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와 축제
1. 때의 측정
성서에 나오는 연대 표기는 일반 독자들뿐 아니라, 전문적인 성서학자들까지도 혼란스럽게 한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한 가지 달력 체계로 날짜를 계산하지 않고, 주변 근동인들의 달력 체계에 영향을 받아 다양한 날짜 계산을 해왔다. 이런 다양한 날짜 계산이 성서 여기저기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시대별로 그 계산법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생겨나게 된다.
가. 일․월력(日․月曆)
대부분의 고대 근동인들은 해와 달의 주기적인 운행와 관련하여 해와 달과 날을 규정하였다. 한 해는 태양이 한 바퀴 돌아 같은 절기가 다시 나타나기까지의 시간을 말하고, 한 달은 달이 처음 생겨나서(초생달) 꽉 찼다가(보름달) 이지러지고 다시 생겨나기까지의 시각을 말하였다. 그래서 그들의 달력 체계를 일․월력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문제는 일력과 월력이 서로 맞지 않는 다는 것이다. 태양의 한 해 주기는 365.25일로 되어 있지만 달의 한 달 주기는 정확하게 29.26일에서 29.80일 사이이고 이를 열두 번 거듭한 월력의 한 해는 일력의 한 해보다 11일이 모자란 354.25일이다. 이 일력과 월력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우리처럼 이삼 년에 한 번씩 베아달이라고 부르던 윤달을 두었다. 베아달의 선포는 임금이나 제후 등 최고 통치권자의 소관이었고 그들에게서 권한을 위임받은 나라의 담당 행정환을 통하여 집행 되었다.
일․월력은 고대 근동의 거의 모든 민족, 곧 수메르,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히브리, 아랍, 그리스인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예외가 있다면 한 달을 30일로, 일년을 365일로 고정시키고 마지막 달에 5일을 추가시켰던 이집트인들(나중에 로마인들도) 정도이다.
위에서 밝힌 대로 일 년은 태양의 한 주기를 말한다. 곧 태양이 같은 계절에 돌아오기까지의 시간이다. 바빌로니아 제1왕조(기원전 1900-1550년경)가 사용한 일․월력은 수메르인들의 우르 제3왕조(기원전 2060-1950년경)가 쓰던 달력이었다. 이 달력에 따르면 한 해의 시작은 춘분이었다. 이와는 반대로 2천년기의 아시리아인들은 추분을 한 해의 시작으로 정하였다.
히브리인들의 경우 성조 시대에는 춘분을 한 해의 시작으로 보는 관습을 따랐던 것 같지만, 왕정 시대에 와서는 가나안 문화의 영향을 받아 추분을 새해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가나안인들과 북서 셈족은 추분 새해를 지켰다. 추분 새해는 농경문화와 직결된다. 가나안 농경민들은 가을에 씨를 뿌리고 겨우내 키워서 초여름에 추수한다. 탈출 23,16;34,22데 보면 가을 축제(초막절)가 끝나면 한 경신례 주년이 끝나고 새로운 주년이 시작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안식년과 희년도 추분 새해 관습을 따른다(탈출 23,10-11; 레위 25,1-22).
그러나 추분 새해 관습이 도입된 다음에도 춘분 새해를 지키는 관습은 특정한 지역에서 특별한 의도 아래 계속되었다. 예를 들어 북쪽 이스라엘 왕국에서 임금의 통치 연대를 가리킬 때는 이 관습을 따랐다. 추분 새해 관습은 유다인들이 바빌로니아 유배에서 돌아온 이후, 바빌로니아 달력의 영향으로 다시 춘분 새해 관습으로 바뀌었다. 이 때 유다인들은 아래에서 상세히 소개하겠지만, 바빌로니아의 달 이름까지 채택하게 되었다. 탈출 12,2.18에 보면 과월절이 들어있는 달(아빕-니산)이 한 해의 시작으로 성대하게 선포되는데, 많은 학자들은 이 대목을 유배 이후에 편집된 것으로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