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가장 인간적인 면을 볼 수 있다. 그는 자기 출생을 저주하기도 한다. 사제출신, 평생 독신으로 살다 죽었다. 그의 부친은 히즈키야로 다윗왕 시대 사제직을 수행하던 엘리아달의 후손으로 여겨짐. 그는 요시아와 13년 어린 나이에 예언자가 되었다.
예레미야는 아나돗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부친 힐키야는 다윗왕의 사제였던 에비아달의 후예로 보인다. 에비아달은 솔로몬에 의해 아나돗으로 추방되었는데, (열왕上 2,26-27) 그 이유는 에비아달이 솔로몬의 정적이었던 아도니아를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에비아달은 실로의 사제였던 엘리의 아들인 비느하스의 증손자로 추정된다.
예레미야는 요시아왕 13년 (BC 627-626) 어린 나이에 예언자로 선택된다. 처음에는 아나돗에서 예언을 시작하였으나 주민과 가족들로부터 분노를 사게 되었고 그 후에는 예루살렘에서 활동하게 된다. (예레 11,21 ; 12,6 참조) 그의 활동초기에는 신생 바빌론과 이란의 부족 국가 메데가 등장한다. 아시리아의 수도 니느웨는 위협을 느끼게 되고 바빌론과 메데는 니느웨를 파괴하기 시작한다.
또한 그의 활동 중에 요시아왕이 죽게 되고, 여호야킴 시대에는 예레미야가 국제 정세에 대해 조언을 하였고 이에 불응하는 왕에 대해 비난을 한다. (22,13-19 참조) 또한 성전 파괴 예언을 한다 (26,1-9). 이것은 상당히 무거운 죄로 다루어졌다.
예레미야에는 예언서에 등장하는 3가지의 설화형태가 나타난다.
① 신탁으로 표현되는 예언적 메시지 (1-25장,30-35장,46-51장)
② 사건의 보도 형식 (19장,26-29장,36-45장) → 예레미야의 수난설화
③ 하느님께 올리는 청원 (일종의 개인적 탄원형식)
또한 예레미야는 세개의 문학단위 안에서 성장 발전된 것으로 생각된다. 특별히 예레미야는 작은 책들의 여러 수집들이 많이 첨가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25,1-14는 25,1-24까지의 결론이라고 볼 수 있는데, 즉 유다-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예언 모음이다(특히 25,13 참조).
25,13에는 책이라는 말이 나오며 이를 통해 독립된 예언의 책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46-51의 이방민족에 대한 심판의 말씀도 독립된 책으로 보며 30-33까지도 독립된 책으로 본다. 이와 같이 예레미야는 여러 개의 책들이 모여 형성된 것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여기서 앞에서 언급한 3가지 문학유형을 다시 보면 두번째 양식인 전기내지 사건보도 형식은 예레미야의 수난설화와 연결되어 나타나는데, 이것을 바룩에 의해 기술된 것으로 보기 때문에 일명 바룩 설화라고도 말한다. 세번째 문학양식에는 신명기 역사가들에 의해 손질된 예언자들의 말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이것은 예레미야서 구석구석에 산재되어 나타난다. 신명기와 같은 설교체로 되어 있으며, 확연하게 독립적인 단편을 구성하지 않고, 예언 메시지와 예레미야 수난설화에 산재해 나타나고 있다.
※ 예레미야의 구조
1)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의 말씀(1,1-25,14)
2) 이방민족에 대한 심판의 말씀 (25,15-38;46-51장) 70인역에서는 이 부분이(25,13) 다르게 나타난다.
3) 유다에 대한 구원약속(30-35장)
4) 예레미야의 수난설화 (26-29장;36-45장)
5) 역사적 부록 (52장 = 열왕下 24,18-25,30)
이 부분은 제 1이사야가 역사적 부록과 끝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레미야의 결론으로서 마감하고 있다. 이 결론은 예레미야 생애에 있어 결정적 사건이었던 예루살렘의 멸망을 말해 준다. 예레미야는 세 권의 독립된 책으로 구성된다. 그 사이에 전기 형태의 예레미야 수난설화가 끼여들었고, 그 마지막에 결론으로 역사적 부록이 참가된 것이다.
가. 유다에 대한 심판 예언 (1,1 – 25,14)
1) 예레미야의 소명과 심판에 관한 예언 (1,1-10,25)
① 예레미야의 소명과 위임 (1,1-19)
∘책의 제목(표제) (1,1-3)
∘2절에 예레미야가 소명받은 시기가 나온다(요시아 즉위 30년 즉, BC 627).
∘소명에 관한 기사 (1,4-10)
이것은 이사야 6장 에제키엘의 1-3장의 소명설화와 유사하다. 이 소명기사는 예리먀아와 야훼와의 대화형식으로 되어있다. 예레미야는 태어나기 전부터 예언자로 점지되었음을 야훼의 입을 통해 깨달음, 예레미야는 야훼의 대변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다.
∘이어서 두개의 환상이 나온다(1,11-12;13-16).
첫번째 환상은 감복숭아 나무 (언어의 유희, 감복숭아, 지켜보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그의 말씀을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그에게 말해주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감복숭아 나무가 자신과 하느님과의 통교를 지켜본다고 이해하였음.
두번째 환상은 큰 재앙이 그 땅에 임할 것임을 말해준다.
∘그리고 소명보도의 결론이 1,17-19에 파견형식으로 나온다.
② 심판에 관한 예언 (2-10장)
예레미야의 설교의 특징으로 2,1-13에 요약되어 나타난다. 그 특징은 죄의 고발, 회심에로의 초대, 도래할 심판이 어떤 것인가, 비극적 파멸에 대해 예고하는 것이다. 하느님이 당신 백성에게 내린 축복과 그에 상응하지 못하는 불충한 백성에 대한 고발과 비난, 잡신을 숭배하는 이방민족이 자신들의 신에 충실함을 역설적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하늘과 땅을 불충한 백성들에 대한 증인으로 부르고 있다(12-13절). 특히 2-10장 부분에는 7장과 8,1-3에 성전설교와 첨가된 말들이 이 부분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여기서 예레미야는 판관시대에 필레스틴 사람들에 의해 실로 성소가 멸망된 것처럼 예루살렘 성전도 그렇게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26장의 성전파괴와 연결시켜 생각해야 한다. 예레미야는 이것 때문에 일생동안 어려움에 봉착한다.
2) 애가와 심판예언 (11,1-20,18)
① 개인적인 탄원시와 예레미야의 고백
a. 아나톤 백성의 암살계획 (11,18-12,6)
무고한 자신을 죽이려는 계획에 대해 방관하는 하느님에 대한 탄원함. 하느님은 그의 편이심을 확인해 준다. 여기서는 개인적인 탄원시가 나온다. 앞으로 인용하는 성서귀절은 자신의 직무에 충실한 예레미야의 번민과 고뇌가 표현되고 있다. 제 2이사야서의 야훼의 고통받는 종이 이와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예레미야의 모습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b. 하느님의 손아귀에 있는 예레미야의 고백(15,10-20)
인간적 고독속에서 그는 번민한다. 그 고독은 직무의 충실함에서 오는 것이다. 하느님은 그를 꾸짖으시고 소명과 위임시의 약속, 즉 내가 너와 함께 있어 이를 지켜주시리라는 것을 확인한다.
c. 원수를 처벌해 달라는 탄원시 (17,14-18;18,18-23)
d. 뼛속에 사무친 수치와 모욕 (20,7-11) : 예레미야의 인간적인 번뇌가 잘 나타난다.
e. 탄식의 노래 (20,14-18)
② 개인의 신상문제가 아닌 일반적인 탄원과 심판 예언
a. 가뭄에 읊은 민족 탄식시 (14,1-15,4)
예레미야는 동굴의 재난과 하느님의 분노사이에서 동족에게 말씀을 전하려 했으나 거절당한다. 이 탄식시는 공동체의 탄식시이다.
b. 도래하는 심판의 표징 (16,1-13)
예레미야의 생애가 도래하는 심판의 표징이 된다.
c. 옹기장이 집에서의 예레미야의 예언 (18,1-12)
d. 오지그릇을 깨며 예언함 (19,1-20,6)
예레미야는 야훼의 말씀대로 오지그릇을 깸으로써 바스온 사제의 의해 투옥되는데 이튿날 그에게 하느님의 심판을 전한다.
3) 유다 지파들에 대한 말씀 (21,1-24,10)
① 유다 왕가를 비난하는 말씀 (21,1-22,30)
1) 시드키야와 다윗왕조에 대하여 (21,1-22,9)
2) 다른 왕들에 대하여 (22,10-30)
a) 살룸 (여호아하즈) (22,10-12) : 왕들에 대한 신탁은 왕정의 마지막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왕정이 패망의 길로 치닫고 있음) 여기에서는 요시아의 아들로서 왕위를 계승해야 할 살룸이 에집트로 끌려가 거기에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예고가 나온다.
b) 여호야킴에 대한 예고 (22,13-19) : 정의를 실천한 부친 요시아왕과는 달리 여호야킴은 백성을 착취하였다. 그 때문에 잔혹한 죽음을 당하게 된다는 심판이 예고된다.
c) 여호야긴에 대한 예고 (22,20-30) : 여호야킴왕 때 예루살렘을 제외한 전 이스라엘 지역이 바빌론에 의해 점령되었고, 바빌론군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는 동안 여호야킴왕이 죽고 여호야긴이 왕위를 계승한다. 그러나 여호야긴은 예루살렘이 함락되어 불과 3개월간 통치하다 바빌론으로 끌려가게 된다(BC 597-1차 유배).
② 목자․지도자에 대한 비판과 다윗왕실의 새로운 왕을 예고하는 말씀 (23,1-8)
③ 예언자들에 대한 비판의 말씀 (23,9-40)
여기에서 말하는 예언자는 성전을 중심으로 모인 예언자들을 의미한다. 이 부분은 심판을 예고하는 예레미야와 듣기 좋은 말로만 예언하는 이상주의 예언자 또는 복지 예언자와의 대립이 첨예하게 나타난다. 이 예언자들은 꿈을 통해 하느님을 보았음을 주장한다. 그리고 하느님이 자신들과 함께 있다고 주장하였다.
④ 무화과 두 바구니의 비유 (24,1-10)
이 비유는 유다 지도자들에 대해 주신 결론으로 이 비유를 통해 하느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을 사람은 이미 유배간 사람들이 아니라 시드키야 밑에서 예루살렘에 지도자로 남아있던 자들임을 말하고자 하였다.
4) 예레미야 심판 예언집의 결론 (25,1-14)
24장까지의 심판 내용을 결론짓는 부분으로 신명기 역사가에 의해 예레미야가 전한 말들이 유배기간 동안 손질된 대표적인 예로써 드러난다. 여기서는 신명기 역사가의 전형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표현이 나타난다.
“야훼께서는 당신의 종 예언자들을 거듭거듭 보내셨지만 너희는 역시 그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 (25,4.7. 참조)
그래서 그의 활동에 관한 기록은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요시아가 유다 왕위에 오른 지 13년 되는 해로부터 이날에 이르기까지 …..23년을 하루같이” (25,3 참조)
11,1-8도 이와 비슷한 유형으로 되었음을 참작할 적에 유배중에 손질된 것으로 추측된다.
나. 이방민족에 대한 심판 (25,15 – 38; 46,1 – 51,64)
심판에 대한 예언은 에제키엘서나 다른 예언서에서도 비슷한 형식으로 전개되는데 유다에 대한 심판,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이방민족에 대한 심판 이후에 유다 내지는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구원의 순으로 이어진다.
이사야 13-23장, 예레미야 46-51장도 이방민에 대한 신탁을 한 곳에 모아 놓은 것이다. 그러나 그 기원은 모두 예레미야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무명 예언자로부터 기원된 것도 많이 있다. 이 신탁안에는 하느님이 역사의 주님이시라는 사실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이 하느님은 이스라엘에게만 유일하게 활동하시는 분이 아니라 이방인들을 위해서도 활동하시는 분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46,26;48,47;49,6 참조)
a. 다른 나라에 대한 심판신탁 도입구 (25,15-38)
b. 에집트, 필레스틴, 모압, 암몬, 에돔, 다마스커스, 아랍부족, 엘람, 바빌론에 대한 신탁이 이어짐(46,1-51,64). 특히 에집트에 대해서는 두 번에 걸쳐 심판이 예고된다. BC 609년 에집트왕 느고와 요시아왕이 전투를 벌여 요시아왕을 전사케 한 느고가 유프라테스에서 패배할 것이 예고되고 있다(46,3-26). 또한 바빌론에 대한 신탁이 나오는 50,1-51,64까지에서 51,59-64를 제외한 50, 51장의 바빌론에 대한 신탁들은 유배기간 중에 모은 민족 신탁을 편집한 것이다.
다. 구원에 대한 약속 (30 – 33장)
예레미야 시대에서부터 유배후기에 있었던 구원에 관한 여러가지 약속들을 한 곳에 모은 것으로 특히 30-33장, 적게는 30-31장은 ‘위로의 책’이라고도 불린다. 위로의 책은 새로운 법을 마음에 심어준다는 말씀을 담고 있다(31,31-34 참조).
* 예언서의 형성과정 안에서 보면 예언서는 대부분 오랜 시간을 걸치면서 생겨난 여러가지 예언들을 편집자가 하나로 편집하였다. 예레미야서도 세 권의 책으로 모아진 것을 최종적으로 예레미야서에서 한 권으로 편집했다. 편집자에게 예언서의 역사적인 선후관계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편집자는 야훼신앙에 입각해서 어떻게 동족을 가르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예언서를 편집․형성하였다. 그래서 유배 전과 유배 후에 있었던 구원에 대한 신탁들을 한 곳에 모아 전하게 된 것이다.
이 부분에 다윗왕조하에서 백성의 복원과 재통일을 위한 새로운 질서에 대한 약속이 나온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으나 이 주장에는 약간의 문제점도 있고, 또 어떤 학자는 이 부분이 신명기 학파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기도 한다.
a. 구원에 대한 기쁜 소식 (30-31장)
예레미야가 예언자로 활동할 초기에 북조 이스라엘만을 위한 기쁜 소식을 말하던 것이 후에 와서 남북 이스라엘 모두에 해당되는 말씀이 되었다. 이 부분은 주로 조국귀환과 귀환 후의 새로운 생활을 약속하고 선포하는 반면 31,31-34는 다른 종류의 약속이 선포된다. 즉 새로운 계약에 대한 언급이 이 부분에 나타나는데 이것은 남북 이스라엘 모두에게 주어진 약속이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새로움이란 하느님과 그의 백성과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수정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즉 시나이산에서 수립된 계약의 시대는 이미 끝이 나고 하느님의 뜻이 당신 백성의 마음에 특별한 방법으로 새겨진다는 새 계약의 시대가 예고되고 있다. (베스터만) 즉, 하느님의 뜻을 예언자가 중개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친히 가슴에 율법을 새겨주신다. 사실 이스라엘은 불충실 때문에 묵은 계약은 파괴되었고, 그 결과 멸망과 유배를 자초하게 되었다. 교회는 이 말씀이 주님의 만찬 때 성취되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하느님께서 직접 우리 마음에 새겨주신다는 것은 이제 중개자에 의해서가 아닌 자신이 노력하면 우리 주변, 우리 삶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것은 율법하고도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이다.
b. 예레미야의 토지 구입 및 그에 대한 해석 (32장)
숙부의 권고에 따라 예레미야는 적의 점령지역에 있는 땅을 구입하였다. 그것에 대한 해석이 뒤이어 나오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의 상황과 연관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국가의 운명이 위급할 때 지치고 방황하는 백성에게 유배 후에 다시 평화롭게 살게 될 것을 약속하고 있다(36-43 참조).
c. 유다의 예루살렘의 회복 (33장)
라. 예레미야의 수난설화 (26 – 29장, 36 – 45장)
7장에 나오는 성전 설교와 26장의 성전 설교로 인해 예레미야는 수난의 길을 걷게 된다. 군중은 그를 죽이려고 했으나 장로 몇 사람이 백 년 전에 선포된 미가 예언자의 예언을 적절하게 인용함으로써 예레미야를 기적적으로 구출해서 석방해준다(26,17-19). (미가 3,12:미가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쑥대밭이 된다고 예언하였다. 그러자 히즈키야왕이 미가 예언자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회심하여 재앙을 벗어나게 된다)
장로들은 성전 파괴의 예언을 하는 예레미야의 말을 듣고 미가의 말을 받아들인 히즈키야처럼 하지 않고 오히려 잡아죽인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말하며 예언자를 석방케 한다. 그러나 예레미야와 비슷한 말로 예언한 우리야 예언자는 여호야킴왕에 의해 살해된다.
36장의 예레미야는 하느님의 명을 받고 하느님의 말씀을 바룩에게 두루마기에 받아쓰도록 지시한다. 당시 예레미야는 성전에서 추방되었기 때문에 대신 바룩을 시켜서 단식을 지키는 날에 백성들이 모인데서 두루마기를 읽게 하였다. 그 내용은 바빌론이 침공하여 예루살렘이 함락된다는 경고였다. 이는 역시 대역죄에 해당되는 죄였다. 이 말을 들은 대신들이 놀라서 왕에게 보고하는데, 왕은 하느님의 가르침이 담긴 문제의 두루마기를 읽으라고 하고는 그것을 찢어 불사른다. 예레미야와 바룩은 간신히 죽음을 면하게 되고 원래의 두루마기에 적혀 있던 말뿐만 아니라 많은 비슷한 말들을 보태어 증보시켰다고 예레미야서 36,32에 전하고 있다. 그리고 이 예언대로 BC 597년 예루살렘을 정복당하고 왕을 비롯하여 포로들이 유배지로 끌려간다.
27장에서 예레미야는 에돔, 모압, 암몬, 띠로, 시돈의 대표들이 바빌론왕을 거슬러 반항운동을 모의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모였음을 전하고 있다(BC 594-593년의 일로 추정). 또한 27장에서 유배생활이 지속될 것임을 알고 있다. 따라서 유배지의 반응이 여기에 소개된다고 볼 수 있는데, 유배 생활이 오래 지속될 것이니 그 동족-바빌론왕과 백성들(예레 27,1-2 참조)-에게 협조하면서 살라고 권고한다(에제키엘도 비슷한 말을 전한다).
28장에서는 유배로부터의 귀환이 임박했다고 알리는 거짓 예언자(하나니야)와의 대결장면이 묘사되고 있다. 하나니야는 예레미야가 메고 다니는 멍에를 부수면서 2년만 있으면 바빌론왕 느부갓네살이 모든 민족에게 메운 멍에를 하느님께서 부술 것을 예언한다. (28,1) 예레미야는 침묵을 지키다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 하느님의 말씀이 내리자 그 말씀을 받아 전하였다. 이처럼 시드키야 시대의 예레미야는 거짓 예언자들과 최악의 투쟁을 벌였다(37,1-2 참조).
29장에서는 바빌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는 동포에게 보내는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그는 유배간 유대인들에게 함께 살고있는 바빌론 백성을 위해 일하고 기도하라고 권고한다. 여기에서 처음으로 하느님의 백성이 아닌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권고가 등장한다.
37-40장에서는 예루살렘의 포위와 함락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예레미야는 하느님의 심판이 외국 정복자에 의해서 집행될 것임을 예고하면서 마지막까지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수행한다. 그는 백성들의 불길한 운명을 예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동시에 백성들의 운명에 깊숙이 동참하였다. 그는 동족들로부터도 미움을 받고, 투옥되고, 불신을 받으면서도 그들의 고통에 구체적으로 가담한다.
시드키야 재임시 예레미야는 거듭해서 세력을 확장해가는 바빌론에 항거하지 말고 오히려 그 멍에를 겸허하게 수용하라고 왕에게 권고한다(27,12-18). 사제들과 대신들은 예레미야를 죽이기를 원하며 국무대신 여호나단의 관저에 그를 감금한다. (37,15) 예레미야를 하느님의 사자로 생각한 왕은 그를 개인적으로 불러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또한 여호나단 일행이 그를 죽이려 한다는 예레미야의 간청을 받아들여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 근위대의 감옥에 옮겨가둔다.
이곳에서도 예레미야는 침묵을 지킬 수 없었다. 그가 바빌론에 항복하면 살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재앙을 받게 된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한다. (38,2) 대신들이 이를 왕에게 보고하게 되자 왕은 더이상 그를 두둔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예레미야를 그들에게 넘겨주었다. 예레미야는 웅덩이에 넣어져 죽을 뻔하다, 왕에 의해 구출되어 예루살렘이 점령되는 날까지 근위대 울 안에 갇혀 지냈다(38,28). 예루살렘이 멸망하자 바빌론왕은 도주하는 왕-시드키야 왕은 눈이 멀게 된 다음 쇠사슬에 묶여 바빌론으로 끌려간다(39,7 참조)-과 유다지도층을 죽인 반면 예레미야를 석방하여 유다통치자였던 게달리야에게 보살피도록 지시한다(39,14).
바빌론왕이 임명한 유다 총독 게달리야를 암살한 친 에집트 사람들에 의해 예레미야는 바룩과 함께 에집트로 끌려간다(43,6-7). 이 때, 예레미야에게 지도자들이 앞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묻자 예레미야는 유다에 남아 있으라고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전한다. 그러나 지도자들은 이것에 불응하여 예레미야와 바룩을 끌고 에집트로 도망친다. 일설에 의하면 예레미야와 바룩이 에집트에 끌려가 동족에 의해 피살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에집트로 끌려간 백성에 대한 신탁들이 예레미야서에 나온다는 점을 참작할 때, 피살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예레미야를 신앙과 소명에 충실했던 예언자로 부각시키기 위해서 살해되었다는 소식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