯 생생하게 기록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창세기 1-3장에 나오는 천지창조와 원조의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없다. 그러면 이 기록이 사실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야기 전체를 모두 부정할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이 이야기 안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인류에게 유릭하고 심오한 진리가 가득 들어 있다.
그 가운데 몇 가지를 소개하겠다. “이 세상 만물과 인간은 그 기원을 하느님에게 둔다. 인간 안에는 하느님의 입김, 곧 그분의 생명이 숨쉬고 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가장 가까운 반려자이다. 인간의 근본 죄악은 하느님 없이 자신의 구원과 멸망을 결정하려는 태도였다. 죄가 들어옴으로써 인간과 하느님 사이, 인간과 인간 사이, 인간과 피조물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가 깨어졌다. 인간의 죽음과 고통과 방황은 죄의 결과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배반하고 비참한 상황에 빠진 인간을 버려두시기 않고 ‘여인과 그 후손을 통하여’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신다.” 이 밖에도 창세기 1-3장의 기록은 수많은 진실을 우리에게 전한다.
출애굽에 관한 성서의 증언도 역사적 사실과 진실을 구별하는 데 좋은 예가 된다. 모세는 과연 실존인물이었는가? 출애굽기에 따르면 이집트에서 도망쳐 나온 히브리인들의 수자가 장정만 60만 명이라고 하는데 노약자, 어린이, 여자들까지 합치면 200만 명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나이 광야의 물과 목초지는 그들과 가축들의 십분의 일을 먹여 살리기에도 부족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이집트에서 빠져 나온 히브리인들은 몇 명이나 되었는가? 어떻게 홍해를 둘로 가르고 마른 발로 건널 수 있었을까? 이렇게 큰 사건을 두고 고고학 사료와 고대 문헌은 왜 침묵을 지키는 것일까? 이같은 의문들은 이 사건을 역사적 사실로 접근하려 할 때 생겨난다. 그러나 이 사건의 진실은 하느님께서 위대한 영도자 한 사람을 내세워 당신의 놀라운 권능으로 한 무리의 비천한 히브리 노예 집단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켰다는 데 있다.
출애굽 사건이 기록된 것은 이 사건이 일어난 지 400여년이 흐른 뒤였다. 그 동안 이 사건은 입에서 입으로 다음 세대에 전해졌다.
이 구전 전승 과정에서 사건의 진상은 전하는 사람들의 상상력에 따라 덧붙여지고 부풀려졌을 것이다. 그러나 전승은 하느님의 권능과 자애로 한 천민 무리가 자유민이 되어 기름진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사건의 진실을 그대로 전하였다. 실제 사실의 극적인 과정과 확장은 당신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권능과 자애를 강조하고 부각시키는 구실을 하지만, 사건의 진실을 왜곡시키지는 않는다.
성서가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되었다는 말은 성서 저자들이 태곳적부터 예수 그리스도와 초대교회에 이르는 역사를 실제 사실에 입각하여 한치의 오차도 없이 기록하여 우리에게 남겼다는 뜻이 아니다. 그들이 성령의 도움에 힘입어, 자신들의 깊은 믿음의 삶과 신학적 반성을 바탕으로 얻게 된 진실과 진리를 다양한 문학 양식을 빌려 우리에게 전달했다는 뜻이다. 성서를 과학 교과서처럼 생각하여 거기 나오는 모든 기록을 절대적 사실로 보려는 자세도 잘못이요, 성서 이야기에 과장되고 꾸민 부분이 많다 해서 성서 전체를 허구로 부인하는 것도 잘못이다. 우리는 성서 본문을 대하면서 무엇보다 성서 저자들이 전하고자 고심했던 신앙의 진실에 주목해야 한다.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 작업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거나 때로는 불필요하기까지 하다.
성서 메시지의 역사성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원칙을 마련해 보았다.
1) 신. 구약성서 전체는 이스라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 삶에 바탕을 둔다. 그러나 이야기나 사건 전개의 세부 묘사는 사실을 반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디까지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의 기록이고 어디까지가 성서 저자들의 상상이나 과장에서 나온 기록인지를 가리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때때로 그 일은 성서 저자들의 생각과 그들이 처한 시대적 배경을 밝히는 데 큰 도움을 주지만, 성서 전체를 관통하는 큰 사상의 관점에서 보면 그다지 중요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작업이다.
2) 창세기 1-9장, 곧 천지창조부터 노아 홍수까지는 선사시대 이야기로서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지 않는다. 이 기록에는 이스라엘 주변 고대 근동의 설화나 신화 요소들이 많이 들어와 있다. 그러나 이같은 설화. 신화적 기록도 고대인의 역사적 삶과 체험에 바탕을 둔다.
3) 아브라함을 비록하여 창세기의 성조 이야기, 출애굽 사건과 가나안 정복, 그리고 판관시데에 간한 기록들은 대체로 실존 인물들을 중심으로 엮어진 구전 전승에 바탕을 둔다. 달리 말하면 이 기록들은 성조들과 모세와 여호수아 및 판관들이 살던 시대에서 길게는 천년, 짦게는 3백 년 정도 지난 다음에 나왔고, 그 사이를 사람들의 입담이 연결시켰다. 사람들의 입담이 전수되는 동안 이야기의 세부 묘사에 그들의 상상과 과장이 개입했을 것임은 자명하다.
4) 다윗과 솔로몬 이후 계속된 이스라엘 왕정의 역사와 바빌론 유배, 유배가 풀린 다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강대국의 속국으로 지내오던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는 왕궁 서기관들과 예언자들과 사제들의 문필활동에 힘입어 구약의 다른 기록들보다는 실제 사실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성서 저자들이 이 기록들을 통하여 동시대나 후대의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역사적 진실이다.
5) 여기서 역사적 사실은 시간과 공간 안에서, 곧 기원전 18세기에서 2세기 중반까지 팔레스티나를 중심으로 한 고대 근동 지방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말하고, 역사적 진실은 하느님께서 이 잡다한 사건들 안에 담아 이스라엘과 온 인류에게 전달하고자 하신 메시지를 말한다. 이 메시지에는 위대한 인물들의 신앙 체험과 하느님의 영에 도움을 받은 성서 저자들의 깊은 반성과 통찰이 살아 숨쉬고 있다.
6) 그러므로 성서를 대할 때 우리는 무슨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가를 밝히는 일에만 집착하지 말고, 거기 실린 이야기와 사건들 안에서 하느님께서 개인과 인류 전체를 두고 무슨 말씀을 들려주시려는지 깨닫는 일에 전심해야 한다. 성서는 역사나 과학 교과서가 아니라, 하느님이 누구신지, 인간이 무엇인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 인관과 인간 사이의 관계, 인간과 세상 사이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밝혀주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