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2,1-4,1절까지의 본문 연구

 

이사야서 2,1-12,6절


1. 2,1-4,1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왜 분노하시고 이스라엘에게 벌을 내리실까? 구약성서를 읽으면서 우리는 많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분노하시는 하느님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사랑을 고백할 수 있을까? 어떻게 자비의 하느님을 생각할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것은 하느님의 분노는 자비의 다른 표현이다. 하느님의 심판은 언제나 구원을 전제하고 있다. 희망이 내포되어 있다. 심판을 통해 구원의 약속을 들을 수 있다. 이 심판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회개시키시고 구원에로 초대하신다. 그러므로 예언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어려운 시련 앞에서 하느님을 등지고 세상 것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찾아보아야 한다.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사야서 2,1-12,6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인간의 죄가 무엇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볼 수 있다




1. 이사야 예언자가 환시로 본 미래의 이스라엘(2,1-5) ☞ 영원한 평화


장차 어느 날엔가 야훼의 집이 서 있는 산이 모든 멧부리 위에 우뚝 서고 모든 언덕 위에 드높이 솟아 만국이 그리로 물밀듯이 밀려 들리라.


그 때 수많은 민족이 모여 와서 말하리라. “자, 올라 가자, 야훼의 산으로1), 야곱의 하느님께서 계신 전으로! 사는 길을 그에게 배우고 그 길을 따라 가자. 법은 시온에서 나오고, 야훼의 말씀은 예루살렘에서 나오느니.”


그가 민족간의 분쟁을 심판하시고 나라 사이의 분규를 조정하시리니,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2)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민족들은 칼을 들고 서로 싸우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훈련도 하지 아니하리라.


오, 야곱의 가문이여, 야훼의 빛3)을 받으며 걸어 가자.




이사야는 예루살렘에 관한 환시를 이렇게 전하고 있다. 모든 민족이 주님의 산으로 밀려들 것이다. 주님께서 재판관이 되시니 민족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다. 즉 주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에서는 오로지 평화만이 존재할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세월이 지난 다음의 모습이다. 지금 상황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벌을 내리시고 있다. 그런 것을 생각해 본다면 예언자는 고통을 당하는 이들에게 그 고통의 원인을 알려주고, 그것을 통해 얻게 되는 구원을 알려주는 존재이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어려운 일이 발생했을 때 서로 짜증을 내고 불평불만이 가득한 상황에서 그 상황을 위로하고 비젼을 제시하는 삶. 그것이 바로 예언자의 삶일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경우는 그 고통스러운 상황에 연연하면서 옳지 않은 방법으로 그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노력들도 있다. 물론 이것은 예언자의 삶은 아니다. 나는 어떤 존재인지 이 말씀안에서 내 모습을 찾아 보아야한다.


2. 야곱 가문에 내리는 심판(2,6-5,30)


2.1. 경고(2,6-3,12) ☞주님의 날에 벌어질 일들


이사야 예언자는 2,2-5절에서 희망의 말씀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야곱가문의 상황은 벌을 받고 있는데 그 원인은 이런 것들이다.


2.1.1.☞상황


①하느님께 대한 불신: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병거와 군마를 믿었지 하느님을 믿지 않았다. 이것은 여로보암 2세와 우찌야 치하의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이 누렸던 경제적 번영에서 오는 유혹의 결과로 그들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거부하고 인간적인 힘에 의존하였다. 금과 은, 군마와 병거등에 의존하였던 것이다.




②우상숭배 :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느님을 믿지 않고 요술쟁이들을 믿었다. 점치는 일이나 요술을 부리는 행위는 이스라엘에서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신명18,9-14). 하지만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작품을 경배하였다. 




2.1.2.☞경고


①인간이 의지하고 믿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13  레바논에 높이 솟은 송백과 바산의 상수리나무를 모두 꺾으시는 날,


14  드높은 산악과 솟아 있는 언덕을 모두 낮추시는 날,


15  높이 솟은 성탑과 견고한 성곽을 모두 부수시는 날,


16  다르싯의 배와 값진 화물을 모두 침몰시키시는 날,


레바논은 시리아의 레바논산을 의미하며 높이 솟은 송백으로 유명하다. 바산은 큰 나무들이 자라는 곳으로 유명한 오늘날 시리아의 남부로, 헤르몬 산맥과 야르묵강 사이에 위치해 있는 목초지이다. 다르싯은 스페인의 남서 해안에 있는 항구도시로 이곳을 왕래하는 모든 선박들 뿐만 아니라 일반 명사처럼 되어 크고 견고한 외항선을 일컬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아무리 크고 아름다운 나무라고 하더라도 하느님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값진 보물이라도 하느님을 대신 할 수 없다. 하느님께서는 그들 눈앞에서 그들이 믿고 있었던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실 것이다. 그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실 것이다. 오로지 하느님만 믿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실 것이다.




② 하느님 앞에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18  우상들은 모조리 사라지리라. 19  야훼께서 일어나 땅을 흔드실 때 너희는 그 두려운 얼굴을 피하고 그 빛나는 위엄을 피하여 바위굴로 들어 가거라. 땅굴 속에 숨어라.


20  그 날이 오면 사람들은 저희가 섬기기 위하여 제 손으로 만든 은우상과 금우상을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져 주게 되리라. 21  야훼께서 일어나 땅을 흔드실 때 너희는 그 두려운 얼굴을 피하고 그 빛나는 위엄을 피하여 큰 바위의 갈라진 곳으로 들어 가거라. 바윗돌 틈바구니에 숨어라.  22  다시는 사람을 믿지 말라. 코에 숨이 붙어 있을 뿐, 아무 보잘 것 없느니.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은 무엇인가 영원하고 완전한 존재에 의지함으로써 자신의 존재 의의를 찾게 된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의지해야 할 분은 오로지 한 분 밖에는 없다. 의지 대상의 선택은 자기 취향이 아니라 당연히 창조주이신 하느님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헛된 우상에 취해서 하느님을 멀리한 이들은 이제 하느님 앞에서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이사야 예언자는 “그분의 영광스러운 위엄을 피하여 바위굴 속으로, 땅굴 속으로 들어 가거라”라고 말씀하신다. 즉 하느님께 죄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들이 섬겼던 우상을 모두 버려야 함을 말씀하신다. 이사야 예언자는 22절에서 참으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말씀을 해 주신다. “다시는 사람을 믿지 말라. 코에 숨이 붙어 있을 뿐, 아무 보잘 것 없느니.”4)나 자신도 마찬가지이다. 나도 숨 한번 끊어지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이 말씀에서 배워야 할 것이다.



2.1.3. ☞ 예루살렘과 유다의 난세(3,1-12)5)


요담의 통치에서 아하즈의 통치로 넘어가는 사이에 유대 왕국은 무정부 상태였다. 아하즈는 어려서 왕좌에 오르고, 그의 어머니가 섭정을 하게 되었다. 나라가 약화되고, 그 결과 백성이 고통을 당했다. 그런 상황을 이용하여 권력자들과 우두머리들은 부정을 저지르고 약자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면서 불의를 저질렀다. 예루살렘과 유다에서는 무법상태가 판을 친다. 절망적인 상태에서 아무런 지도력이 없는 사람들까지도 통치자로 추대되었고 그들의 심판은 3,13-15절에 타나나고 있다.


①3,1-12절까지의 말씀을 읽으면서 하느님의 벌은 무엇으로 나타났는지 적어 봅시다.












2.1.4. 지도자들에 대한 심판(3,13-15)


3 장


13  야훼께서 재판정에 들어 서신다. 당신 백성을 재판하시려고 자리를 잡으신다.


14  야훼께서 당신 백성의 장로들과 그 우두머리들을 재판하신다. “내 포도밭에 불을 지른 것은 너희들이다. 너희는 가난한 자에게서 빼앗은 것을 너희 집에 두었다.


15  어찌하여 너희는 내 백성을 짓밟느냐? 어찌하여 가난한 자의 얼굴을 짓찧느냐? 주, 만군의 야훼가 묻는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책임을 맡고 있는 지도자들이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하는데 그것을 잘 못했을 경우 사람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게 된다. 선생님이 연구하지 않고, 또 열심히 가르치지 않으면 학생들의 지적 수준이 자꾸 떨어지는 것과 같이. 정치나 기업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욕심만을 채우고 국민의 생활은 무시하면 결국 나라가 망하는 것처럼. 종교도 신자들의 상태를 무시하면 결국 교회가 흔들리게 된다.6)




① 남을 가르친다는 것은 어떤 것이고, 어떤 모습이어야 하며, 참된 지도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함께 나눠 봅시다.














2.1.5. 예루살렘 여인들에 대한 경고(3,16-4,1)


3 장


16  야훼께서 계속 문책하신다. “시온의 딸들은 잘난 체 목을 빼고 추파를 던지며 돌아 다니고 발목으로 잘랑잘랑 소리나 내며 이리저리 꼬리치고 돌아 다닌다.”


17  그런즉, 주께서는 시온의 딸들의 정수리를 버짐먹게 하시고 그들의 머리를 밀어 버리시리라.7)


24  향내는 썩는 냄새로, 띠는 포승으로 바뀌고 곱게 땋았던 머리는 삭발당하고 예쁜 옷을 입었던 몸에는 부대조각8)을 감고 아름답던 얼굴에는 수치의 낙인이 찍히리라




시온의 딸들(여자들)은 히브리어에서 모음만 다른 “빗쟁이, 고리 대금 업자”등으로 수정되기도 하고, 아하즈와 히즈키야의 치세 초기 왕대비가 공식직함을 가지고 있던 시기를 의미하는 것인지, 일반적인 무능한 통치자를 빗대는 것인지 분명하지는 않다.


하지만 3,1-12절까지 일반 백성들에 대한 재앙이 나와 있으니 특별히 여인들만 따로 재앙을 선포할 이유는 없다. 지도자들에 대한 심판에 이어서 나오는 것을 보면 아마도 무능한 통치자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어린 아하즈를 대신해서 어머니가 섭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 경고는 결국 무능한 아하즈의 어머니를 말하는 것일 수 있다. 특히 4,1절에서 보면 여자들이 서둘러 결혼을 하려고 하는 이유가 경제적인 뒷받침 때문이 아니라 전쟁으로 인한 남성수와 여성수의 불균형으로 인하여 자식이 없다는 불명예를 씻기 위한 것임을 기억한다면 무능한 통치자가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급급해 하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자신의 힘으로 통치하지 못하고 남의 힘을 빌려서 통치해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왕일 것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제대로 도와주지도 못하고 섭정을 하는 사람도 불행한 사람입니다. 1801년 우리나라에 신유박해가 일어났을 때 어린 정조를 대신해서 섭정한 여인이 정순왕후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상소를 올렸지만(예언자들) 측근들에 의해서 박해는 더욱 더 심해져갔습니다(거짓예언자들)


   이런 모습을 생각해 보면서 나의 모습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남을 가르친다고 하면서 혹시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능력이 없으면서도 내 것을 고집하면서 남에게 내 것만을 강조하고 있지 않습니까? 거짓예언자들의 말에 현혹되어 혹시 나의 진실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시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주님! 당신의 심판 앞에서 인간적인 바람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됩니다. 아무것도 아니면서도 특별한 존재인 듯 착각속에 빠져서 많은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당신께 의지하지 않고 모든 것을 내 스스로 할 수 있고, 당신은 내게 있어서 필요없는 존재라고 생각을 해 왔습니다. 하지만 숨 한번 끊어지면 그만인 존재라는 것을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잘못된 엉터리 지도자들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 당신의 이 말씀을 들으면서 이 말씀이 저에게 해 주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하시고, 제가 제 능력을 믿고 교만에 빠지지 않게 저를 붙들어 주시고, 제게 맡겨주신 당신의 자녀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있도록 힘을 주소서. 아멘.


꼭 읽어야되요: 첨부파일에는 각주 내용이 모두 나와 있습니다.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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