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옥한 초생달의 패권 다툼이 뛰어든 나라들 –

 

비옥한 초생달의 패권 다툼이 뛰어든 나라들


이 지역의 역사에 관해서는 둘째 마당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여기서는 이 지역의 패권 각축전에 뛰어든 대표적인 민족과 왕국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들 가운데 이스라엘을 비롯하여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엘람이 셈족에 속한다.창세기에 따르면 셈족은 홍수 이후 노아에게서 태어난 아들 가운데 하나인 셈의 후손들이다(창세기 10장). 다른 두 아들은 함과 야벳인데, 함의 후손은 이집트인들이고 야벳의 후손은 메대인들이다.


언어학적으로 셈족어는 셋으로 나눌 수 있다.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의 여러 방언을 포함하는 동부 셈족어는 보통 쐐기문자인 아카드어로 대표된다. 히브리어가 속해 있는 북서 셈족어는 아람과 가나안의 방언들을 비롯하여 모압어와 우가릿어를 포함한다. 마지막으로 남부 셈족어는 아랍어와 어티오피아어로 대표된다.




가. 수메르


수메르인들은 메소포타미아에 살던 최초의 주민들이다. 성서에는 그들에 관한 언급이 없다. 그러나 수메르인들은 이스라엘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형성에 결정적인 구실을 하였다.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수메르의 대표적인 도시로는 우룩, 라가쉬, 니푸르, 우르, 에리두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우르는 비옥한 초생달 지역에서 제일 먼저 성서에 등장하는 곳으로서 아브라함의 고향이었다(창세 11,31). 우르는 위에서 언급한 우룩, 에리두, 니푸르와 더불어 적어도 기원전 3300년 이전에 수메르인들이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하구에 세운 도시이다. 수메르의 도시들을 비롯하여 비옥한 초생달 지역의 도시들에는 산처럼 거대한 신전, 곧 지구라트들이 있었다. 창세 6장의 바벨탑 이야기의 배경에는 이 지구라트들을 비판하는 의도가 숨어 있다.


수메르인들은 셈족이 아니다. 그들은 중앙 아시아에서 카스피해를 거쳐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하류에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1915년까지는 수메르인들의 존재를 두고 많은 학자들이 의혹을 품었으나, 고고학 발굴로 건져 올린 토판 문서들의 해독에 힘입어 이제는 그들의 역사와 언어와 문화를 어느정도 밝힐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언어는 우리말과 터키어, 핀란드어, 헝가리어와 마찬가지로 우랄-알타이어 계열에 속한다. 1994년 1월에 작고한 수원교구 김효신 신부는 수메르 문화와 언어를 우리 민족의 문화와 언어와 비교 연구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연구는 아직 학계의 검증을 거치지 않았지만 매우 진지하고 흥미롭다(김효신, 상고연구 자료집, 새남출판사 : 1990년).


기원전 2360년경에 수메르 도시 국가들은 아카드 왕조를 세운 가가데의 사르곤 임금에게 패망하였다. 사르곤은 통치영역을 시리아와 소아시아 남쪽까지 확장하였다. 아카드 왕조는 2180년경 자그로스 산맥에서 밀고 내려온 구티인들에게 멸망하였다. 구티인들은 80여년 동안 이지역을 통치하였으나 2100년경 수메르인들에게 다시 패권을 넘겨 주었다. 재기에 성공한 수메르인들은 2000년경까지 이 지역을 지배하다가 동쪽에서 일어나 엘람이 수메르의 중심 도시 우르를 점령하면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일반적으로 수메르인들이 재기하여 세운 이 마지막 왕조를 우르 제 3왕조(2060-1950년)라고 한다.


                              


나. 히타이트(공동번역: 헷족)


히타이트인들은 본디 인도-유럽인들로서 기원전 이천년 이전에 소아시아와 시리아 북부를 차지했던 민족이다. 히타이트는 민족을 가르키는 이름이 아니라, 고대 아나톨리아를 일컫는 지명 ‘하티’에서 유래한다. 아나톨리아에는 아시리아인들과 교역이 활발하였던 ‘하투스’라는 도시가 있었는데, 이곳이 나중에 히타이트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히타이트 왕국은 셋으로 나눌 수 있다. ‘고대 왕국’은 아나톨리아를 중심으로 기원전 1900년경부터 1450년경까지 지속되었는데, 이 왕국은 북부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의 바빌로니아에까지 침입한 적도 있으나 후리족이 그들의 남진 정책을 저지하였따. 그다음 ‘신왕국’은 기원전 1450년경부터 1090년경까지 이다. 이 왕국의 전성기는 13세기 중엽으로 보는데, 이때 히타이트인들은 시리아 북부와 메소포타미아 북부 대부부을 점령하였다. 1280년경 하투실리스 3세는 아시아에까지 세력을 확장하기 위하여 이집트에서 올라온 라메세스 2세를 저지하고 평화조약을 맺었다. 마지막 ‘네오-히타이트 왕국’은 가르그미스를 중심으로 10세기에 타우루스와 시리아 북부에서 일어났다. 10세기에서 8세기 사이의 아시리아 문헌은 시리아 북부를 히타이트의 다른 이름인 하티의 따으로 불렀다. 네오-히타이트 왕국은 기원전 8세기에 아시리아인들에게 패하여 아시리아의 속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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