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티나의 기후와 계절
가. 기후
지리 조건과 더불어 기후는 성서의 특정문화를 만들어 내는데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위도상으로 아열대에 속하는 팔레스티나의 기온과 강우량은 그 좁은 영토(남한의 1/3 정도)에도 아랑곳없이 지역에 따라 극심한 차이를 보인다. 북쪽의 헤르몬 산악지방에는 연중 강우량이 1500밀리미터를 웃돌지만,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적어져서 예리고에 오면 100밀리미터 미만이고 사해 연안은 그보다 더 적다. 북쪽과 중부 지방은 비가 많아 농사짓기에 적절하나, 남부는 메마르고 바위투성이의 버려진 땅이다. 팔레스티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지중해성 기후의 특성대로 겨울에 비가 내리고 여름에는 비가 거의 오지 않는다. 겨울비를 동반하는 전기 우기는 10월에 시작하여 12월에서 3월 사이에 절정을 이루고, 따뜻한 봄비와 더불어 찾아오는 후기 우기는 4월과 5월이다.
기온도 지역에 따라 매우 다르다. 갈릴래아 북부 지역의 온도는 겨울에 평균 7도, 여름에 22도인데 반하여, 예리고와 쿰란, 마싸다 지역의 사해 연안은 30도에서 40도의 폭염에 시달린다. 이 폭염과 더불어 늦은 봄과 초여름에 불어 닥치는 유다 광야의 건조한 바람은 모든 초목을 시들게 한다. “모든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 주님의 입김이 그 위로 불어오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진정 이 백성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이사 40,6-7). ‘시로코’ 또는 ‘캄신’이라고 부르는 이 동풍은 구약성서에서 주님의 분노를 상징하는 자연 재해로 통한다(이사 27,8; 참조: 에제 17,10; 호세 13,13). 한편 지중해 연안에서 불어오는 서풍은 고마운 비를 뿌려 주지만, 때때로 비구름과 더불어 태풍을 몰고 와 농작물에 심한 피해를 입힌다.
나. 계절
팔레스티나의 절기는 우리와 얼마간 차이가 있다. 농사 절기로 볼 때 한 해의 시작은 가을이다. 우기가 서서히 시작되는 이 시기에 농부들은 그 해 경작할 땅을 파 일군다. 본격적 우기인 겨울이 닥치면 농부들은 곡식의 씨를 뿌리고, 그 씨는 겨우내 땅속에서 생명력을 키운다. 그래서 겨울은 기나긴 잉태의 계절이다. 얼어붙는 추위는 없어도 정월과 2월에는 주고 북쪽의 헤르몬 산악지대와 갈릴래아 호수 지역에 서리가 내리고, 찬비 속의 추위에 모든 생명체는 몸을 웅크린다. 마침내 부드럽고 포근한 보슬비를 동반한 봄이 오면, 끛들이 만발하고 곡식의 씨앗에서 움터 나온 파란 새싹들이 대지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봄은 다른 계절에 비해 짧지만 행복한 계절이다. “무화과나무는 이른 열매를 맺어 가고 포도나무 꽃송이들은 향기를 내뿜는”(아가 2,13) 철이다.
곧이어 비가 그치고 여름이 시작된다. 초여름은 수확의 계절이다. 먼저 보리를 거두 다음에 밀을 수확한다. 수확이 끝나면서 온갖 생명체의 ‘기운을 다 빠져 버리게 하는’(시편 32,4) 혹심한 가뭄과 더위가 밀어닥친다. 대지는 흙먼지에 뒤덮이고, 땅속 깊이 뿌리를 박은 올리브와 포도와 무화과나무들만이 살아남아 식생활에 필요한 열매를 제공한다. 여름은 죽음의 계절이다. 기나긴 여름의 막바지에 이르면 생명을 지닌 온갖 피조물은 가장 큰 시련에 부딪힌다. 더 이상 비가 내리지 않으면 이제 모든 것이 끝장이다.
기후와 계절의 변화는 고대인들에게 불가사의한 것이었다. 지금처럼 자연을 관리하고 통제할 수 없었던 이스라엘인들은 자연이 주는 혜택과 재앙을 하느님의 상선벌악으로 받아들였다. 기후와 계절의 법칙을 통하여 나타나는 하느님의 뜻을 존중하고 조그마한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아 파괴하거나 자연을 신격화하는 범신론의 오류에 빠지지 않았다. 자연 안에서 우리에게 접근하시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하느님께로 향하는 길을 모색하였다. 그들에게 자연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대화를 돕는 다리 구실을 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