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옥한 초생달의 패권 다툼이 뛰어든 나라들 .

 

이집트


이집트는 비옥한 초생달에서 지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막강한 세력 때문에 이 지역의 패권 다툼에 중요한 몫을 하였다. 이집트라는 명칭은 그리스어 ‘에귑토스’에서 왔는데. 이 에귑토스는 다시 이집트어로 멤피스의 다른이름, ‘카프타의 궁전’에서 유래한다. 이집트인들은 자기네 나라를 ‘케메트(검은 나라)’라고도 하고 ‘타위(두 나라)’라고도 한다. ‘두 나라’는 골짜기로 이루어진 상 이집트와 델타 삼각주로 되어 있는 하 이집트를 가리킨다. 여기서 상이집트는 나일강 상류쪽이고 하 이집트는 나일강 하류쪽인다, 나일강은 지중해를 향하여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지도에서 상류는 아래쪽에 하류는 위쪽에 자리잡게 된다. ‘상.하’라는 말에 혼동하지 말기 바란다. 성서에서는 이집트인들을 구스, 푸트, 가나안과 더불어 노아의 아들함에게서 태어난 자손으로 본다(창세 10,6).


이집트의 역사는 장구하고 복잡하며, 문화 역시 그만큼 오래되고 다양하다. 이 지역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연대는 대략 기원전 만 년경으로 본다. ‘원조 시대’(3300-2650년)동안에 제 1왕조의 메네스가 상 이집트와 하 이집트를 통합하였다. 이집트인들은 이시대에 벌써 그림문자를 사용하였다. ‘고왕국(2700-2100년)’은 제 3-4왕조 때 큰세력을 떨치기 시작하였다.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와 기제의 피라미드들은 이 시기에 건설되었다. 헬리오폴리스(태양의 도시)라고도 하는 온에서 일어난 제 5왕조는 태양신 레의 숭배를 이집트 왕실 숭배와 동일시하였는데, 이후부터 이 레의 숭배가 이집트의 종교의 중심이 되었다.


고왕국에 이어 얼마 동안의 혼란기를 거쳐 제 11-12왕조가 다스린 ‘중왕국’(2100-1730년)이 탄생하였다. 이 왕국의 수도는 테베였다. 중왕국은 에티오피아 남부 누비아 정복 사업과 시나이 광산 사업에 힘입어 태평성대를 누렸다. 이 시기에 죽은 자들의 수호신 오시리스 숭배가 대중적 인기를 모았고 테베의 신 멘투와 아몬의 숭배가 다른 신들의 숭배를 압도하였다.


제 12왕조가 끝나갈 무렵 다시 혼란기가 왔는데, 이시기를 주도한 것은 전차와 말을 이용하여 가나안에서 이집트로 쳐들어온 힉소스인들과 테베의 이집트 왕실 사이의 싸움이었다. 마침내 이집트 왕실은 힉소스인들을 완전히 몰아내고 ‘신왕국’(1550-1085)을 탄생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제 18-20왕조가 다스린 신왕국은 고대 이집트의 가장 위대한 시대를 열었다. 힉소스의 침입은 이집트인들에게 아시아가 이집트 왕국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 주었고, 그 결과 신왕국의 임금들은 동쪽 변명을 튼튼하게 하기 위하여 정벌 사업에 나섰다. 투트모세 3세(1479-1425년)는 군대를 이끌고 파레스티나와 시리아를 거쳐 멀리 유프라테스까지 가서 거기에 아시아 주둔 이집트 제국을 세웠다. 그러나 그의 후계자들은 이 제국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였다. 제 19왕조의 라메세스2세(1304-1238)는 서부 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려 했으나 가데쉬에서 승산없는 전투를 벌이던 두 세력은 서로 현재의 경계를 존중한다는 평화 조약을 맺고 싸움을 중지하였다. 이후 아시아에서 이집트의 세력은 점차 약화되었고 라메세스 3세(1194-1163년) 때에는 그리스와 에게해에서 밀려온 해양민족 불레셋인들의 득세로 급기야 이들의 가나안 정착을 허락하기에 이르렀다. 이외에 새로운 세력들이 생겨났다. 하나는 전문 행정 관리들이고 다른 하나는 사제들이었다. 이 두세력의 권력과 부는 제19-20왕조의 왕권을 좌지우지할 정도였다. 실제로 제 19왕조의 창시자는 군대의 장교 출신이었고, 제 20왕조의 창시자는 사제였다.


이집트 왕국의 ‘후기 왕조시대’(1085-332년)는 제21-31왕조가 다스렸다. 제21왕조 때에 궈력은 하 이집트 델타의 임금들과 테베의 사제들 사이에서 양분되었다. 전자는 힉소스의 거점이었던 타니스를 수도로 삼았다. 그러다가 세숑 1세(구약성서에서는 시삭, 950-929년)가 양분된 권력을 하나로 통합하였다. 이 임금은 르호보암 시절에 이스라엘과 유다를 침략하고 예루살렘을 약탈하였다. 제24왕조(730-715년) 때에는 에티오피아 임금 샤바카(715?-696년)가 이집트에 침입하여 제25왕조를 세웠으나, 예루살렘에서 아시리아에 저항하던 히즈키야를 도우려다 산헤립에게 패하였다. 샤바카의 후계자들은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 사이에서 정치적 득실을 놓고 저울질하면서 두나라 가운데 더 큰 세력을 치기 위하여 동맹관계를 이리저리 옮겼다. 느고2세(610-595년)는 급부상하는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을 막으려고 605년 시리아의 가르그미스에서 싸움을 벌였으나 크게 패하여 겨우 목숨만 건지고 퇴각한다. 그 뒤 이집트는 아시아에서 더 이상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였다. 아마시스(568-525년)바빌로니아와 동맹을 맺고 페르시아를 치려했으나 역부족이었다. 525년 이집트는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게 되는데, 제 27왕조의 임금들은 모두 페르시아인들이다. 페르시아는 332년 알렉산더 대왕에게 멸망될 때까지 이집트를 계속 지배하였다.






바. 메대




  메대인들은 이란의 고원지대에서 살던 민족이다. 메대인들에 대한 언급은 아시리아 임금 샬마네셀 3세(858-824년)가 남긴 기록에 처음 나온다. 아시리아 임금 사르곤 2세 때까지도 메대는 보잘것없는 제후들의 연합체로서 아시리아에 조공을 바쳐 왔다. 715년 다이우쿠가 이 지역에 통일 왕국을 건설하고 수도를 엑바타나로 정하였으나 그 뒤에도 메대는 아시리아의 속국으로 줄곧 지냈다. 612년 바빌로니아와 연합하여 아시리아를 멸망시키고 독립을 얻었지만 페르시아의 안산 임금 고레스가 등장하면서 메대는 페르시아에 합병되었다. 구약성서에서 고레스를 메대인들의 임금으로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예레 51,11,28).


  구약성서는 민족들의 일람에서 메대를 야벳의 자손들로 분류한다(창세 10,2; 1역대 1,5). 2열왕 17,6;18,11에 따르면 아시리아인들이 북부 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키고 유배자들을 끌고 간 곳이 메대의 성읍들이었다.




사. 엘람




  창세 10,22에 따르면 엘람도 셈의 후손이다. 고대 엘람 왕국은 티그리스강 동쪽의 도읍 수사를 중심으로 자그로스 산맥에 자리 잡았다. 엘람의 통치체제는 봉건 제후들의 연합체였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 군주 제도라 할 수 없다. 2300년경 아카드의 사르곤은 엘람을원수라 하기도 하고 동맹국이라 하기도 하였다. 우르 제3왕조의 임금들은 엘람을 지배하였으나, 이 왕조가 쇠약해지자 엘람은 바빌로니아를 치고 이 지역을 황폐화하였다. 엘람의 바빌로니아 지배는 함무라비가 등장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9-7세기에 엘람은 비옥한 초생달의 패권 다툼에서 아시리아의 경쟁자로 등장하였고, 아시리아의 강력한 임금 사르곤 2세와 그의 아들 산헤립도 엘람을 정복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649년 아쑤르바니팔 임금이 수차례 전투를 치른 끝에 엘람의 군대를 쳐부수고 수사를 초토화 하였다. 그 뒤 엘람은 독립 국가로 행세하지 못하고 언제나 바빌로니아의 위성 국가로 지냈다.


  엘람의 수도 수사는 나중에 페르시아인들에게 점령당하면서 페르시아 제국의 행정 중심지가 되었다. 다리우스 1세는 이도시를 화려하게 재건하였는데, 이곳에는 역대 페르시아 임금들의 겨울 궁전이 세워졌다.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를 칠 때 수사는 교두보 구실을 하기도 하였다.




이 글은 카테고리: 구약성경이야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