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옥한 초생달의 패권 다툼이 뛰어든 나라들

 

아시리아


아시리아는 히브리어로 아쑤르인데 본디 티그리스강 중간쯤에 자리은 도시 이름이었다. 이 도시 주민들의 신도 아쑤르라고 부른 것으로 미루어, 신의 이름이 도시 이름이 되고 나중에 이도시를 중심으로 건설된 왕국 이름이 된 것 같다. 아시리아 왕국은 이카드 북쪽, 미타니 동쪽, 그리고 자그로스 산맥 가까이에 자리잡았다. 아카드의 사르곤 임금 시절(2350-2294년경)에 아쑤르는 아카드인들의 지배 아래 있었고 그 뒤 14세기까지 여러 침입자들의 손에 차례로 넘어갔다. 그러다가 옛 아카드의 사르곤 임금 호칭인 ‘사방의 임금’으로 자신을 일컬은 아닷-니라리(1305-1274년)가 바빌로니아 왕국의 기초를 튼튼하게 놓았다. 기원전 13-12세기에는 그리스, 소아시아, 시리아, 메소포타미아에서 야만들이 봉기하여 대혼란이 일어났다.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도 이들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야만족의 침입으로 아시리아는 아쑤르 주변만을 통치하는 작은 왕국이 되었으나, 디글랏-빌레셀 1세(1115-1077년)의 영도에 힘입어 기원전 14세기 차지했던 지역들을 다시 정복하였다. 디글랏-빌레셀은 왕도를 아쑤르에서 약간 북쪽에 자리잡은 니네베로 옮겼다. 그 뒤 아시리아는 비옥한 초생달의 강자로 군림하면서 이스라엘과 유다를 비롯한 속국들에게 조공을 받았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734년 아시리아의 속주가 되었으나 722년 샬마네셀 5세(726-722년)에 반란을 일으켰다. 샬마네셀은 사마리아와 이스라엘의 나머지 성읍들을 점령하였고, 그의 후계자 사르곤 2세(722-705년)는 이스라엘 사람 27,290명을 아시리아로 끌고 갔다. 아시리아의 전성기는 에살-하똔(680-669년)과 아쑤르바니팔(668-630년)이 통치하던 시대였다. 이 두 임금은 메소포타미아, 팔레스티나뿐 아니라 이집트와 심지어 에티오피아 까지도 정복하였다. 그러나 아쑤르바니팔이 죽자 치열한 왕위 계승 분쟁과 지나친 토벌 정책으로 대제국은 급속히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626년 아시리아의 통치권에서 벗어나 독립한 바빌로니아를 선두로 여러 국가나 아시리아에 반기를 들었다. 614년 아쑤가 메대인들에게 넘어가고 제국의 수도 니네베도 612년 메대인들과 바빌로니아인들의 연합군에게 함락되었다. 아시리아의 마지막 임금 아쑤르발릿은 하란으로 도망쳐 그 곳에서 항전하였으나, 609년 이집트 느고의 도움에도 아랑곳없이 메대와 바빌로니아 연합군에게 지고 말았다. 그 뒤에 아시리아인들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라. 바빌로니아


바빌로니아의 도읍 바빌론은 유프라테스강 동쪽 강변에 자리잡았는데, 오늘의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남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아시리아 제국이 메소포타미아의 북부를 차지한 반면, 바빌로니아는 남부를 차지하였다. 그리고 바빌로니아 바로 위에는 아카드 왕국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 왕국의 이름에는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의 언어인 아카드어가 유해한다. 바빌로니아는 아카드의 사르곤 임금 시절의 문헌에 처음 언급되었지만, 1900년경 아모리인들이 건설한 바빌로니아 제1왕조 때에 와서야 비옥한 초생달의 주요 왕국으로 등장한다 이왕조의 전성기는 당시에 가장 합리적 법전의 창시자로 알려진 함무라비(1792-1750년) 임금의 통치 시절이다. 함무라비는 라르사, 엘람, 아시리아, 아카드 등을 차례로 정복하여 지중해 서안까지 영토를 황장하였다. 함무라비 이후 바빌로니아는 7세기까지 정치적으로 매우 허약한 나라였다. 아시리아 대제국이 번영을 누리고 있을 때 바빌로니아는 언제나 제국의 속국으로 머물렀다. 그러나 함무라비가 굳건하게 다져놓은 문화 유산은 어떤 이민족들의 침입에도 쉽사리 무너지지 않았다.


기원전 10-8세기에 아시리아가 약해진 틈을 타, 메소포타미아 북서쪽 지중해 해변에서 살던 아람인들은 바빌로니아와 시리아에 침입해 들어왔다. 아람인들이 처음 언급된 것은 아시리아 임금 디글랏-빌레셀 1세 때였다. 가르그미스, 하맛, 다마스쿠스가 그들이 세운 큰 성읍들이다. 신명 26,5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조상을 아람인들과 같게 본다. 그러나 창세 24;29-31장에서는 이사악과 야곱의 아내와 소실들을 하란 출신의 아람인들로 소개한다. 많은 학자들은 그들의 이름이 ‘유목민들’이라는 뜻의 ‘알라무’에서 나왔다고 본다. 그들은 시리아 광야에 살던 유목민으로서 이지역의 정착 부락들을 몰아내고 거기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시리아는 곧잘 아람과 동일시되며, 칠십 인역과 몇몇 현대어 번역들에도 ‘아람’과 ‘아람인들’을 ‘시리아’와 ‘시리아인들’로 옮긴다. 그런데 이 아람인들은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하류(페르시아만 근처)에 기원을 둔 갈대아인들과, 시리아 북부 바빌로니아 남부에서 만나 서로 섞이게 된다. 이  때문에 성서에서는 아람인들과 갈대아 인들이 서로 같은 민족으로 여겨진다. 이 갈대아인들이 바빌로니아의 왕권을 장악하면서 초생달의 판도가 급변하기 시작한다.


갈대아인들은 아시리아 임금에게 조공은 바쳤으나 아시리아의 지배에 결코 고분고분하지는 않았다. 허약한 임금들이 아시리아를 통치하던 시절에 갈대아 인들은 바빌로니아의 실제 주인이 되었다. 그러다 아시리아 임금 디글랏-벨레셀 3세(747-727년)가 갈대아인들을 남쪽으로 몰아내고 바빌로니아의 왕좌를 자기 왕권에 병합시켰다. 갈대아인들의 우두머리 므로닥-발라단은 721년 바빌로니아의 왕권을 다시 쟁취하고 엘람과 연합하여 아시라아의 사르곤 2세를 패배시켰다. 나중에 므로닥-발라단은 바빌로니아에서 남쪽으로 쫓겨났으나 산헤립 시절에 줄곧 아시리아인들을 괴롭혔다. 626년 갈대아인들의 또 다른 우두머리 바빌로니아가 바빌로니아의 왕권을 차지하고 아시리아에 반기를 들었다. 나보폴라살이 메대와 연합하여 아시리아를 근동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한 역사는 앞에서 이미 살펴 보았다.


바빌로니아의 전성기는 나보팔라살의 아들 느부갓네살 통치 시절(604-562년)이다. 느부갓네살은 아직 왕위에 오르기 전 605년에 가르그미스에서 이집트인들을 대파하고 그 도시를 불태웠다.(예레46,1-12). 그는 이어 시리아와 팔레스티나를 점령하고 멀리 이집트 국경까지 세력을 확장하였다. 유다 왕국은 그에게 굴복하였으나 나중에 이집트의 사주를 받아 반기를 들었다. 598년 겨울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597년 3월 16일 예루살렘을 함락한뒤, 임금과 신하들을 비롯하여 유다의 지도자들을 바빌론에 포로로 끌고 갔다.(2열왕 24장;예레 52,28) 이것이 제 1차 바빌로니아 유배이다. 유다는 589년 다시 느부갓네살에게 반기를 들었고 바빌로니아 군대가 예루살렘을 재차 공격하였다. 마침내 587년 7월 예루살렘은 무너지고 임금과 신하, 사제, 장인들이 바빌론에 끌려나가는데 이것이 제2차 바빌로니아 유배이다. 일반적으로 바빌로니아 유배라 하면 587-539년에 있었던 제 2차 유배를 가리킨다.


느부갓네살이 죽고 나자 거대한 바빌로니아 제국은 무능한 후계자들 때문에 급속히 몰락해 갔다. 나보니두스 임금(556-539년)은 나라를 아들 벨사살에게 맡겨두고 아라비아 정벌에 나섰는데, 아라비아 부족들을 정복하여 자기 왕국의 기반을 튼튼히 다지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한편 안산의 임금 고레스는 550년경 페르시아와 메대의 임금이 된 뒤, 비옥한 초생달의 정복에 나섰다. 나보니두스가 아라비아의 테마에서 한창 정복사업을 벌이고 있을때, 그의 아들 벨라살은 바빌로니아의 마르둑 사제들을 멀리하고 다른 신 숭배에 열을 올렸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539년 고레스가 바빌론에 침입하였을때, 마르둑의 사제들은 벨라살을 배반하고 고레스에게 왕국을 고스란히 넘겨 주었다. 고레스는 바빌론을 점령하고 538년 유대의 유배자들을 비롯하여 모든 포로에게 제고향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해방령을 내렸다. 바빌론 도성은 페르시아의 지배 아래에서도 주요 행정 도시로 남아 있었으나 그리스시대에 접어들면서 그 중요성을 완전히 상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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