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력과 예수님의 탄생

 

서력과 예수님 탄생


예수께서 사시던 시대에는 소위 ‘율리우스력’이라는 연호를 썼다. 이는 로마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원전 46년에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태양력에 따른 윤년의 계산이 조금씩 밀려나, 기원후 325년에는 춘분이 3월 21일이어야 하는데, 3월 25일로 나흘이나 잘못 잡히게 되었다.


한편, 그동안 그리스도 신앙이 서구세계에 널리 퍼지면서 기원을 구세주 강생으로부터 헤아리게 되었다. 이때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정통한 ‘난쟁이 디오니시우스’라는 한 수사가 큰 역할을 하였다 그는 구세주 탄생과 관련한 동방가톨릭과 서방가톨릭의 서로 다른 전통을 일치시키기 위하여 구세주 강생 기원 원년을 서기 1년 3월 25일부터 헤아리기 시작하였고, 양력 설날은 1월 1일로 정했다.그가 서기의 시작을 3월 25일(주의 탄생 예고 대축일)로 잡은 것은 당시에 이미 고정된 예수 탄생일, 12월 25일로부터 태아의 잉태 기간인 아홉달을 거슬러 계산한 결과이다.


성탄을 12월 25일로 정한 것은 디오니시우스보다 훨씬 이전으로 올라간다. 일년중 밤이 가장 긴 동지는 태양이 남쪽 하늘끝에 가 있다가 북쪽 하늘로 돌아오기 시작하는 날이다. 율리우스력에 따르면 동지는 12월 25일이었다. 페르시아의 빛과 진리의 신인 미트라는 신을 숭배하던 고대 로마인들은 이 날을 ‘무적의 태양 탄일’로 경축하였다. 274년 12월 25일, 로마황제 아우렐리우스는 태양신을 로마제국의 주요 수호신으로 선포하고 ‘마르시우스 뜰’에 태양신의 신전을 지어 봉헌하면서 이 날이 제국의 큰 축제일로 자리잡혔다.이런 로마의 이교도 풍습에 맞서 그리스도교 교부들은 3세기 초에 벌써 그리스도의 탄생과 동지를 대비시키고, 그리스도께 ‘정의의 태양’이라는 호칭을 부여하였다. 정확하게 언제 어떻게 태양신의 축제가 예수그리스도의 탄일로 바뀌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이마 4세기 말에는 12월 25일이 예수 성탄으로 자리잡혀 있었다. 암브로시우스 성인(397년 사망)의 증언과 북아프리카 누미디아에서 활약하던 밀레바의 옵타투스의 성탄 설교가 이를 입증한다.


동방가톨릭에서는 4세기 말까지 12월 25일이 아니라 1월 6일을 예수 성탄 축일로 지내왔다. 우리가 ‘주의 공현 대축일’이라고 부르는 이 축일에, 오늘날 서방교회는 ‘세 동방 박사의 아기 예수 예배’를 동방교회는 ‘예수 세례’를 기념한다. 그러나 본디 이 축일 역시 동지와 관련된 이교도 축제에서 기원한다. 고대 이집트력으로는 동지는 12월 25일이 아니라 1월 6일이었다. 그리고 이집트인들은 바로 전날 밤에 동정녀에게서 태어난 것으로 여기는 태양신 에온의 탄생을 경축하였다. 4세기에 이르기까지 이집트의 태양신 축제는 동방가톨릭에서 예수 성탄뿐아니라, 예수 세례와 심지어 가나의 기적까지도 기념하는 축일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위에서 밝힌 대로 4세기 말에 와서 서방가톨릭의 영향으로 12월 25일을 예순 성탄 축일로 지내게 되고, 1월 6일은 예수 세례만 기념하게 되었다. 동방가톨릭의 대표적 교부 나지안의 그레고리우스는 380년 성탄절 설교에서 자신을 12월 25일 성탄절의 창시자로 주장하였고,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도 안티오키아에서 이 축일을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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