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역사

 

5. 이스라엘의 역사


가. 성서의 역사적 배경사 (정양모편 연대표 페이지 7 참조)


기원전 40만년 전에 구석기 시대 말기 티베리아 호수 근방 ‘우베이디에’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다. 즉 이것은 30만년전 예리고에 유인원이 발견되었다는 것도 근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40만년 이전을 선사시대, 인류 출현 석기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기원전 3600-3500년경부터 역사시대가 시작되었다. 메소포타미아지역의 수메르 지방에 있는 아카드 왕국에서 설형문자를 사용하였다. 기원전 3100년에는 에집트의 고왕국이 창건되었다.   수도는 멤피스이고 상형문자를 사용하였다. 기원전 2900년경은 청동기 초기 시대이며 여러 도시들이 출현하였는데, 주민의 대부분이 가나안 사람들이었다. 거대한 피라밋이 건설되기 시작한 것이  기원전 2600-2500년이다. 족장시대(2200-1900)는 청동기 초기 끝에서 청동기 중기까지이다. 이때에 에집트에서는 중왕국이,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는 우르 제 3왕조,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는 1900년경에 바빌론 제1왕조가 창시되어, 함무라비 대왕이 법전을 선포한다(1792-1750). 이때 신앙의 선조인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의 가나안으로 이주한다. 아브라함 이전의 역사(창 1-11)를 태고사라고 하는데, 이것은 인류의 시초와 관계되는 역사이다.


나. 모세오경의 중심과 그 형성과정


모세오경의 가장 중요한 것은 출애굽사건인데, 출애굽 1-15장이 모세오경의 가장 중심적인  사건인데, 1-14장은 모세의 출생부터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억압의 땅에서 구출하는 것까지의 내용이고, 15장은 하느님께 승전과 감사의 노래를 부른다. 그런데 그 이전에 이스라엘 민족이 그들 스스로가 왜 에집트 땅에서 살게 되었는가를 알아보자.


창세기 12-50장까지의 내용이 족장사이다. 그리고 그에 앞서서 문제가 제기되는 인류의   시초에 대한 질문의 해답이 바로 창세기 1-11장까지의 내용이다. 16-18장까지는 탈출한 민족이 광야를 헤매면서 야훼께서 그들을 보호하시는 장면이 나오고 19장부터 시나이산에 도착한 이스라엘 민족은 거기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고 십계명을 받는다. 이스라엘의 법전에 대한 내용이 민수기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러니까 여기까지의 설명을 출애굽 사건을 중심으로 하여 태고사와 족장사가 첨가되게 되는가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모세오경은 출애굽 사건을 중심으로  하여 앞 뒤의 얘기를 묶어서 편집한 것이다. 그러나 창세기 1-11장의 이야기를 성서기자가 전해주는데, 우리는 이것을 증명할 수는 없다.




다. 아브리함 이주


지금 우리가 여기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아브라함의 이주에 관해서이다. 창세기 11,27-29에는 “데라의 후손은 다음과 같다.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고 하란은 롯을 낳았다. 하란은 고향인 갈데아 우르에서 자기 아버지보다 먼저 죽었다. 아브람과 나홀이 아내를 맞았는데, 아브람의 아내 이름은 사래요, 나홀의 아내는 밀가였다. 밀가는 하란의 딸로서 아스가와는 동기간이었다.”여기에서 아브라함이 갈대아 지방 우르 출신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유프라테스강 하구 근처에 있는 곳이다. 이 곳은 왕의 소재지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왕국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의 페르시아만 연안지역인데, 커다란 항만시설이 있었다고 한다. 월신 nanna를 공경하기 위한 대규모의 신전이 있었기 때문에 유명한 지역이라고 한다. 그뿐 아니라 가정에는 개인적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신전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생활이 윤택했다고 한다. 그러나 서부 셈족이 BC 1950년에 수메르 도시국가를 함락시켰다고 한다. 이때 아브라함 일가가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창세기 11, 31절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부친 데라는 BC 1900년경 자기 일족을 거느리고 고향 우르를 떠나서 하란 지방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코스는 아마도 우르를 해서 유프라테스가을 거쳐서 마리 왕국을 거쳐서 하란으로 갔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보고 있다. 여기서 주지해야할 것은 아브라함의 부친 데라는 잡신을 숭배했던 사람이었다. 여호수아기 24,2에서 “옛적에 너희 조상들은 유프라테스강 건너 저 편에 살고 있을 때 다른 신을 섬겼었다. 아브라함과 나홀의 아비 데라도 그러했다.”   분명히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잡신을 숭배하던 사람임에 틀림없다. 앞에서 우르나 하란에서도 월신 nanna를 숭배하기 위한 신전이 있었음을 이야기했다. 월신 nanna를 수메르인들은 Sin이라고도 부른다.


데라가 하란에서 죽은 뒤 1850년경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함께 친척들을 데리고 다마스커스를 거쳐 지중해 그리고 요르단강 사이의 지역인 가나안 땅 세겜으로 옮겨간다.(지도 P.4에 아브라함의 여로 참조) 세겜은 사마리아의 중심지이고 그 이전에 가나안의 문화 중심지였다. 가나안이라는 지명은 원래 캄의 아들이며 노아의 손자의 이름이 가나안이다. 캄의 아들이며 노아의 손자인  가나안은 일찌감치 가나안 땅에 이주하여 원주민의 원조가 되었다. 이렇게 지중해와 요르단 강을 거쳐 가나안 땅으로 온 아브라함은 이미 가나안에 원주민이 살고 있음을 보게 된다.


우르에서 하란까지는 1100Km이고 하란에서 세겜까지의 거리는 800Km이다. 세겜이라는 뜻은 창세기 12,6에서 보면 ‘목덜미’라는 뜻이다. 그림진 산과 에바의 산인데 하나는 축복의 산이고 하나는 저주의 산인데, 아무래도 두 개의 산의 목덜미라는 것인 것 같다. 미국 고고학자에 의하면 BC 1750년경에 건축된 시가와 대신전이 있었다고 한다. 이어서 아브라함은 창 12,8절에 보면  세겜에서 베델을 거친다. 창세기 12,8절에 ‘하느님의 집’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나서 네겝에서 거주한다. 그러다가 흉년이 들어 에집트에 살기도 한다. 흉년이 극복되어서 네겝을 거쳐 다시  베델로 이주한다(창13,3-4).


많은 사람들과 가축떼가 계속 머물러 지내기에는 땅이 너무나 좁아졌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헤어지게 된다. 조카는 요르단강 사해 주변의 땅을 선택하고, 대신 아브라함은 헤브론 지방에 머문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양보의 미덕이 보인다.(창21,32) 브엘사바가 나온다. 그것은 일곱우물이라는 뜻이다. 브엘은 우물, 세바는 일곱인데, 아브라함이 머물러 쉬는 곳이었다. 그들은 유목민이었기 때문에 양떼와 가축을 위해서 우물 중심에서 살았을 것이라는 추정을 할 수 있다. 아브라함의 여정은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하란까지 와서 거주하고 있었고, 아브라함이 에집트에 들렀다가 네겝, 베델을 거쳐서 헤브론에 거주하게 된다(여정은 지도 참조).




라. 성조들의 에집트 이주


① 배경


가나안 땅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이 태어나고 이스라엘땅에 가뭄이 들자 에집트에   식량을 구하러 간다. 그 이전에 요셉이 형제들의 시기에 의해서 팔려간다. 또한 성조들이 에집트에 이주하여 나일 델타(삼각주) 동쪽에 위치한 고센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다.




② 성서학자들의 에집트 이주시기에 대한 학설


a. BC 1700~1580 : 요셉의 활동과 그 일족의 이동시기를 에집트가 이방인 유목민족이었던  힉소스(에집트어로 ‘외국의 통치자’란 뜻)에 의해서 통치받던 시기로 추정(성서 연대표 참조 : 중왕국과 신왕국 사이)


b. BC 1377~1358 : 오늘날의 학자들은 a.의 학설보다 요셉의 출현을 힉소스의 속박에서    벗어나 왕권을 탈환한 다음 왕조인 에집트 제 18왕조(1580-1310)의 말기, 아메노피스 4세 혹은 아크나톤이라 불리는 왕의시기로 추정한다.


c. BC 1345~1200 : 방랑하면서 산발적으로 에집트에 이주해오던 아람부족들은 에집트 제 19왕조 때에 비로소 나일강 동부 델타에 발을 옮겨 놓았을 것이라 추정된다. 이 아람 부족들이 나중에  요셉의 집안으로 나타난다.


* 예루살렘 성서에 기록된 이스라엘 역사 *


BC 1850 년경 – 가나안 땅으로 이주.


BC 1700 년경 – 성조들이 에집트로 이주.


BC 1250 년경 – 출애굽 시기,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율법을 받음.




마. 출애굽


① 출애굽의 배경


나일강 유역 곡창지대에 정착한 히브리 민족은 인구증가로 에집트 민족의 위협적인 존재로  부상하게 된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의 갓난 사내 아기를 죽여 없애는 정책에 시달려 에집트를  떠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처했으며 여러가지 잡역과 부역에 시달렸다는 기록도 있다.






② 출애굽의 형태 (‘추방’이냐 ‘탈출’이냐)


E.W Nicholson, Exodus and Sinai in History and Tradition, oxford, 1973


결론 : 탈출과 추방이 병용되어 이루어짐 (이스라엘 일부 부족만 참여)




③ 출애굽의 의의


이스라엘은 이 사건을 통해서 하느님의 구원의 손길을 체험하고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자각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구약성서적 신앙의 기초는 출애굽의 하느님, 즉 구원의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다.




④ 출애굽의 시기


a. BC 13세기 중엽(1250~1200) — 에집트 제 19왕조 람세스 2세와 그의 후계자 메르넵타(Merneptha)시기로 추정


성조들이 에집트로 이주해온 때가 아메노피스 4세 (BC 1364-1347)때라 보면 히브리 민족이 인구가 증가하여 탈출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시기까지는 약 100년 밖에 안된다. 따라서 70년쯤 에집트에서 살다가 탈출했으리라 추정되며, 예루살렘 성서에서도 1200년대, 즉 BC 1250년부터 1230년 정도로 본다.




+ 람세스 2세 (1301년 ~ 1234년, 혹은 1290년 ~ 1224년 :재임시기)


  수도를 테베에서 나일강 삼각주에 위치한 멤피스로 옮겼으며, 삼각주 평야 쪽으로 올라오면서      군사적인 이유에서 그 지역에 요새를 건축한다.


     * 참고 : 출애굽 1, 11절과 일치


             그리하여 그들은 공사감독들을 두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강제 노동을 시켜 파라오의                곡식을 저장해 둘 도성 비돔과 라므세스를 세웠다.


+ 메르넵타


메르넵타 비문은 BC 1229년 (혹1225년)에 세워진 것으로 자신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적들을 쳐 이기고 거둔 여러 승리를 나열한다. 마지막에 팔레스티나 지방에 대한 승전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이스라엘을 격파하였다는 내용이 언급된다. 비문의 제작연도를 창작할 때 이스라엘 사람들의 가나안 이주가 적어도 1229년 전에 실행되었음을 전제하고 있다.


* 신학 총서 제 6권 성서학 개론 Ⅰ P.그롤러 분도 P45참조




b. BC 1400년대 —


ⓐ 열왕기 상 6, 1


* 이스라엘 백성이 에집트 땅에서 탈출해온 지 480년, 솔로몬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4년째 되던 해 둘째 달 곧 시브월에 솔로몬은 야훼의 전을 짓기 시작하였다(열왕기 상 6, 1).


이 귀절에 근거하여 솔로몬의 등극 ⇒ 약 975년 정도


                  재임시기 ⇒          – 4년


                                       970년 정도


                   에집트 탈출 ⇒     +480년


                                      1450년


이 시기는 이방민족인 힉소스 왕조를 붕괴시키고 힉소스 민족을 포함해서 이민족을 에집트  본국에서 축출한 에집트 제 18왕조의 시기와 일치한다.




ⓑ Tell-el-Amarna(14세기 에집트 수도)에서 나온 진흙 서판


에집트의 속국으로 머물던 가나안의 왕들이 하피루의 습격과 공격을 받고 에집트 파라오에게 원병을 요청한 기록이 나온다. 하피루(Apiru,Habiru)는 갑빠도기아 문헌에 의하면 ‘약탈자’‘강도의 무리’란 의미의 유랑민을 의미한다. 파라오는 이 하피루인들을 포로로 잡아 강제로 잡아 건설 노역을 시키는 것으로 나타난다.


출애굽 시기를 15세기로 보는 학자들은 하피루족을 여호수아기에 나오는 히브리인들로 추정한다. 사실 주변국가들은 다윗 왕정 시대까지 이스라엘을 하피루라 부른다. 이 하피루인들 중에 일부분이 이스라엘 민족이었는데 그들 중 야훼신앙에 의해서 결속된 사람들이 이스라엘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다는 추정을 한다. 그 예로 신명기 26, 5~10절을 보면 ‘떠돌아 다니는 이방인’ 이라 나온다.


앤더슨은 히브리인들이 하피루와 마찬가지로 시민권이 없었지만 보다 규모가 크고 안정된   유랑계층에 속하나 이스라엘 사람이 된 히브리인들과 하피루인들을 구별한다. 학자들의 설명처럼 하피루주민들을 특정민족으로 지칭하기 보다는 고대 근동 지방에서 일정한 거처를 갖지 못하고 떠돌이로 살면서 때로는 정착민을 습격하고 약탈을 하던 사람들을 지칭한다고 본다.


어떤 견해에 있어서는 히브리인들도 유목인으로서 처음에는 하피루인들과 비슷한 생활을   하였다가 나중에는 새로운 민족, 즉 이스라엘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본다.




ⓒ 출애굽을 BC 15세기로 보지 않는 학설


* 하피루의 발음이 히브리인들과 비슷하지만 반드시 동일시할 수 있는 명확한 근거가 없음.


* 열왕기 상 6,1에 나오는 ‘480년’은 실제적인 숫자라기보다는 상징적인 숫자로 볼 수 있다고 주장. 한 세대를 40년으로 볼 적에 12세대를 거치는 ‘480년’을 상징한다고 본다.


* BC 15세기 중반에 출애굽기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의 강제노역의 배경이 되는 거대한   토목공사가 에집트에 있었다는 고고학적인 근거가 없다고 제시한다. 반면에 13세기에 람세스 2세가 비돔과 람세스에 토목공사를 하고 있었다. 따라서 출애굽 시기를 13세기로 보는 견해가 더  지배적이다.




⑤ 에집트에 정착한 부족 및 출애굽한 부족에 대해서


a. 성서학계에서 보는 견해


이스라엘 12지파가 모두 야곱과 함께 에집트로 이주하여 정착했다는 견해에 대해 부정적이다. 성서에서는 과정법 비슷하게 모든 지파가 이주했다고 보고 있지만 그보다는 일부 부족이 여러 세기에 걸쳐 에집트로 이주했을 것으로 본다. (앤더슨은 17세기 힉소스족의 이동시 함께 이동했을 것이라고 함)


예를 들어 요셉과 에프라임, 므나세, 베냐민 지파 등 몇몇 부족들만이 에집트로 이주하여 살다가 몇차례에 걸쳐 여러경로를 통해서 탈출해서 시나이 체험을 했으리라고 추정한다. 그밖에 즈블론, 이사칼, 납달리 지파들은 셈족의 이동과 함께 15세기경 북부 가나안지방에 정착하여 아예 에집트로 이주하지 않고 그냥 떠돌다가 가나안땅에 정착했다고 본다. 그리고 다른 일부 부족은 남부 가나안 지방에 머물다가 출애굽한 부족들과 합류했다고 보는 학설이 있다.


창세기 전승에 의하면 부족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손길, 하느님의 역사(役事)하심을 느끼는 것을 목표로 하여 성서가 쓰여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서 전승은 판관기  말기, 또는 왕정시대 초기에 와서 이 부족들의 체험이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체험으로 확대   해석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랜 기간에 걸쳐 일어난 이 사건들을 압축하여 실제로는 복잡한 사건을 단순하게 정리하여 전했다고 추정한다.


그래서 부분적이고 일부분의 지파들이 가담한 것을 나중에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나서 모든 지파가 가담한 것처럼 확대해서 전해지고 있다고 본다.


출애굽을 체험한 백성들은 사막에서 공통된 체험을 나누고 공통적인 역사를 가지게 되어 하나의 공동체, 즉 이스라엘 백성을 형성하게 된다(종교적 유대).




⑥ 출애굽의 경로


출애굽기 13,17 : “파라오는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곧장 블레셋땅으로 가는 길로 인도하지 않으셨다. 하느님께서는 이 백성이 닥쳐올 전쟁을 내다보고는 후회가 되어 에집트로 되돌아가지 않을까 염려하셨던 것이다.”


이 귀절은 우회하여 탈출하게된 경로가 하느님의 섭리에 의한 것임을 고백한다.


블레셋땅은 북쪽으로 통하는 상업적, 군사적 주요도로였고 에집트의 전초부대가 수비하고   있던 곳이기 때문에 히브리인들은 이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무장했다 하지만(출애굽기 13,18) 에집트와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히브리인들은 군사적 모험을 강행하기 이전에 사막의 체험을 통하여 뭉칠 필요가 있었다.




* 성서밖의 문헌의 이스라엘에 대한 최초의 언급 *


파라오 메르네프타(Mer-ne-ptah) 그는 1225년 승전비에다가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숙적들을 쳐이긴 승리를 이야기했다. 거기에 이스라엘에 관해 언급이 되어 있다.


“큰 기쁨이 에집트에 도래했고 즐거움이 타메리 도읍들에 쏟았다. 사람들은 테헤누에서 얻은 메르네프타의 승리를 이야기하며 말하기를 사람들이 위대한 그 영도자를 얼마나 사랑하며, 사람들이 그 왕을 신들 가운데 헤아리며 얼마나 높이는가! 제국의 주인공은 복도 많아라”


…제후들이 엎드려 ‘평화’라고 말하고, 아마도 구궁(九弓)사이에서 머리를 쳐들지 못한다. 테헤누가 파괴되고 하띠가 평정되었다. 가나안이 그 모든 악행자들과 더불어 휩쓸렸고 아스켈론(ashkelon)이 위험되고 제젤이 사로잡혔다. 야노얍이 전멸되었다. 이스라엘이 황폐되고 그 족속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후루(Huru)는 에집트 앞에서 과부신세가 되었다. 모든 나라들이 평정되고, 동요되던 모든 자가 에집트 상부와 하부 지방의 왕의 손에… 레(re)의 아들(Amon)의 사랑을 받던 메르넵타왕에 의하여 제압되었다.




* 예루살렘 Bible에 나타난 기록.


성조들은(아브라함) 1850년 가나안에 도착. 1700년 성조들이 에집트에 이주.


cf) 에집트 이주의 세 학설.


1) 힉소스 통치시대 : 1700년대 – 1580년경


2) 아르메노피스 4세 : 1477년  – 1358년


3) 에집트 제 19왕조 : 1345년  – 1200년대


– 아람족이 나일강 뎊타에 이주하였는데 이 부족이 후대에 요셉의 집안으로 나타난다고 묘사한다.  –> 연대적인 차이를 설명하기 어려운 약점이 있다.


1250년경 출애굽이 이루어지고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율법을 받음.




성서에 나타난 문헌으로만은 그들이 어떠한 경로로 탈출하였는지 분명히 이야기 할 수 없다. 불란서의 성서학자 de Vaux신부에 의하면 히브리인들은 두 집단으로 나누어져 탈출했을 것이다(성 바오로 지도 p10. 영원한 도움 지도 p4참조).


에집트 탈출, 추방은 여러세대에 걸쳐 여러 지파들이 점차적으로 하였다. 그러기에 여러 경로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 출애굽 경로 (지도와 함께 볼 것.)


고센 –> 수꼿 –> 쓴물호수(갈대바다?) –> 엘람 –> 바알스본 –> 마라 –> 엘림 –> 르비림 –> 시나이산(호렙산) –> 하세롯 –> 카데스 –> 호르산(아론이 죽은곳) –> 느보산(모세가 죽은 곳) –> 요르단강 건넘(여호수아가 인도) –> 길갈 –> 예리고 –> 아이(남,  북으로 갈라짐)ꠏꠇꠏꠏ&#43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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