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의 시대적 배경

 

2.이사야서의  시대적 배경


아주 작은 왕국이었던 남 유다는(북 이스라엘이 약간 컸지만 거의 대동소이하였다). 우찌야 시대에(기원전 783-739) 주변 열강들의 일시적인 쇠락에 힘입어 상당히 번영하였다. 무엇보다 국경을 엘랏만 쪽으로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새로운 시장의 개척은 이미 잘 정비되어 있던 전체 국가 구조에 안정과 활력을 불어 넣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 번영으로 부자와 가난한 이들의 차이는 더욱 크게 벌어졌고, 동시에 종교적 나태함에 빠지게 되는 이중의 장애가 초래되었다.


이사야가 행한 설교는 사회적 불의나 예루살렘의 종교적 퇴폐를 정면으로 공격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국내사정 및 문제들이 이러할 때, 국제 정치상황은 한계를 모르는 탐욕으로 땅을 정복해 나가던 아시리아에 의해 좌우되고 있었다. 이사야가 활동하던 시기는 기원전 10세기 말에 일어나 609년까지 그 세력을 떨치게 될 新아시라아 제국의 전성기였다. 시리아-팔레스티나 지방을 확고히 소유하려는 목표 아래 아시리아 제국이 결정한 남서진군은 비옥한 반달지대 전체를 전략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이상적인 정책이었다.


그러나 아시리아와 영원한 숙적 관계였던 이집트는 당시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쇠퇴기를 맞이하고 있었기에 유다나 이스라엘에 영향을 줄 수가 없었다.


아시리아가 크게 세력을 떨칠 때마다 함께 역경에 처하곤 하였던 지역 군주들은 조금이라도 가혹한 억압의 피해에서 벗어나고자 상호 선린관계를 유지하였다. 반대로 아시리아의 압제가 누그러질 때면 한편으로 예상되는 지배자의 복귀를 저지하기 위한 연합세력을 형성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각 나라마다 내부에 잠재되어 있던 적대감을 일제히 폭발시켰다.


유다 왕국은 비교적 아시리아의 세력권에서 안전한 외곽지대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유다왕국은 두 나라 군대가 지나다니는 주요 통행로의 근방에 위치하였기에 아시리아와 이집트가 서로 적대감을 갖고 있던 상황에서 침략자의 탐욕을 자극하는 지역이었다.




2.1.아시리아의 침략


이사야가 직무를 수행하던 동안에 특히 두드러졌던 아시리아의 침략은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2.1.1. 시리아-에브라임 전쟁(기원전 734)


2.1.2. 사마리아의 몰락(722-721)


2.1.3. 아스돗의 동맹(712)


2.1.4. 산헤립의 침공(702-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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