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저자
성서를 대하는 독자들이 매우 궁금해 하는 것은 “누가 성서를 썼나?”일 것이다. 성서의 모든 본문은 창세기 첫 장부터 묵시록 끝장까지 사람의 손으로 쓰였다. 그것도 한두 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믿음의 전통을 이어받아 오랜 세월을 두고 성서를 만들어 냈다.
성서 저자들에 대한 관심은 18세기 말엽주로 개신교 신학자들 사이에서 높아져 성서 연구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였다. 그전까지 사람들은 전통적인 사고방식에 따라 성서는 하느님께 직접 계시와 영감을 받은 구세사의 몇 안 되는 주역들, 예를 들면 모세, 여호수아, 사무엘, 다윗, 사도 요한과 바울로 등이 직접 쓴 것으로 믿어 왔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믿어 왔던 성서 저자의 세계와 성서 본문의 세계가 너무나 다르고 둘 사이에 큰 간격이 있음을 깨닫게 된 성서학자들은 고고학과 고문서학의 발달로 성서의 세계를 당대의 문화와 역사에 비추어 연구하고 성서 본문을 고대 근동의 문헌들과 비교함으로써, 성서의 다양한 문학양식과 성서 저자들의 편집 작업을 밝혀 낼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성서 본문의 상당 부분이 실제 사건에 바탕을 두기보다 저자들의 문학적 소양과 신학적 반성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성서학자들은 이제 성서 저자들에 관한 연구를 성서의 저작시기, 그 자료의 기원과 전달 과정, 성서 각 권의 실제 저자들의 신원, 그들의 집필 동기와 신학적 의도, 그들이 속한 신앙 공동체의 문제점들과 그 나름대로의 해결 방안 등, 성서를 탄생시킨 역사 사회 종교적 배경과 성서의 문학 신학적 내용에 관한 연구로 확대하게 되었다. 이처럼 성서의 배경과 내용을 마음에 두고 성서 본문을 읽는 것을 ‘비판적 성서 독서’라 한다.
우리가 성서를 비판적으로 읽는 목적은 성서의 핵심 메시지에 더 깊이 접근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성서를 글자 그대로 받아 들여 비상식적이고 비인도적인 결론을 내리는 일을 막기 위해서 이다. 이를테면 비판적 성서 독서는 성서를 축자적으로 해석하여 인륜을 거슬러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게 하는 광신적 근본주의나, 율법을 현실에 적용하면서 그 근본 취지보다는 시행세칙에 매달리는 율법주의의 오류에서 우리를 지켜준다.
그렇다면 비판적 성서 독서가 ‘성서는 하느님께서 쓰셨다.’라든가, ‘성서는 성령의 감도하심에 따라 기록되었다’라는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성서 저자들의 근본 저술 동기는 그들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신앙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공동체가 간직해 온 신앙의 근원과 목적은 바로 하느님 자체 이었다. 성서 저자들은 인간 역사 안에 들어오신 하느님, 곧 우리 가운데 나타난 그분의 말씀과 위업을 묘사하고 전파하는데 열성을 바쳤다. 이일 자체가 그들에게는 신앙 행위였고, 따라서 이 신앙 행위를 처음부터 주도하시는 분이 하느님의 영이라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사실이다. 무릇 하느님께 대한 모든 신앙 행위 안에는 그분의 영이 작용하시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하느님 영의 주도로 드러나는 그분의 말씀과 위업은 성서 저자가 모은 고대 이스라엘 백성의 경신례 찬가, 노래, 예언, 기록, 전설, 영웅담 같은 다양한 문학 양식을 통하여 전달된다. 성서 저자들의 신학 사상과 편집 활동을 탐구하는 비판적 성서 독자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며, 성서 저자들이 구전이든 문헌이든 자료를 모으고 덧붙이거나 수정하는 편집과정에서 이미 하느님의 영으로부터 인류 역사에 찬연히 빛나게 될 예지와 영감을 부여받았을 것으로 확신한다. 이 예지와 영감은 때때로 성서 저자들 자신도 가늠하지 못할 만큼 놀랍고 위대한 것이었다. 하느님께서 성서를 탄생시킨 이스라엘 공동체와 신약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친히 이끌지 않으셨다면, 그리고 하느님의 영이 성서를 기록한 저자들의 마음과 정신을 비추지 않으셨다면 그들의 저서는 고대의 훌륭한 문학작품으로 평가될 수는 있어도 온 인류를 가르치는 하느님의 말씀이 담긴 ‘거룩한 책’으로 존중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서가 ‘사람의 손으로 쓰였다’는 사실과 ‘성령의 감도하심에 따라 쓰였다’는 교회의 가르침은 서로 상충되지 않는다. 성서는 하느님에게서 영감을 받은 인간이 하느님의 영의 주도로 인간 역사 안에 드러나게 된 그분의 말씀과 위업을 기록해 놓은 책이다, 이 책 안에서 우리는 마땅히 하느님의 말씀과 위업을 듣고 보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