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계 신학의 전체적인 내용

 



I 신명기계 신학의 전체적인 내용




1. 열왕기의 신학적인 틀과 구조




모세오경의 여러 문전(야휘스트, 엘로히스트, 제관계, 신명기계)중의 하나인 신명기는 모세오경의 제5권째에 해당한다. 희랍어로 Deuter는 제2이고 nomos는 법을 의미하므로 제 2의 법이라는 뜻이다. 또 한자어로는 申命記라고 하는데, 이는 법을 펴나간다는 의미이다. nomos의 전신은 Torah인데, 이는 법의 의미보다는 하나의 길, 계시의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탈무드에 의하면 「탈무드는 2개가 있는데 하나는 바빌론 탈무드이고 하나는 팔레스타인 탈무드이다.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바빌론 탈무드이다. 그리고 히브리인들은 구약의 계속은 신약이 아니라 탈무드라고 생각한다.」 토라를 계시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이 출애굽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이스라엘 백성이 에집트를 출발하여 시나이산에 가서야 하느님이 우리에게 내려오시어 십계명을 주셨다는 것이며, 이 테오파니아(Theophania)가 시나이산에 있어서의 신학적인 중심사상이다. 보통 시나이하면 시나이 계약을 생각하지만 시나이 테오파니아를 생각해야 한다. 하느님이 내려오심은 신학적 의미이며 그 실제적 의미는 출애 3,8의 “내가 내려간다”의 약속을 신학적으로 이루어 놓은 것이 시나이 테오파니아이다. 역사적으로 내려왔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려오셔서 그들을 이끌어갔다는 의미이고 신학적 마무리는 시나이에서 테오파니아로서 백성에게 내려왔다고 종결을 짓는 것이다. 이 테오파니아의 중심 사상은 당신이 파라오를 대신하는 왕임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왕이기 때문에 헌법이 있어야 하며, 이 헌법이 바로 토라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토라가 ‘길’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즉 이런 헌법을 이행하게 되면 출애굽 1-14장의 내용이 언제, 어디서, 어느 백성에게나 재생될 수 있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하느님이 자신을 드러내신다는 것이고, 그것을 잘 설명한 것이 신명기이다. 신명기는 출애굽 사건을 신학적인 계시로 보기 때문에 신명기 신학에 의해서 역사를 보게 되면 출애굽은 계속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열왕기에서는 왕들이 하느님의 계명을 어겼기에 망하게 됐다는 것이다.






2. 신명기 신학과 신명기 역사신학의 구분




신명기에서 열왕기까지는 ‘한 권의 책’이다. 즉 신명기, 여호수아, 판관, 사무엘1·2, 열왕기1·2가 한 저자군(Auctor)에 의해서 쓰여졌다는 의미이다. 저자가 여러 사료를 선택하고 배열한 관점을 제공한 것이 바로 신명기이다. 이 신명기의 관점을 ‘신명기 신학’이라고 한다. 즉 신명기는 토라를 설명한 것이고, 동시에 책으로 볼 때는 다른 책들을1) 쓰게 만든 정신적 지침인 것이다.


신명기 역사학자(Deuteronomist)가 한 일은 신명기 시작부터 열왕기까지를 저술한 것이다.2) 그들은 신명 1-4장을 앞에 붙였는데, 이것이 신명기에서 열왕기에 이르기까지의 서론 구실을 한다. 5-11장, 12-26장은 신명기계 문헌의 가장 오래된 사료로 그들에게 전해진 것이다. 다시 말해서 5장 이하의 십계명, 12장 이하의 중앙집중법 등등은 귀향 이전부터 내려온 것이다. 즉 서론을 만들 때의 정신적 지주는 5-26장인 것이다. 이 정신에 의해서 다른 사료들을 선택하고 전개한 것이다. 예를 들면 판관기, 사무엘서에도 나름대로의 사료들이3) 있는데 이런 여러 사료들로 하나의 책을 쓴 것이다.


열왕기에 있어서 신명기 역사학자의 사료를 정리하면, 처음의 열왕기 1-2장은 다윗 계승사의 결론 부분 사료이며, 또 독립적 전승이 있으며, 남쪽·북쪽 국가의 왕조실록이 있으며, 열왕기 끝에 가서 신학적으로 덧붙인 것이 있다. 따라서 열왕기는 내용적으로는 사료가 좌지우지하지만, 이를 쓴 것은 신명기 역사학자들(Deuteronomist)이 한 작업인 것이다.






3. 신명기 신학에 대하여




이 신명기계 역사학자에게 영향을 준 신명 5-26장의 신학적 매력은 무엇인가? 이것이 신명기 신학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신명기의 신학과 신명기 역사학자의 신학은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신명기 신학은 가장 큰 특성은 ‘하나의 하느님’(6,4)이다. 이것의 신학적 취지는 나머지는 백성이라는 것이며, 백성은 다 평등한 형제라는 것이다. 그것의 영향력은 모두가 형제이기 때문에 ‘사회적 연대감’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명기 신학은 ‘인본법’이 많이 나타난다(4장, 7장, 8장…). 또한 ‘안식일’은 출애굽의 취지와는 다르게 약자도 하루는 쉬어야 된다는 취지를 살려가는 것이다. 즉, ‘하나의 하느님’에서 나타나는 신학은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한 형제로 살 수 있게 하는 신학이다. ‘하나의 하느님, 한 백성’이 특징이므로 하느님을 섬기는 데도 하나의 ‘경신례 양식’을 강조한다(12장). 이 신명기 12장은 13장, 14장에도 계속 영향을 미친다. 즉 “하느님이 당신의 이름을 놓기 위해 선택한 곳에서 하느님을 경배하라”는 것이며 이것이 신명기 신학을 요약하는 경구이다.


이것이 요시아 왕에게 알려졌으며, 요시아는 그것을 통해 경신례를 정비했다.4) 또한 다른 민족의 신(바알, 아세라, 아스돗 등)을 공경하지 않도록 신관을 정비했다. 이것을 정비하면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계약을 강조한다. 예루살렘의 위치를 강조하는 이유는 예루살렘이 야훼의 이름이 있는 곳이며, 그 이름이 지니고 있는 신학적 무게 때문에 야훼의 이름이 있는 곳에서 백성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신명기 신학에 있어서 하느님이 임재하게 되는 양식은 ‘이름이 있는 곳’이다. 즉, 공동체를 이룩하도록 당신을 공개하는 것이다.5) 또한 신명기 신학의 전제는 하느님이 당신 백성을 선택한다는 것이다.6) 이 ‘선택’은 하나의 하느님, 백성, 경신례를 나타내는 하느님의 주도권(Initiative)을 나타낸다.7) 따라서 선택 후에는 계약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4. 신명기 역사신학에 대하여




신명기 역사신학은 하느님께 잘못했더라도 하느님께 다시 돌아오면 다시 살수 있다는 것이며, 일반적으로 신명기 역사학자들이 신명기 부터 열왕기 끝까지를 썼다고 본다.


우선 Martin Noth의 주장을 살펴보면, 초기의 주장이 많은 반박을 받아 후기에는 변화되었음을 볼 수 있다. 먼저 저자 문제에 있어서 처음에는 한 사람이 썼다고 했으나, 후기에는 저자 그룹이 썼다고 말했다. 둘째는 저작 시기에 있어서 초기에는 귀양 전에 한번 쓰고 귀양 후에 또다시 썼다고 주장했는데, 학계에서는 지금도 논란이 되는 문제이지만 전반적으로 전부가 귀양 때 쓰여졌으며 한 번이 아니라 몇 번에 걸쳐서 쓰여졌다고 인정된다. 셋째는 저술의 지향이 있어서 왕정시대는 실패한 역사이며, 우리가 왜 귀양을 가게 되었는지 이유를 밝혀서 단죄를 받는 기간임을 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그의 제자들과 학계에서는 이러이러한 역사적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 저술의 지향임을 언급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의 실패한 역사를 보여줌으로써 실패하지 않아도 될 수 있는 지침이나 가능성이 신명기 안에 있으며, 회개로써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8)


한편 R. Smend에 의하면 신명기계 문헌은 저자들의 관심에 따라 대략 3번에 걸쳐서 쓰여졌다는 것이다.


Dtn h ; 역사를 중심으로 쓴 저자   


Dtn p ; 그 속의 예언자적 문제(엘리야, 엘리사)에 대한 관심을 가진 저자   


Dtn n ; 신명기 정신을 이어서 하느님의 명령(nomos)을 펴나가는 것에 대해 관심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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