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제키엘

 

에제키엘




에제키엘은 예레미야처럼 사제 출신 예언자였다. 그는 행복과 불행, 축복과 저주를 동시에   전한 예언자였다. 그러나 그가 예루살렘에서 활동했는지는 의심스럽다. 단 에제키엘 8,1-4에   의하면 신비스러운 발현 속에서 단지 예루살렘으로 들려갔을 뿐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에제키엘서의 특징은 ‘하느님의 영광’에 대한 기록이 많다는 것이다.


그는 BC 597년 동족들과 함께 제 1차 바빌론 유배 때 유배갔다. 그의 소명설화에 의하면 BC 593-571 (29,17 참조)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이스라엘 전 역사상 가장 비참했던 시기중에 하나로서 모든 것을 잃었던 시기였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이 역사상 살아남기 위해서는 하나의 근본적인 반성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에제키엘은 사제로서의 직분과 예언자로서의 소명 사이에서 큰 갈등을 느꼈다. 현시 장면에서도 나타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징적인 행위를 할 때인 그때에도 온전히 투신하면서 나타내 보였다. 다시 말해서 그는 현시를 볼 때에도 그것을 보기만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 예언자였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예루살렘 이전에는 이스라엘의 심판을  예고했다. 그는 BC 597년 바빌론에 끌려와서 BC 587년에 있었던 예루살렘의 멸망 때까지 심판을 예고했다. 그리고 예루살렘이 함락된 이후에는 백성들에게 희망을 선포하는 구원을 전했다.


① 18.20 – 개인을 강조한 것 같지만(개인적 색채가 보이지만) 공동연대 속에서 민족의 염원과 희망을 강조하고 있다. 공동체안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② 18.31 – 마음의 진정한 변화 즉 새마음을 강조하고 있다.


③ 다윗의 혈통을 이을 왕을 기원한다. 정의와 풍요로움, 평화는 메시아 시대의 특징




가. 이 예언서는 예레미야서나 이사야서와 비슷하게 크게 세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이것은 예언서의 마지막 편집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첫째, 유다․이스라엘을 향한 심판


둘째, 이방 국가를 향한 심판


세째, 유다․이스라엘을 위한 희망의 신탁의 순이다.


나. 베스터만은 에제키엘서를 다섯부분으로 나누는데,


A.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심판 예고 (1-24장)


B. 이웃나라에 대한 심판예고 (25-32장)


C. 파수꾼에 대한 예언 (33장)


33장 파수꾼에 대한 예언은 예언자 에제키엘의 소명에 견줄 수 있는데 2번에 걸쳐 에제키엘은 파수꾼으로서의 소명을 받는다. 이러한 위엄을 그는 우선 소명사화의 마지막 부분이며 동시에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다른 나라들에 관한 심판예고 前 즉, 3,16-26에서 받으며, 구원에 대한 예고 서두에서 받게 된다. 파수꾼으로서의 예언자의 소명은 “하느님이냐, 아니냐?”에 대한 철저한 양자 택일을 선포하는데 있다.


D. 구원에 대한 약속 (34-39장)


E. 새로운 성전에 관한 예언 (40-48장)




다. 아수르멘디에 의하면, 그의 생애와 예언직 수행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A. 도입부분 ; 예언자의 소명사화 (1,1-3,15)


            * 파수꾼으로서의 소명 (3,16-21)


B. 제 1 부  ; 예루살렘 함락이전에 관한 부분으로 심판예고 (4-24장)


C. 중간부분 ; 이방 국가들을 향한 신탁 (25-32장)


             예루살렘 및 다른 민족의 함락


D. 제 2 부  ; 예루살렘 함락 이후에 발설된 신탁 (33-48장)


             이스라엘에 대한 새로운 삶과 희망을 예고하고 있다.


        * 파수꾼의 사명 (33,1-3)


파수꾼의 소명은 큰부분으로 두군데서 나온다.




※ 제1부 ; 예루살렘 함락 이전의 신탁은 심판예고이다.


1. 예루살렘을 향한 상징적 행위(4 – 5장)를 하게된다.


– 예루살렘의 멸망을 암시하는 이상하고 상징적인 행동이 묘사되고 있다. ‘벽돌’과 ‘철판’은 예루살렘의 포위를 상징하는 것 같다(4,1-3). 그리고 포위기간에 부당한 식량배급을 묘사한 후에 (4,9-17) 예루살렘에 내릴 심판예고를(5,5-17) 묘사하고 있다.


2. 이스라엘 산들을 거슬러서 신탁이 주어진다. (6장)


– 여기서 에제키엘을 지칭하는 전형적인 호칭이 나온다. “너 사람아”→인자라는 뜻


역시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심판 예언으로 볼 수 있다.


3. 야훼의 날 ; 종말이 다가온다고(7장)에서 묘사되고 있다.


– 종말이 임박했다는 예고는 이미 에제키엘보다 먼저 예언활동한 아모스(8세기 예언자)에게서  발견된다(아모 8,1-3). 종말에 대한 예고는 아모스에게서 시작하며 에제키엘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종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4. 더럽혀진 성전 현시(8 – 11장)


성전을 야훼께서 군림하시는 장소로써 성전이 더럽힘으로 인해서 야훼의 영광이 떠나간다는 것, 야훼의 영광은 하느님의 현존과도 연결된다. 그래서 야훼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간다는 내용이 (8-11장)까지 묘사된다. 에제키엘은 8장 전반부에서 환상중에 예루살렘으로 들려 올라갔다. 이  8,5-18에는 탐무즈 의식, 태양 숭배, 모든 종류의 우상숭배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다.




․ 탐무즈 의식 ; 바알신(남신, 풍요로움 :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팔레스티나 지방)


                 오시리스(에집트) – 파라오가 죽은 후의 신… 파라오는 왕이며 신이다.


                 출애굽기는 하나의 신인 파라오와 야훼가 싸운 것이다.


하느님의 영광이 그 성전을 떠나갔다가(10,18 이하) 새성전을 묘사(43,1)하는 곳에서 다시 그 성전을 들어가신다.


5. 유배를 예고하는 두 가지 상징적 행위 (12,1 – 20)


예루살렘의 멸망이 다가옴을 상징적 행동으로 표현한다. 예루살렘으로부터의 도주(12,1-16)  두려움으로 빵을 먹고 떨면서 물을 마신다(12,17-20). 에제키엘의 상징적 행동은 현실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6. 예언자의 말씀의 성취와 그 임박성을 주제로 한 유배민들과의 두가지 논쟁 (12,21 – 28)


7. 사악한 예언자들과 미술가들 및 그들을 찾아가서 문의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거슬러 신탁이 주어진다(13,1-14,11). 여기서 거짓 평화를 부르짖는 이상주의 예언자들을 비난하는 대목이 나온다 (13,10 – 예레 6,14와 연결시킬 수 있다).


8. 각각 자기 자신을 위해 위대한 인물들의 중재는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신탁이 주어진다(14,12-23).


9. 비유를 통해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사를 묘사한다. (15 – 23장)


a. 쓸모없는 포도 덩굴의 비유 (15장) 심판이 취소될 수 없고 불가피함을 여기서 묘사한다.


b. 태어날 때부터 버림받은 딸의 비유 (16장) 이 부분과 20장에는 죄로 얼룩진 이스라엘의 역사가 묘사된다. 23장에는 왕녀 오홀라와 오홀리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방탕한 여자, 이스라엘에 대한 역사적 반성을 하고 있다.


c. 레바논의 독수리와 송백나무의 비유 (17장) 역사적 우화를 통해서 시드키야의 배반을 암시한다. 그리고 묘사한다.


d. 암사자와 포도밭의 비유(19장) 마지막 왕들의 운명에 대한 애가형식을 띤 이 부분은 예레미야 신탁에 상응한다고 볼 수 있다. 예레미야서 21,22에 이런 신탁이 나온다.


10. 개별 각자의 책임성을 강조하는 부분 (18장)


그 유명한 예레미야의 ‘아버지가 신포도를 먹으면 아들의 이가 시리다’는 하나의 잠언의 내용이 그 당시에 유포되어 있었다. 에제키엘은 이러한 잠언의 내용에 더이상 효력이 없음을 선포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전체 이스라엘에 내려져야 할 심판이 끝이 났음을 이야기한 후 이제는 그에 따른 책임만이 요청될 뿐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18,20 참조) 이것은 파수꾼 즉 예언자의 외침을 듣느냐 듣지 않느냐에 따라서 좌우될 것이다.


11. 이스라엘의 非비유적 역사 (20장)


12. ‘칼’을 주제로 한 세가지 심판 신탁 (21장)


  – 에제키엘에 의하면 예루살렘의 멸망은 바빌론의 정복자 입장에서는 하나의 단순한 행동에 불과하다. 예루살렘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이고 피할 수 없는 처참한 것이지만,


13. 유혈을 즐기는 도시 (즉 예루살렘 백성의 현실묘사 22장)


14. 두가지 상징적 행위 ; 냄비와 에제키엘의 아내의 죽음에 대한 기사 (24장)


에제키엘의 자기 아내의 죽음에 대한 애도를 금하며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를 표명한다. 24,26이하에서 예루살렘으로부터 도망친 사람이 예루살렘성이 무너졌다고 보고한다. 이제 여기부터 심판 예고가 구원예고로 바뀐다. 제 1부에서는 회심을 겨냥한 듯한 심판이 강조되었지만 이 예루살렘의 함락을 목격한 목격증인이 와서 보고함으로 인해 예루살렘에 대한 희망의 신탁이 주어진다(33-48장).


1부와 2부 사이의 중간 부분에 이방국가의 신탁 (파멸에 대한 것이다.) 은 지리적 조건을 참조하여 전개된다. 암몬, 모압, 에돔, 팔레스틴, 그 당시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던 띠로(화려한 배로   묘사) 그 다음 시돈에 관계되는 것으로 지리적 순서에 따른다(26-28장). 에집트에 관한 신탁이 나온다. 27장의 화려하던 띠로의 멸망에 관한 신탁이 나오는데 이 신탁의 내용이 실현되지 않았다. 29,17-21에서는 신탁의 내용이 수정된다.


바빌론왕 느부갓네살에게 띠로 대신 에집트를 넘겨주리라고 한다. 이 사실은 예언자가 한 말이 후에 정정되기도 한다는 한 예이다. 예언서의 최종 편집자들은 예언서의 앞․뒤나 역사성에   신경쓰지 않았고 문제는 야훼 하느님의 뜻에 맞는 백성이 어떠한 것인지 그들의 신앙을 돕기 위해 예언서는 마지막에 편집되었다.






※ 제2부 ; 예루살렘 함락 이후 이스라엘을 위한 새로운 삶과 희망에 대해 (33 – 48장)


1. 파수꾼으로서의 예언자의 소명 ; 개별 책임성이 강조 (33,1 – 20)


예언자의 사명은 구원의 메시지뿐만 아니라 심판 메시지도 살피는 작업이 틀림없다. 여기서 회개의 요청이 나오고, 회개한 자에 대한 약속이 주어진다. 이어서 구원에 관한 신탁들이 소개된다. 여기서도 희망, 구원 신탁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먼저 회개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래서 신명기  학파가 말하듯이 야훼 하느님의 뜻에 얼마나 부합되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그 예언은 성취될   수도 있고 안될 수 있다는 내용을 연결시킬 수 있다.


2. 피난민의 도착 ; 예루살렘이 최종함락 된 후의 피난민 (33,21-22)


3.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향한 심판 (34장) – 사제들에 대한 경고


4. 세이르의 산들을 거스른 신탁 (35,1 – 36,15)


에돔 산에는 재난을 선포하고 이스라엘 산위에는 구원을 선포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5. 정화, 화해 그리고 귀환에 관계되는 신탁 (36,16 – 38)


6. 말라빠진 뼈들 (37,1 – 14)에 대한 이야기


에제키엘은 이스라엘이 새생명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선포하도록 지시받는다. 모든 것이 끝장난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이 구절의 앞뒤에 나타난다. 과거에 입은 상처가 말끔히 치료될 것이다. 많은 죄로 더럽혀진 이스라엘이 다시 깨끗해지리라는 신탁이 36,16-38에 나오고,


7. 이 말라빠진 뼈들의 이야기 다음에 찢겨진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재결합할 것이라는 신탁 (37,15-28)


8. ‘곡(Gog ; 나라이름)을 거슬러’라는 신탁 (38 – 39장)


새로운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북쪽 세력에 대한 비난이 묵시문학적으로 표현되었다. 묵시문학적으로 표현된 곡은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이스라엘 산위에 내린 파멸을 견디어 내기 위한 하나의 의도를 표현한 것 같다.


9. 새 성전과 새 땅에서의 예배에 대한 신탁 (40 – 48장)


이상에서 살펴본 바를 종합해보면 에제키엘서에서는 레위기의 성화법 (17-26장)과 아주 유사한 구절들이 발견되는데 바로 이 법전에 기초해서 이 책이 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에제키엘은 사제이다. 그래서 사제법전과 연관된 성화법에 기초해 에제키엘서가 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에제키엘의 신탁들은 그의 제자와 추종자들에 의해 수집되고 형성되고 재 해석과정이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BC 5세기경에 완성된 것 같다.




에제키엘서는 모든 것을 철저하게 하느님 중심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 그는 이 시각에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를 예리하게 파헤쳐 나가면서 참된 회심의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느님의 거룩하심과 영광, 인간 개개인의 책임, 그리고 새이스라엘 정립을 강조하고 있다. 비록 민족의 파멸을 예고하지만 하느님의 궁극적인 뜻은 미래에 있을 구원이며 이 사실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 사실은 예언서의 모든 내용이 심판을 담고 있지만 마지막에는 구원과 연결되듯이  에제키엘도 같은 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카테고리: 구약성경이야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