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예언서
제 1 장 개요
* 히브리 성서의 예언서
꠆ꠏꠏ전기예언서 – 여호수아, 판관기, 사무엘 上下, 열왕기 上下의 4개의 두루마리
ꠌꠏꠏ후기예언서 – 이사야, 예레미야, 에제키엘, 12소예언서의 4개의 두루마리로 구분
대부분이 역사적인 설화가 실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 판관기, 사무엘, 열왕기 이 4권의 책을 전기예언서로 부르는 이유를 살펴보았다. 그 이유는 4권의 책의 저자, 또는 편집자들이 책속에 등장하는 주요인물이 예언자들이었다고 본 학자들의 견해와 다른 이유에서 이 책들은 주로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예언적 해설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그 원인을 규명해 보았다. 즉 587년 국가멸망을 전후해서 바빌론 유배를 체험한 사람들이 하느님의 예언자들이 말씀을 바탕으로 해서 과거의 역사를 상세히 분석하여 현재를 위한 반성의 자료로 삼고 미래를 위한 회심과 희망의 근거로 삼기위해 예언서를 저술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전기예언서는 예언자의 가르침을 역사에 적용한 이른바 예언자들의 메시지와 교훈에 대한 해설서라 할 수 있으며 반면 후기예언서는 예언자가 직접 저술활동을 했거나 그 제자들이 문서로 남기는데 예언자 자신이 지대한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이후의 예언자들을 작가예언자, 또는 문서예언자라고 부른다.
1.예언의 역사
예언기간 : 왕정시작부터 유배시기 이후까지 지속.
전기예언서: 초기 예언역사에 관한 정보제공을 주고 있으며, 후기 예언서에 와서 본격적인 의미의 예언역사가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예언 역사의 발전(p139 도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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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판예언 ꠨ 구원예언(제의 예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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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역사 ꠨ 사무엘 上下와 열왕기 上下에 ꠨ 사무엘 上下와 열왕기 上下에 ꠨
꠨ (1200-750) ꠨ 나타나는 예언자들 ꠨ 나타나는 예언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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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 기 ꠨ 아모스 호세아-북 ꠨ ꠨
꠨ (750-700) ꠨ 미가. 제 1 이사야-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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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 기 ꠨ 스바니야, 예레미야 ꠨ 나훔 ꠨
꠨ (650-587) ꠨ 에제키엘 <ꠏꠏꠏꠈ ꠨ 하바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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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3 기 ꠨ ꠌ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ꡃꠏꠏꠏꠏ> 에제키엘 ꠨
꠨ (포로기) ꠨ ꠨ 제 2 이사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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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4 기 ꠨ 말라기 ꠨ 하 깨 ꠨
꠨ (520-470) ꠨ ꠨ 즈가리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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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언의 형태
① 구원에 관한 예언 – 주로 이스라엘에 해당
② 심판에 관한 예언 – 외국나라에 해당(이스라엘 심판에 대한 예언이 있지만 뒤에 가서는 구원에 관한 예언으로 바뀜)
문학유형 ① 설교형태 – 심판, 구원:신탁
② 보도형태 – 이사야(7장,8장) 예레미야(1장)일부 및 요나서의 전체
: 예언자 전기나, 소명설화
③ 탄언, 탄식형태 – 하느님을 향하여 던지는 말들(예레미야의 애가와 아모스의 송영)
3. 예언서의 형성과정
–예언자들 메시지를 입으로 전함이 폭넓게 인정
–대부분 예언자들은 공적이고 정치적 영역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그들이 발설한 내용 소위 토막말이 광범위하게 유포되었다.
–예언자들 정치와 밀접히 관련되었지만 그러나 영성면에서 그를 우위에 두고 강조하였다.
–토막말의 유포 흔적 : 베델의 사제 아마지야가 아모스가 발설한 불길한 신탁을 말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아모스서 7, 10- ).
(예레미야 26,17-19;미가 3,12) 예레미야 재판중에 죽을 위험에 직면하자 그 자리에 배석했던 예언자들이 100년전 예언자 미가의 말을 인용 죽음에 직면한 그를 구함)
많은 경우 이러한 토막말 (언사) 가 모여 collection(수집) – 예언서를 이룬다.
언사들과 수집들은 그 예언이 발설된 직후에 표기된 것으로 추정 ex) BC 605년 예레미야는 20년 이상에 걸쳐 자신이 전한 토막말을 전하여 다시 쓰게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예레미야 36,21-23;36,32 : 위기 모면한 후에 다시 쓰게 함).
이러한 저술은 ① 어떤 경우에 예언을 말로 전할 수 없을 때 비상수단으로 쓰기도 했다.
아모스 7,12 – 사마리아에서 아모스 추방 , 더 이상 전할 수 없기에 저술에 의지.
예레미야 또한 성전에서 말씀 전하는 것이 금지되었기에 글로 저술된 가능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② 동시에 예언서 수집들의 저술은 정치적 , 군사적 재앙이 위협할 때 예언을 잘 보존할 필요가 있기에 저술됨 (복음서 – 목격증인 사라지고 사람들이 많아지기에 구전이 기록되었듯이 예언서도 어려운 상황에서 예언을 보존하기 위해 글로 남음).
이 사실은 왜 예언이 특별히 BC 8-7세기경 앗시리아를 중심으로 한 전쟁의 위협이 상당히 상존해 있던 시기에 많이 저술되었는지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혀준다고 볼 수 있다.
예언자들은 주로 구두로 말씀을 전했는데,그것이 발설 거의 즉시 그 제자들에 의해서 혹은 본인의 저술에 의해서 글로 남기게 되었다. 이렇게 글로 남기게 된 여러 이유 중에는 그 메시지를 입으로 전할 수 없었기에 비상수단으로서 글로 남기게 되었는데, 특별히 군사적, 정치적 재앙의 위협을 받고 있을 때에 예언 메시지를 글로 저술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에서 예언이 한창 번창했을 때에 예언자들의 제자들은 얼마 안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궁이나 성전, 그 밖의 일반 사람들에게도 예언 메시지가 잘 전달된 것을 보면 신비스럽다. 일반 대중에게까지 예언 메시지가 전달되었는지의 여부를 증명하는데 에는 어려움이 있겠으나 여하튼 왕궁이나 성전 밖에서 예언자들의 말씀이 전달되고 있었다. 그것도 놀라운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얼마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잘 보관되었다는 것 때문이다.
이상에서도 같이 예언서의 형성에서 첫 단계는 예언자가 말한 내용을 어떤 사람이 기억하고 수집하고 이러한 수집을 질서정연한 어떤 통계에 의해서 다시 보았다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예를 들면
①반복되는 후렴구에 의해서 한곳에 모아진 곳이 있는데 (이사야 5.24-25;9.7-10.4를 참조하라)
②시작하는 양식이 똑같기 때문에 한 곳에 모아진 곳도 있다. 그 예로 이사야 5,8.11.18.20.21을 들 수 있겠다. ‘아! 너희가 비참하게 되리라.’라는 양식에 의해서 한 곳에 모아지기 시작했다. 그런가 하면
③공통된 주제에 의해서 모아진 곳들도 있고, 특수한 역사적인 사건과 연결시켜서 모아진 곳도 있다. 예를 들면 이사야 7.1-8.15를 보면 서로 에브라임 전쟁 테마를 중심으로 모아졌다.
이렇게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이런 수집들은 정돈되기 시작했다. 또한 이러한 것들은 전기나 예언자들의 자서전 같은 것들과 합쳐지면서 더욱더 발전하게 된다.
④또한 어떠한 경우에는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한다고 볼 수 없는 기원을 알 수 없는 토막말들이 단순히 모여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 예로 이사야 2.1-5;미가 4.1-5를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구절들을 읽어보면 내용이 서로 비슷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비슷비슷한 기원을 알 수 없는 것들을 한 곳에 모았다고 볼 수 있겠다.
또한 근동지방 다른 것에서처럼 이스라엘에서의 예언활동은 정치적, 군사적, 문화적으로 위험한 동안에 왕성하게 전개되었다고 이미 언급하였다. 근동지방의 경우 이스라엘 보다 훨씬 앞서서 이런 예언 현상이 있었는데, 예를 들어서 Mari왕국을 들 수 있겠다. 유프라테스 계곡에 있는 옛 도시 국가로서 기원전 1765년경에 함무라비에 의해서 멸망한 나라이다. Mari왕국의 신탁을 이 나라가 바빌론왕 함무라비에 의해서 정복되기 전, 즉 왕조가 아직 건재했지만 이미 기울기 시작해서 위험에 처해 있을 적에 번창한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에서는 기원전 640-586년, 즉 예루살렘의 멸망 직전의 이사야 시대부터 이스라엘이 군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에 처해 있던 그런 격동기에 예언 활동이 왕성하였다고 볼 수 있겠다.
또한 아모스서나 호세아서의 어록들이 수집과 편찬은 722년 사마리아, 즉 북조 이스라엘이 멸망한 후에, 왜 북조 이스라엘이 멸망하였는가를 신학적으로 반성하면서 아모스서나 호세아서의 어록을 수집, 편찬하였지 않았는가 하고 학자들은 보고 있다.
마찬가지로 예루살렘 멸망 이후 135년후, 즉 기원전 450년경에 같은 이유로 Diaspora 유대인들과 팔레스티나 유대인들에 의해서 예언서들이 수집되고 편찬되고 교정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것은 587년 내지 556년에 있었던 예루살렘의 멸망을 체험한 이 사람들이 그 멸망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으면서, 그 멸망의 원인이 예언자들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음에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을 기점으로 해서 이러한 예언서의 수집, 편찬, 교정작업이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722년 사마리아가 멸망하였을 적에 아모스서와 호세아서가 수집, 편찬된 것으로 보이며, 예루살렘 멸망 이후 135년후인 기원전 450년경에 다시 한번 예언서의 수집, 편찬, 교정 작업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수집, 편찬, 교정 작업은 공동체의 필요에 대해서 손질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손질 작업은 유배기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있었음을 우리는 성서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이제 예언서의 흐름의 과거를 되돌아보는 회상적인 방향으로도 나타나는데, 즈가리야 1,8-7,7이 거기에 해당된다. 이전에 발설된 예언에 대한 해석을 하게 되는데, 그러한 예는 다니9.1-2에서 찾아 볼 수 있겠다. 이전 예언의 해석 방향을 종교적 영향 안에서의 가르침과 연결시키고, 그렇게 이해하게 된다.
그러므로 현재의 모습을 갖춘 후기 예언서는 수세기에 걸쳐서 점진적으로 수정되고 보완되고 확장된 과정의 산물이라는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이런 과정 안에서 포함된 수집, 편찬, 손질 등은 예언에 대해서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지 않다. 그들은 비판적으로 예언서를 작성할 의도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예언의 손질과 전수 과정은 이미 언급하였듯이 그들이 속해있던 공동체의 필요에 의해서, 즉 야훼 신앙을 돕기 위한 필요에 의해서 쓰여졌기 때문에 예언서의 저자들은 역사적인 문제에 대해서 언급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것이 누구의 작품인가? 그것이 언제 발설되었는가? 앞뒤가 맞고 안 맞고에 관하여 관심이 없다.
예언서의 손질 작업은 이미 말했듯이 공동체의 필요에 의해서 야훼 신앙을 돕기 위한 필요에 의해서 쓰여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야훼의 눈으로 역사적인 문제를 거의 무시하고 이 야훼신앙을 돕기 위해서 예언을 인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예언서에서 현저하게 나타나는 형태가 있다. 그것은 심판 뒤에 구원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4. 예언의 어원과 의미
고대 희랍에서 예언은 정상적인 상태에서 신탁을 주는 것과 관련도 지을 수 있고, 또는 황홀경 상태에서 탈혼 상태에서 신탁을 주는 것과 연관시킬 수 있다. 예를 들면, 델피라는 옛 희랍도시의 제우스 신전에는 제우스 신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예언자라고 불리는 성전 참모로부터 작건, 크건 간에 어떤 문제에 관하여 자문을 얻곤 하였다. 이 예언자를 지칭하는 단어가 두개 있다.
① π ρ ο φ η τ η ς (π ρ υ ψ η ι ε ν ω) :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말하는 사람, 주로 신을 대신하여 메시지를 선포하는 사람을 의미하였다.
② μ α ν τ ι ς (μ α ν τ ε υ ω) : 부드럽게, 듣기 좋게 말하는 사람을 말할 수도 있고, 점장이, 선견자, 예언자를 지칭한다고 볼 수 있겠는데, 주로 황홀상태에 빠져 신탁을 전하는 사람과 그러한 행동을 취한 사람들과 관련시켜서 사용된 것 같다.
옛 이스라엘에 있어서도 이러한 두가지 현상이 모두 관련지어져서 나타나고 있다. 성서에 의하면 사무엘 시대에 가나안 사람들의 예언자 guild/gild(조합이란 뜻)가 집단적으로 있는데, 탈혼하는 무리로서 나타나는데 그러한 예는 Ⅰ열왕 18,20-40에 나타나고 있는데, 어떤 예언자들은 성소를 중심으로 살고 있었고 그들은 가끔 가다가 탈혼 상태를 일으킨다는 내용이 나온다. 특히 길갈과 베델을 중심으로 해서 이러한 현상이 있었음을 성서는 여러 군데에서 전해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신명 18.9-14에서는 부정적인 측면에서 예언 현상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점쟁이나 마술사나 술객 등등의 현상을 참조할 수 있겠다.
또한 Ⅰ열왕 13장을 보면 유다에서 온 익명의 하느님의 사람 같은 순회 예언자도 볼 수 있다. 엘리야, 엘리사도 순회 예언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고, 베델과 길갈과 예리고에 있었던 예언자단의 우두머리였던 것 같다. 이처럼 히브리 성서에서 예언자가 비록 황홀경이라든가 탈혼상태에 또는 점치는 행동, 그러한 행동을 취하는 사람과도 연결되어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또한 그들이 예언자 길드나 수련소 등에 소속되어 공동체를 형성하여 산다는 점 등이 가나안 지방이라든가 희랍과 유사하지만 성서에서 얘기하고 있는 경전예언자들은 실신 상태에 빠져서 직업적으로 예언하는 무리와는 엄격히 구별지어져야 될 것이다. 그리고 마땅히 구별해야 한다. 사실 이러한 탈혼은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높이 평가되던 것은 결코 아니다. 그래서 BC 3세기경의 유대학자는 70인역을 번역할 적에 π ρ ο φ η τ η ς와 μ α ν τ ι ς를 구별해서 번역한 것 같다. 그래서 π ρ ο φ η τ η ς같이 탈혼과 연관된 단어 대신 μ α ν τ ι ς를 주로 선호했다고 볼 수 있겠다. 이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 가나안 지방의 예언자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하느님과 맺은 계약상의 약속과 요구를 해설한 야훼의 대변자였다는 것이었다.
예언자를 지칭하는 말들은 다음과 같다.
1) א י ב נ :영감을 받은 사람
2) ה ז ח :환상, 환영을 보는 사람.(visionary)
3) ה א ד :선견자, 선각자, Seer
4) מ י ה ל א שׁ י א :하느님의 사람
이 4개의 단어 중 가장 많이 사용되던 단어는 א י ב נ 였다. א ב נ 동사에서 나온 것인데, 「영감을 받다, 예언하다」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논쟁의 여지가 아직도 있지만 많은 학자들이 아카디아어에서 유래한다고 보고 있다. naby라는 동사에서 나온 nabi’um이라는 명사에서 기원한다고 하는데, naby는 「선언하다, 부르다」의 의미의 동사이고 거기서 나온 명사형이 nabi’um이다. 즉, 수동태로 사용되어 불리움을 받은 사람이란 의미가 되겠다. 하느님을 대신하여 말하기 위해 불리움을 받았다는 의미이겠다. 예를 들면 출애 4.14-16;7.1-2를 보면 아론은 모세의 대변자로 나타나는데 여기서 나비(א י ב נ)이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예레 1.9에서도 하느님께서 당신 말씀을 예레미야의 입에 담아 주겠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으며, 또한 예언자들의 신탁형식도 「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말로 시작하고 또한 이러한 말로 끝맺는다는 점을 참조할 적에, 예언자가 하느님을 대신하여 말하는 사람, 즉 하느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사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단어는 포괄적인 용어로써 정경예언자 자신들도 자신들에 대하여 나비(א י ב נ)이라는 단어를 그렇게 많이 사용하지는 않았다. 사무엘 시대에 와서 이 단어는 이스라엘 사회 내에서 특수한 계층의 사람들, 예를 들면 성전이나 법전에서 전문적으로 종사하는 사람들을 자칭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이 단어의 의미는 예언직의 중요함을 상징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에, 어원적으로 라기 보다는 주변 텍스트 안에서 살펴보아야 될 것이다. 즉, 사무엘 시대에는 이 단어가 꼭 예언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단어가 아니라, 특수한 계층의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어였던 것이다. 그래서 Context안에서 살펴보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성서에서 말하는 예언자는 미래를 내다본다는 의미의 예언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미래를 내다보는 예언자들도 있지만 미래를 내다본다는 의미의 예언자만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앞을 내다보는 사람을 豫言者라고 쓰는데 이것이 아니라, 성서에서 말하는 예언자는 預言者이다. 하느님으로부터 예탁된 말씀을 받아 전한다는 의미에서 예언자라는 의미가 되겠다. 따라서 성서적 의미의 예언자는 Max Weber가 말한대로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겠다. ; 「카리스마를 지닌 종교적 사람으로서, 그는 사람들 앞에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사람,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
이 밖의 자세한 예언 현상이라든가 문학 유형, 소명 설화, 현시 설화, 양식 등은 예언서 강의 시간에 구체적으로 언급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