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즈라․느헤미아

 

에즈라․느헤미아




에즈라와 느헤미아서는 BC 538-432의 100년의 기간동안에 걸쳐 즉 바빌론 포로귀환으로부터 느헤미아 말기의 활동말기에 이르기까지다. 이 책은 어떠한 연대순에 따라 일관성있게 기술되었다기보다 에즈라, 느헤미아의 활동에 근거해서 기록하고 있다.


p 262 에즈라, 느헤미아서의 요약


내용


① 페르샤왕의 칙령 : 성전 건축허락의 내용-성전봉헌의 의식(에 1-6)


② 율법조인(율법의 말씀대로 살겠다는 의미에서의) – 참회예배와 서약에 관계된 내용(일종의 의식과 관계되는 내용)


③ 페르샤왕의 칙령 : 성벽건축 허락 – 성벽을 봉헌(느 1-7;11-13).


에즈라, 느헤미아에 나타나는 이상의 3구조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페르샤왕의 칙령이 유다인 종교 공동체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귀화 후에 그들의 삶은 공적인 공동예배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음을 시사.




이 두사실을 참조할 적에 베스터만이 지적하듯이


① 페르시아의 통치에 대한 완전하고 적극적인 충성이 유다인 측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② 사마리아인들로부터는 독자적인 노선을 걸으려는 시도가 보인다.


③ 혼종혼 문제에 대한 심각한 반응을 보임


④ 에즈라가 가져온 율법을 낭독하고 백성들에게 율법준수를 강력히 요구했는데 이러한 권한은 페르시아왕으로부터 위임받았음을 언급하고 있다.


에 6,13-18 우여곡절 끝에 성전이 건축되었다는 기사가 나온다. (성전중심으로 종교생활을 함)


그러나 에 7-10, 느 8-10 예루살렘의 어두운 상황이 묘사된다. 에즈라 개혁하지 않으면 안될 자극을 받게 된다. 자신이 가져온 율법을 기초로 하여 개혁을 단행한다. 하지만 에즈라가 단행한 이 개혁은 사회적, 통치권적인 차원에서의 법률이 아니라 종교적인 의미에서의 율법이었다    (종교적으로 그들을 결속시킬 뿐이지 어떤 공권력이 담긴 법은 아니었다).


이 율법에 준한 공적인 공동예배만이 수많은 어려움에 직면한 유다인들을 종교적으로 결속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율법중심의 종교가 탄생하게 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 율법중심의 율법이 강조되는 것은 더욱더 완고해지기 시작 – 후대 유다이즘으로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베스터만이 지적하듯이 우리는 이 역대기의 역사가 작품안에서 경건하게 봉헌된 기도, 심금을 울리는 기도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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