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옥한 초생달의 패권 다툼이 뛰어든 나라들..

 

비옥한 초생달 안의 이스라엘




  다윗과 솔로몬의 전성기도 잠깐, 이들이 죽자 왕국은 기원전 933년 남북으로 갈라졌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722년 아시리아에 패망하고 적ㄱ구의 수도 니네베로 끌려간 이스라엘의 왕족과 귀족들은 역사의 무대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남쪽 유다 왕국도 587년 바빌로니아에게 함락된 뒤 그 지도자들 역시 538년 페르시아의 고레스 임금에게 해방될 때까지 바빌론에서 유배 생활을 하였다.


  비옥한 초생달 지역에서 페르시아의 남진정책은 히브리 역사의 전환점이다. 550년 페르시아의 고레스 대왕은 타우루스와 자그로스 산맥을 넘어 곧바로 초생달 지역에 침입해 들어와, 이 지역의 패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한편 서쪽으로 그리스까지 영토확장을 시도했던 페르시아 제국은 마케도니아 출신 알렉산더 대왕에게 패배하고(기원전 332년), 나중에 그리스인들은 다시 로마인들에게 초생달 지역의 패권을 넘겨주었다.


  550년까지 히브리인들은 작지만 이 지역의 한 민족으로서 전쟁에 승리하기도 하고 패배하기도 하면서 다른 민족들과 더불어 그 나름대로 초생달의 패권 다툼에 한 몫을 맡아 왔다. 그러나 550년 이후 앞에서 언급한 대로 그들은 더 이상 자기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급부상하는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 끼여 좁은 영토에서 생존에 급급한 약소민족의 하나로 전락하고 만다.


  이런 지정학적인 위치를 감안할 때, 유배 전후를 중심으로 예언자들이 고취시킨 선민의식이 얼마나 필요한 시대적 요청이었는지 바로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히브리 민족의 선민의식은 그들의 신체적 힘이나 정신의 우수성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 오히려 그들의 약함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아야 옳다. 그러나 야훼 신앙으로 뭉친 그들은 외부로는 타민족의 침입을 받고 끊임없이 강대국의 눈치를 살피며 자구책을 마련하는 데 급급하면서도, 내부로는 그 옛날 이집트에서 천민으로 행세하던 자신들을 해방시키신 야훼 하느님을 민족의 진정한 통치권자로 모시면서 민족의 자존과 긍지를 지켜 나갔다.


  한 마디로 히브리인들의 선민의식은 덧없는 세상의 권력보다 역사의 원 주인이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적극적으로 매달리고자 했던 신앙인들의 유산이다. 이들의 신앙은 보잘것없는 유목민들과 히브리 노예들의 후손들을 강력한 신앙 공동체로 발전시켜, 고대의 열강들이 역사의 무대에서 하나 둘 사라져 가는 동안 장구한 인고의 세월을 겪어 내고 오늘날까지 생존할 수 있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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