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 시리아-에브라임 전쟁(기원전 734)
이 전쟁은 기원전 740년 디글랏빌레셀 3세에 의해 시작된 몇 차례 대규모 전란의 곁가지에 불과한 사건이었다. 아시리아는 각 지방의 정치적 지형을 뒤바꿔 놓으며 정복한 땅을 온통 파괴했다. 그의 손아귀에서 겨우 살아 남은 일부 군주들은 효과적으로 대항하기 위한 방편으로 동맹을 맺어 연합세력을 형성하였다. 그 중에서도 다마스커스의 르신(시리아)과 이스라엘의 베가(에브라임)가 주목을 끌었다. 그들로서는 최소한의 성공 가능성을 보장받기 위하여 당대에 유일하게 아시리아를 견제할 수 있었던 세력, 곧 이집트가 필요하였다.
그러나 유다 왕국이 이들 동맹국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한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던 까닭에 그들 사이의 안전하고도 신속한 연락에 장애가 생겼다. 따라서 유다를 그들의 동맹에 끌어들이는 일이 시급해졌다. 그러나 젊은 아하즈는 아시라아를 추종하는 정책을 따랐으므로 그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북쪽의 두 동맹국은 어떻게 해서라도 이집트와의 직접적인 연락선을 확고하게 지키고자 하는 의도에서 무력을 동원하여 유다의 영토를 침공하였다. 바로 이 군사행동을 시리아-에브라임 전쟁이라고 일컫는다. 이 무장개입과 동시에 유다 왕국에서는 근간에 유다에 편입되었던 민족들, 특히 블레셋이 일련의 국내 봉기를 일으켰다.
이사야는 이집트를 불신한 왕의 태도를 지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아하즈를 반대하여 아시리아 역시 불신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유다의 아하즈 왕은 하느님 대신에 아시리아에게서 해방의 손길을 기대하였다. 왕은 실제로 자신이 고대하던 그 해방을 아시리아로부터 받았다. 그러나 그 후의 일어난 여러 사건들은, 그것이 무자비한 노예화의 첫 발자국에 불과하였다는 것을, 현혹적인 하루살이 해방에 불화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