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호세아 예언자는 북조 이스라엘 출신이었다. 북조의 역사를 깊이 이해하고 있었으나, 남조 예루살렘에 대한 언급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는 여로보암 2세(782-753)의 말기에 예언자로 등장한다. 그가 강조한 내용은 우선 하느님께 대한 지식이었다. 하느님께 대한 지식은 4,1이하와 5,4;6,6;14,10에 나타난다. 호세아 예언자는 그렇다고 해서 예언자 조합(길드)을 업신여기지도 않았다. 또한 예배를 주관하는 무리들로서 호세아는 그들 중 일부가 하느님께 대한 지식 습득을 소홀히 한다고 힐책하였다(4,4-6).
호세아와 친교를 맺은 인물들은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양분될 때(열왕上 12,31 참조), 성전에서 예배를 집전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한 레위지파의 사람들로 보인다. 성직을 박탈당한 그들은 내적으로나마 하느님께 대한 지식을 추구하던 자들이었다. 레위사람들은 자기 지파의 전형적인 인물이었던 모세에게 큰 존경심을 보였고 사막생활을 하던 모세시대의 영성을 동경하였다(2,16).
보충) 호세아는 아모스와 동시대에 살았고 남조 예루살렘에 대한 언급이 전혀없다. 창녀와 결혼한 예언자이다. 호세아와 창녀와의 결혼은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이해하는 표징이며 근본원천으로서 중요하다.
호세아서에는 דꘑꖒ와 앎에 대해 나온다. 구약에서는 앎이라는 것은 경험을 상징한다. 누군가를 아는 것은 그를 가깝고 친밀한 관계에서 체험함을 의미한다. 이런 관계에서 약속이 이루어지고 약속의 의무를 행해야 한다. 이런 관계에서 계약에 충실하는 것이 דꘑꖒ이다.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너무 잘 알아서 그것에 충실한 것을 דꘑꖒ라 할 수 있다. 하느님과 인간사이에 약속, 계약이 이루어지며 약속에 따른 의무가 주어진다. 계약에 충실하여야만 한다.
아모스와 호세아의 관계
아모스는 야훼의 정의를 강조하였다. 심판 후에는 구원이 있다.
호세아는 야훼와 깊은 내적 관계를 강조했다. 진노는 자비의 한 부분이다. 호세아는 아모스보다 더 강렬하게 우상숭배와 외국과의 동맹을 반대했다. 호세아는 하느님께 대한 지식과 דꘑꖒ을 강조하였다. 호세아는 우상숭배, 외국과의 동맹을 비난하였고 종교지도자의 타락을 개탄했으며 종교가 외적인 경신례에 의존함을 비난하였다(6.6 참조).
* 사막의 영성 : 잘못했지만 뉘우치고 하느님께 돌아오면 하느님께서는 늘 축복으로 연결해 주셨다. 가나안에 들어온 이후 농경문화, 왕, 그밖에 안정된 문화에 살다보니 야훼하느님을 저버리게 되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예언자들은 바로 우리가 불편했지만 사막의 영성으로 돌아갈 적에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반겨주실 것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 구조와 내용
호세아서에서 사막에 대한 동경을 자주 보게 된다. 호세아는 작가예언자로 불린다. 호세아는 주로 신탁예언으로 구성되어 있다. 호세아서는 크게 두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째 : 그의 결혼생활을 중심으로 그에 대한 개인적인 기사와 그 기사에 비추어 이스라엘과 야훼의 관계를 설명한다(1-3장).
둘째 :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예언을 포함하고 있는(4-14장).
가. 첫째 부분 (1-3장)
이 1-3장은 어떤 편집계획에 따라 교차적인 배열양식(구조)을 나타내고 있다. (키에즘 : 아래와 같은 배열구조)
1,2-9 2,1-3 1,2-9 : 3인칭으로 된 전기 양식의 설화체 보도형식
↖ ↗ 2,1-3 : 신탁-행복과 구원에 관한 신탁
2,4–15 2,4-15 : 상징적인 행동을 설명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한다.
↙ ↘ 2,16-25 : 새로운 변화의 선언-행복과 구원에 관계되는 신탁
2,16-25 3,1-5 3,1-5 : 1인칭으로 된 설화체 보도형식
상징적 행동을 중심으로 교차현상이 일어난다. 히브리 성서의 시에는 키에즘 현상과 인꿀루시오 현상이 (이사야 5장) 많이 나타난다. 이렇게 첫째 부분은 교차형식이 나타난다.
* 1,2-9 : 이 부분에서 예언자는 탕녀와 결혼하라는 지시를 받고 고멜이라는 여인과 결혼하고, 세 아이를 낳는데, 첫아이가 이즈르엘, 둘째 아이가 로루하마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 세째 아이가 로암미 (나의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 이다.
* 2,1-3 : 여기의 신탁은 1,2-9절에 세 아이를 장차 다가올 심판과 관련된 이름을 부여하고 그리고 나서 행복내지는 구원에 관한 신탁이 주어지게 되는데 여기 신탁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드라마 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세아이의 상징적 이름이 후에 구속적인 이름으로 바뀌게 된다. 로암미가 암미(나의 백성)로 로루하마가 루하마가 된다.
* 2,4-15 : 예언자들의 상징적인 행동에 대한 해석으로서 심판에 대한 경고가 나옴. 아내의 방탕과 처벌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데 이 상징적 행동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나안 사람들의 신의 선물로 생각하고 그 신을 섬김으로써 은혜의 원천이신 하느님께 불성실하였음을 지적하고 따라서 남편에게 불성실한 아내처럼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하나의 고발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 2,16-25 : 새로운 변화에 대한 선언이 나오는데, 야훼께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신랑인 당신께 성실하도록 다시 광야로 돌아가게 하시리라는 내용이 나온다. 신명기 학파의 광야를 보는 입장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이 때 모든 것이 새롭게 될 것이며, 자녀들의 이름이 행복을 약속하는 이름으로 바뀌게 됨을 이야기한다.
* 3,1-5 : 1인칭의 설화체 보도형식인데, 이 부분은 2,4-15의 아내의 방탕과 처벌 (결국 호세아가 받아들인다는 내용 함축되어 있다.)를 언급하고 있고, 2,1-3에서는 약속된 행복한 결과를 재차 약속하고 있다. 그래서 교차적인 구조가 이렇게 나타난다.
나. 둘째 부분 (4 – 14장)
호세아서의 두번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예언들이 4장에서 14장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이 부분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① 역사적인 현실을 이야기하는 4,1-9,9까지
② 역사적인 반성과 구원에 대한 약속을 언급하고 있는 9,10-14,9로 나눌 수 있다.
* 첫째로 법정고발형식이 4,1-5,7에 나타난다. 이 부분은 거의 법정고발형식을 취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아 야훼의 말씀을 들어라. 야훼께서 이 땅 주민들을 걸어 소송을 제기하신다. 4장 1절에 나온다. 이 부분은 이렇게 불신에 대한 비난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 부분에 태평성대가 전제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여로보암 2세 즉 BC 782-753 재임 말기를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법정 고발형식부분을 세분하면,
1) 고발의 이유가 무엇인지 이 땅에는 성실도 이웃사랑도 하느님께 대한 지식도 없다는 내용이 4,1-3에 나온다. 이어서
2) 사제들의 죄악(4,4-11)
3) 백성들이 나무 숭배(4,12-14) 이것은 이사야서 1장에도 정원에서 숭배행위와 연결시킬 수 있다. 이것은 다산예식과 관련된다고 볼 수 있다.
4) 성소 ‘길갈’로 가지 말라(4,15-19).
5) 사제들과 왕가에 대한 고발(5,1-2).
6) 음란한 정신이 그 속에 있다는 내용이 5,3-7에 나온다.
* 법정고발형식에 이어 두 번째로 심판에 대한 경고, 백성의 탄식, 하느님의 응답이 5,8-6,6에 나온다. 이 부분은 시로-에프라임 전쟁(BC 734-732)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세분하면
1) 심판에 대한 경고와 포괄적인 선언(5,8-14)
2) 백성의 탄식(6,1-3) 하느님의 분노에 두려움을 느낀 백성이 그 분께로 돌아가기를 원하고 있다. 회심준비를 갖춘 그들은 하느님의 자비와 호의가 자신들에게 베풀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3) 이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이 6,4-6에 나타난다. 그분의 응답은 자비에 찬 응답이었다. 그러므로 예언자의 심판 경고가 필요하였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심판을 예고하는 목적은 이런 Target을 겨냥한다고 볼 수 있다.
4) 6,6의 말씀은 매우 인상적인 말씀이다. “내가 반기는 것은 제물이 아니라 사랑이다. 제물을 바치기 전에 이 하느님의 마음을 먼저 알아다오.” 마태오 복음에서도 이 말씀이 인용되고 있다.
* 세번째로 심판예언이 나타난다.
6,7-9,9까지 무정부상태 그리고 므나헴시대 앗시리아에 예속되었던 상태 그리고 호세아 왕 재임시 에집트에 구원을 요청한 사건등에 대한 암시가 이 부분에 나타나고 있다. 이 부분은 이사야서 2,6-4,1까지 부분과 비교해서 참조할 수 있다. 세분하면
1) 불효와 배반등의 범죄의 소굴이 된 이스라엘 도시들(6,7-11)
2) 음모와 배은망덕에 대해서 7,1-7까지 나타나고 있다. 북조왕조가 창건된 이래 BC 737년 패가야의 암살에 이르기까지, 일곱명의 왕이 북조왕국에서 암살당한다. 가히 춘추전국시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3절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간사하게 왕의 호감이나 사고 가면을 써 대신들의 환심이나 사면서도 모두들 미운 생각이 끓어올라” 이런 표현은 그 당시 상황을 설명해 준다고 볼 수 있겠고, 여러 왕들이 암살당한 상황을 감안할 때 왕을 살해하기 위한 음모의 한 장면을 묘사한다고 볼 수 있다. 반역자들은 향연을 베풀고 왕과 고관들을 만취시킨 후에 살해하는 것. 이것은 열왕기 상권 16,9-10의 대목에서 비교해 볼 수 있다. 이렇게 호세아 예언자는 왕권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난하고 있다.
3) 세 번째로 저주가 나오는데 7,8-16까지 “저주받아라. 나를 떠나 방황하는 것들!” 이라는 타이틀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4) “그들이 내 계약을 어기고 내 가르침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라는 내용이 8,1-3에 나온다.
5) 왕권과 우상숭배(8,4-10)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7,1-7에서처럼 왕정에 대하여 엄격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왕정과 우상숭배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나타나고 있다. 야훼께서 세우지 않는 왕이나 우상은 같은 신세가 될 것임을 선언하고 있다. 이어서
6) 희생제사를 많이 드리는 세태가 반영되고 있는데 8,11-14까지 죄를 속죄하기 위해 세운 제단이 오히려 범죄의 기회가 됨을 역설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7) 불충에 대한 벌로서의 재추방과 유배에 대한 언급이 9,1-6
8) 멸시와 박해받는 예언자의 삶이 9,7-9에 표현되고 있다. 마치 제2이사야서에 나오는 고난받는 야훼의 종처럼 그리고 예레미야서의 예레미야처럼 호세아는 하느님의 대변자로서 그분의 뜻을 실천에 옮김으로써 박해와 조롱을 받게 된다. 9,7-9는 예언자의 고달픈 삶을 반영해 준다고 볼 수 있다.
* 이어서 역사적인 반성과 구원에 대한 약속이 주어지고 있다. 역사적인 반성으로서 9,10-13,16까지 나오는데 이 부분의 중심은 11,1-9이다. 야훼께서 하시는 고백인데, 성서에서 “주께서 야훼께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에집트에서 이끌어 내셨다.”라는 고백은 하나의 신앙고백에 가까운 고백이다.
하느님의 사랑이 커지면 커질수록 이스라엘은 더 멀어져만 가는 현상을 표현하고 있다. 사랑으로 이끌었지만 배은망덕으로 답했다. 따라서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러나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한결같음을 우리는 보게 된다.
부모의 자녀에 대한 사랑(11,3-4)처럼 구체적인 사랑이었지만 에브라임은 나를 몰라본다. 의인법적인 표현이 나오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표현이 나오는데 “나는 사람이 아니고 신이다.” 부모중 자식을 버리는 부모가 있을지라도 하느님은 사람이 아니고 신이라고 고백한다. 하느님의 한결같은 사랑은 8절 이하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초창기 행복은 가나안의 부유함과 가나안의 예배를 수용하고, 왕권을 부여받고, 강대국과의 연합과 동맹으로 인해서 이스라엘의 초창기의 행복은 파괴되었다.
12,4-7 : 12,13에서는 조상인 야곱에 대해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리고 13,12-16은 이 부분의 결론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1) 역사적인 반성에 이어서 2) 회심과 새생활의 요구가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는 구원에 대한 약속이 드러나고 있다.(14,1-9) 그리고 3) 지혜의 말씀(14,10)으로 호세아서는 끝난다.
지혜문학이 성서 안에 들어왔음을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