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이집트로의 이주(창세기46,1- 34)
1) 하느님께 제사를 올리는 야곱(창세기46,1-7)
이스라엘은 자기에게 딸린 모든 것을 거느리고 길을 떠났다. 그는 브에르 세바에 이르러 자기 아버지 이사악의 하느님께 제사를 드렸다. 브에르 세바는 야곱의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사악이 제단을 쌓고 하느님을 경배했던 거룩한 장소였다(창세21,32-33;26,23-25). 야곱은 아브라함과 이사악이 세워 바친 제단에서 제사를 바치면서 하느님의 돌보심을 간절히 기도했다.
하느님께서 밤의 환시 중에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 “야곱아, 야곱아!” 하고 부르시자,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그가 대답하였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하느님, 네 아버지의 하느님이다. 이집트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그곳에서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4 나도 너와 함께 이집트로 내려가겠다. 그리고 내가 그곳에서 너를 다시 데리고 올라오겠다. 요셉의 손이 네 눈을 감겨 줄 것이다.”(창세기46,2-4)
아마도 야곱은 이집트로 가면서 불안했을 것이다.1) 그것은 하느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한 땅을 과연 떠나도 괜찮은지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야곱은 꿈에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해 주셨고, 함께 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고, 다시 데리고 올라오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그리고 야곱은 이집트에서 죽게 될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야곱은 브에르 세바를 떠났다. 이스라엘의 아들들은 아버지를 태워 오라고 파라오가 보낸 수레들에 아버지 야곱과 아이들과 아내들을 태웠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얻은 가축과 재산을 가지고 이집트로 들어갔다. 야곱과 그의 모든 자손이 함께 들어갔다. 야곱은 아들과 손자, 딸과 손녀, 곧 그의 모든 자손을 거느리고 이집트로 들어갔다.
2)이집트로 내려간 야곱의 자손(창세기46,8-27)
야곱을 찾아 이집트로 내려간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모두 칠십명이다. 창세기 46,8-27에서 그 칠십 명의 아들들과 손자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요셉과 요셉의 두 아들 므나쎄와 에프라임도 포함되어 있다(20절). 그런데 이미 이집트에 살고 있던 요셉은 두 아들들에게서 다서 명의 손자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리스어 칠십인역 성경에는 요셉의 손자 다섯 명을 이 명단에 추가하여 칠십오 명으로 기록하였다. 사도행전에서도 이집트로 이주한 야곱 가문은 칠십 오 명이라고 기록하고 있다(사도7,14).
3)이집트 이주의 의의
아브라함의 아버지 테라는 가족을 데리고 칼대아의 우르, 곧 남부 메소포타미아를 떠나 아시리아의 하란에 이주하였다(창세11,31). 메소포타미아의 북서부(현재의 터키와 시리아 국경 지대)에 위치해 있던 하란은 대상(隊商) 무역의 중심지였고, 이곳 주민들은 달을 신으로 숭배하였다. 이곳에 아브라함의 씨족이 정착하고 살았다. 그런데 BC 1850년 경에 하느님께서 아브람에게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하고 명령하셨다. 아브함은 하느님의 명령대로 가나안으로 이주하였다. 그런데 이제 그의 손자인 야곱이 가족을 모두 데리고 이집트로 이주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만일 이들이 가나안 지역에 더 오래 머물렀다면 반드시 우상숭배에 빠졌을 것이다. 야곱은 이미 가아안어를 사용하고 있었고, 가나안족과의 결혼도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집트로 간 히브리인들은 목축을 업으로 삼고 있었고, 이집트인들은 히브리인들과 상종하지 않았기에 이집트의 풍속에 젖을 위험이 비교적 적었었다.
그러므로 이집트로의 이주는 결국 신앙의 순수성을 보호하는데 있어서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4) 요셉이 가족을 맞이하다(창세기46,28-34)
①아버지와 만나는 요셉
이스라엘은 자기보다 앞서 유다를 요셉에게 보내어, 고센으로 오게 하였다. 그런 다음 그들은 고센 지방에 이르렀다. 요셉은 자기 병거를 준비시켜, 아버지 이스라엘을 만나러 고센으로 올라갔다. 요셉은 그를 보자 목을 껴안았다. 목을 껴안은 채 한참 울었다.
강산이 두 번 변하고서야 만나게 되는 아버지와 아들. 23년만의 재회는 말을 잃은 채 목을 얼싸 안고 통곡하는 강렬한 행위만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아들이 목을 얼싸안고 엉엉 우는데도 아버지 야곱의 두 손은 아들을 껴안을 생각을 못하고 있다. 아마도 야곱은 죽었다고 믿었던 아들을 다시 만나게 되니 그 기쁨에 넘쳐서 어찌할 바를 몰랐을 것이다. 이제 야곱은 죽어도 한이 없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사실 아들 요셉을 잃고 살아왔던 지난 23년간의 세월은 살아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 비로소 야곱은 살아난 것이다. 죽었던 아들을 만났기에 죽었다가 살아난 것이다.
② 고센2)지방에 머물게 하려는 요셉의 계획(창세기46,31-34)
요셉은 가족들이 고센 지방에 살게 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계획을 꾸민다. 요셉이 자기 형제들과 아버지의 집안 식구들에게 말하였다. 서로 파라오 앞에서 말을 맞추자는 것이었다. 요셉이 한 이야기를 가족들이 똑같이 해야만 파라오가 고센 땅에 머물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제가 올라가 파라오께 이렇게 아뢰겠습니다. ‘가나안 땅에 살던 제 형제들과 아버지의 집안 식구들이 저에게 왔습니다. 그 사람들은 본디 가축을 치던 목자들이어서 양 떼와 소 떼, 그리고 모든 재산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니 파라오께서 여러분을 불러 ‘너희의 생업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거든, 이렇게 대답하십시오. ‘임금님의 이 종들은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줄곧 가축을 쳐 온 사람들입니다. 저희도 그러하고 저희 조상들도 그러하였습니다.’ (창세기46,31-34)
고센 땅은 나일 강 삼각주의 가장 동편 지류인 펠루스 강과 그 바깥쪽 광야 사이에 있는 가장 비옥한 땅이다. 나일 강이 정기적으로 범람하여 강물에 쓸려온 적도 지역의 기름진 흙을 나일 강변에 뿌려놓아 땅이 비옥하고 검다. 또한 물이 풍부하여 농사짓기가 좋고, 목초가 대단히 무성하였는데, 겨울부터 봄에 걸쳐 비가 내리면 부근의 광야까지도 풀들이 우거졌으므로 목축에는 최적격지였다. 그래서 파라오의 소나 양들도 그 지방에서 길러지고 있었다.
또한 고센 땅 부근이 국경지대였는데, 이곳은 이집트의 북동부 국경 지대였기에 이곳에 정착한 히브리 사람들은 이집트인들과 접촉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리고 이집트 민족이 힉소스족과 싸울 때에도 이곳에 사는 히브리인들은 중립을 지킬 수 있었으므로 이집트인들에게서 퇴거의 명령도 받지 않고 그대로 평화롭게 살 수 있었다.
파라오는 요셉의 가족들이 모든 것을 이끌고 이집트로 왔다는 것을 오해할 수도 있다. 요셉의 가족들이 정치적인 야심을 채우기 위해서 몰려온 것이 아님을, 요셉의 능력을 빌려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려는 것이었다. 이집트에서 계속해서 목자의 생업을 갖고 싶으니 파라오께서 호의를 베푸시어 가축을 칠 초원이 있는 땅, 가능하다면 고센 땅을 주시기를 청한다는 것이었다.
요셉은 처음부터 가족들을 고센에 살려 하려고 하였다.
첫째, 고센에는 양과 소를 방목할 수 있는 좋은 목초지가 있기 때문이다.
둘째, 고센이 이집트 국경에 접해 있기에 언젠가 야곱의 아들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갈 때 쉽게 이동할 수 있다는 이점 이 있다. 그래서 요셉은 형들에게 아버지를 모셔올 것을 부탁하면서 “주저하지 마시고 저에게 내려오십시오”라고 말했던 것이다.
셋째, 혈통의 고유성을 보존하려는 것이다. 혈통의 고유성을 보존하려는 것은 유일신 신앙을 보존하기 위해서이다. 만일 히브리인들이 이집트인들과 어울려 살다보면 자연히 이집트인들과 혼인하게 되고, 그 결과 우상숭배에 빠질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넷째, 친인척 정치 개입을 차단하기 위함이다. 청렴한 청치가인 요셉은 형제들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또 공적 사명을 수행하는데 가족들에게 어떤 작은 영향도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셉이 “이집트 사람들은 목자라면 모두 역겨워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46,34) 라고 한 것은 가족들이 반드시 고센에 머물러야만 하는 강제성을 부여한다. 그런데 이것은 요셉의 경고성 발언이다. 이집트 사람들도 고기를 먹었고, 그러려면 가축을 길러야 했다. 어느 특정한 가축을 치는 사람을 꺼린다면 몰라도3), 가축치는 모든 사람을 멀리한다는 것은 타당성이 없다. 요셉은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을 엄격히 구분하고 싶었던 것이다.
또한 요셉 형제들의 과거를 전혀 모르는 파라오는 요셉 때문에 형제들을 등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형제들을 요셉처럼 청렴결백하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된다면, 요셉에게 은혜도 갚고, 훌륭한 인재도 선발할 겸해서 형제들을 등용시킬 위험도 있었기 때문이다. 요셉은 이런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지금 정치하시는 분들이 요셉을 조금이라도 본받는다면 우리나라의 정치도 많은 발전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