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기계 역사서
제 1 장 개요
가. 구조
성서입문 p256-263 참조.
이들의 작품은 두 부분으로 된 한권의 책이었다. 즉,
꠆ꠏ아담 – 유배까지의 상황 – 역대기 첫째 부분
ꠌꠏ본국 귀환(유배이후) – 에즈라 개혁의 상황 – 역대기 둘째 부분
꠆ꠏ첫째 부분 – 현재 역대기 상․하권
ꠌꠏ둘째 부분 – 현재 에즈라서․느헤미야서
둘째 부분이 랍비들에 의해 먼저 정경으로 채택되었고, 첫째 부분은 이보다 나중에 정경으로 채택되었다. 따라서 히브리성서에는 에즈라서, 느헤미야서가 역대기 보다 앞서 나온다. 그런데 이 역대기계 역사가들의 작품은 히브리성서 목록에서는 성문서 부분에 속한다. 그 이유는 이 작품들이 하나의 역사기록이라기 보다는 경건주의적 관점에서 역사를 표현, 반성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따라서 역대기의 해석이 이전의 역사들, 즉 신명기계 역사에 대한 해석과 다르다는 점을 전제해야 한다. 그 중요한 차이점은 다음의 구조에서 보여준다.
1. 아담 – 사울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역대상 1-9).
2. 다윗에 관한 부분(역대상 10-29).
3. 솔로몬의 행적(역대하 1-9).
4. 솔로몬의 죽음으로부터 포로기까지(역대하 10-36) – 솔로몬 이후 북조 이스라엘에 대한 언급이 없고 유다 왕국의 왕들에 대해만 언급함도 주지할 필요 있음.
나. 특징
이와 같이 역대기 역사가들은 다윗과 솔로몬, 특히 다윗을 이상화시킨다. 따라서 다윗의 왕위 계승사 같은 문제가 나타나고 있지는 않다. 또한 바쎄바와 우리야에 관한 언급도 없다. 솔로몬이 자신의 왕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얼마나 가혹한 행위를 하였는지도 다루지 않는다. 그러나 왕에 대한 이러한 이상화의 경향은 후대에 와서 점점 희석되고, 퇴색되어 간다. 그들의 운명은 그들의 종교적 또는 비종교적 행적에 따라 결정된다는 인과응보의 관념에 영향을 받는다. 이처럼 역대기 역사가의 저술은 왕조와 왕과 예배를 강조하였다. 특히 성전 예배를 강조함으로써 성전이 하느님의 발현 장소라는 것을 강조한다. 따라서 축제와 예배의식 및 거기에 참여하는 백성들이 갖추어야 하는 준비와 지향등을 중요시 다루게 된다(특히, 과월절이 강조됨).
다. 역사
에즈라 1.1-4 →고레스 왕이 유다인들의 귀환을 허락하는 칙서
– 역대하 36,22-23의 내용과 상통
유다인들의 3차 유배이후 생활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많지 않다. 팔레스티나는 근동 지방 동쪽과 서쪽의 중간 지점에 있었기에 군사적․경제적으로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었다. 동시에 고대 강대국들이 패권을 놓고 각축전을 벌이던 장소였다. 에집트, 앗시리아, 바빌론 제국이 서로 이 팔레스티나를 자기의 세력권에 넣으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이제 페르시아가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한다. 페르시아는 세력을 억제하기 위해 서쪽으로 서진 정책을 편다. 이때 바빌론 제국은 서서히 몰락하고 있었다. BC 539년 페르시아왕 고레스는 유프라테스강의 오피스 전투에서 바빌론 왕을 제압하고 그쪽 지역의 패권을 장악한다. 바빌론은 페르시아의 속국이 되었고 538년 고레스왕의 칙령에 의해 유대인들은 팔레스티나로 돌아갈수 있었다. 유대인들은 고레스를, 하느님의 명령으로 바빌론을 멸망시키고 그들을 해방시켜 주기로 되어있는 왕으로 여겼다(이사야 45장 1절 이하 참조). 이 칙령의 사본은 페르시아왕 서고의 사본에도 나온다.
에즈라 2,64에 의하면 BC 537-522년 사이에 팔레스티나로 포로들의 귀환이 이루어진 것같다. 그들을 인도한 것은 대사제였던 예수아와 여호야킨 왕의 손자 즈루빠벨이었다.
그런데 새로운 유다인 국가가 다시 팔레스티나에 등장하는 것을 두려워한 사마리아 주민들이 페르시아 당국에 무고하게 성전 재건 공사를 방해한다. 그래서 성전 건축은 517년에서야 비로소 완성된다. 바빌론에서 성장한 제관이며 율법학자였던 에즈라는 BC 458(또는 428) 아르닥싸사왕으로부터 전권을 받고 유대인들의 일부를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그들의 생활에 깊이 스며든 이교적 요소를 배제하고 유다인 공동체를 장화하면서 종교개혁에 힘쓴다.
같은 시기에(445년경) 느헤미아도 아르닥싸사왕에게 전권을 유임받고 예루살렘 유다인들의 곤궁을 해결하기 위해 팔레스티나로 그는 안팎의 방해와 반항을 무릎쓰고 성벽과 도성의 문을 재건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