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 3장의 구조

 

1. 3장



(1) 일반




여기부터는 솔로몬의 역사인데, 솔로몬의 역사는 신명기 역사가가 집성을 해서 만든 것이다. 어떻게 해서 솔로몬이 위대한 왕이라는 합법성을 부여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는 지금 현재 순서에 있어서는 2장하고 연결이 된다. 2장에 있어서는 이 사람이 이러이러 해서 하느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았다 내지는 계시를 받았다. 그 다음에는 솔로몬의 여러가지 역사들 군대조직이라든지 행정조직이라든지 또 성전을 짓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그 구성을 보면 솔로몬의 자질이 3장에 나오고, 그 자질 가운데에는 개인적인 자질, 합법적인 의미에서의 자질을 얘기한다. 그래서 이것을 합법성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합법성이라고 하면 지난시간에도 얘기했듯이 꼭 필요조건이다. 즉 이 사람이 왜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는가? 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이어서 솔로몬은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릴 능력이 있다는 충분조건을 제시한다. 그래서 3장이 한편으로는 2장에 대해서는 합법성을 얘기해 주고 이하에 대해서는 능력을 얘기해 준다. 이 사람이 왕으로서 이런 능력이 있는 것이다. 그 능력에 대해서는 4장에 행정조직 개편과 성전 건축 이야기가 있다.




6장~7장은 여러가지 성전에 대한 얘기, 건축학적인 얘기고 8장에 가서는 성전을 낙성할 때 어떻게 축사를 했는가 어떻게 신학적으로 그것을 얘기했는가 하는 것이 나오고 8장이 끝나면 9장에 가서 하느님이 또 나타나신다. 나타나셔서 거기에 대해 응답하시는 내용이 나오고 그 다음에는 솔로몬이 다른 나라에 얼마만큼 크게 영향력을 행사했는가가 나온다. 그리고 11장부터는 솔로몬의 쇠퇴가 나타난다. 우선 3장을 하고 난 다음에 8장 이하로 넘어가겠다. 행정조직이나 성전 건축 이야기는 의미만 간단히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는 성전을 낙성할 때 솔로몬의 역사관, 신관, 성전의 의미 등이 나오는데, 이는 신명기 역사의 신학적인 종합이라 할 수 있다. 열왕기를 보면 신명기 역사가가 다윗과 솔로몬의 위대한 점들을 열거하고 선한 행업을 나열한 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느님의 길을 충실히 걷지 않았기에 결과적으로 실패하고 만다는 것을 제시해 주고 있다. 열왕기 전체를 보면 신명기 역사가가 인간을 다스리는 일은 부패할 수 밖에 없고 인간이 만든 통치제도나 체계는 불완전한 것이기에 인간은 전적으로 하느님만을 유일한 지배자로 삼아야 한다는 사상을 전해주고 있다.




(2) 구분1)




1절부터 3절이 서론이고,


4~15절이 소위 꿈 얘기고, 16절부터 끝까지가 솔로몬의 지혜를 대표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구분에 있어서는 어려울 것이 없다. 그러나 문헌비판적으로는 굉장히 문제가 많다. 너무 좋은 내용이기 때문에 신명기 역사가가 나름대로 자꾸 카피를 한 것이다. 그리고 솔로몬의 역사를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역사가가 보는 역사관이 처음부터 들어가 있다. 자기에게 내려온 사료를 가지고 자기 주관이 개입을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문헌비판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신학적인 문제는 거기에 따라서 설명을 할 것이다.




4절~15절이 가장 문제가 된다.


우선 윌트발리용의 견해를 살펴 보기로 하겠다. 그는 3장부터 시작을 하는데 4절 aα, 그 다음에 b, 그리고 5절 b, 6절 일부, 9절 a, 그 다음에 11절에 시작 , 그 다음에 12절 bα, 그 다음에 13절 a, 15절 abα*β. 그래서 4장 1절 여기까지가 이야기의 오래된 내용이라고 본다.


데프리스라는 학자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4절에 대해서는 똑같고 5절 b도 똑같고 다음에 6절도 똑같고, 그 다음에 그는 7절을 집어 넣는다. 그 다음에는 9절도 다 넣고, 그 다음에 11절 aα, 12절 b. 다음에 13절 a는 똑같고 15절 a, 마지막으로 15절 bβ. 그리고 4장 1절은 아예 언급도 안한다.


마르틴 롯도 비슷한데 원문이 5절 b, 6절에서 8절은 신명기적인 요소가 있다고 본다. 9절로 들어가고, 10절에 신명기적 요소가 있고, 11절 들어가고, 12절, 13~14는 신명기 요소이고, 다음에 15절 abα.




세가지를 보면 차이점이 있는데 공통점부터 보면은 문헌비판적으로 4절에서 ‘임금이 제사드리러 기브온으로 갔다. 그리고 이는 그것이 큰 고소였던 까닭이니라.’학자들이 하는 얘기가 ‘이는 그것이 큰 고소였던 까닭이니라’는 후에 삽입된 것으로 본다. 그 이유는 그 위 2절 3절에 보면 기브온이 고소라는 얘기가 나오는데 그 자체가 나중에 붙은 것이다. 그러니까 기브온이 고소(높은 장소)였다. 2절 3절에 나오는 기브온이 지니고 있는 성소의 성격을 다시한번 얘기하는 것이니까 이는 나중에 붙은 것이다. ‘그리고 솔로몬이 그 제단 위에서 번제 천마리를 올리니라, 기브온에서 밤에 꿈에 솔로몬에게 발현하시어.’ 이것은 후대에 붙은 것이라 보아야 됩니다. 신명기적인 요소다. 왜냐하면 그 이유는 15절 보면 ‘깨어보니 꿈이었다.’ 이것은 신명기 역사가가 얘기를 부드럽게, 긴장없이 하기 위해서 넣은 것이다. 사실 솔로몬의 이 체험은 꿈인줄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까 꿈이었다 하는 깨닫는 효과를 15절에 넣었는데 오히려 그 이야기를 밋밋하게 만든 것이다. 의외성이 있는 그런 이야기였다. 하느님으로부터 얘기를 들었으니까 압도당하는 그것이 결국 깨고 보니까 꿈이었다. 그런데 아예 처음부터 꿈이었다 라고 얘기하는 것인데 그 이유는 나중에 말하기로 하자.왜 그렇게 하면 좋은가? 이건 쟝르에 관계된 것인데 4~15절이 유명한 에집트에서 왕이 자기의 체험과 어떤 지식, 능력을 근거로 해서 어떤 계획을 세우고 그 다음에 그것을 수행하려고 할 때 신하들에게 알리고 그 합법성을 하느님으로부터 받는다하는 그런것을 배경으로해서 만든 이야기이다.


그 때문에 신명기 역사가가 여기 뒤에 ‘아 꿈이었다’라고 의외성이 있었던 체험을 왕의 합법성을 세우기 위해 에집트의 사례를 이용해서 첫부분에다 놓은 것이다. 그래서 5절 a는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좋다. 그리고 「야훼」를 5절 b에 가서 즉시 「천주」라고 바꾼다. 그럼 야훼를 천주라고 바꾸는 것보다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엘로힘으로 알려진 이름을 야훼로 바꾸는 것이 신학으로 발전되는 과정이다. 그건 제관계에서도 신명기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이상한 점이다. 그래서 5절 a는 후대에 붙은 것이다.


또 한 가지 솔로몬이 기브온에 갔을 때 꿈 이야기가 뒤를 이어 나타났어야 하는데, 기브온이라는 지명이 다른 이야기 다음에 또 한번 나온다는 것도 이상한 점이다. 그뿐 아니라 그 기브온에서 솔로몬이 제사드린 이야기가 맨 앞에 나온다. 이곳에선 기브온에 대해서 얘기할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꿈 이야기가 핵심으로, 솔로몬이 하느님으로부터 말씀을 듣는 것이 요지이다. 솔로몬에게 중요한 것은 야훼가 아니고 자기가 이렇게 꿈에 압도당했고, 그에게 지혜를 준 분은 야훼이시다 라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이는 지혜서에 가면 바뀐다. 즉 야훼가 주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청해서 야훼께서 주는 것으로. 그래서 지혜라는 것은 무슨 사랑이니 희망이니 애정이니 뭐 그런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하느님께 청해서 얻을 수 있는것. 그래서 보편적인 것. 지혜에 관한 민주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지혜는 솔로몬, 고급공무원들, 돈많은 사람들의 독점물이었다. 교회는 정보에 대해서 폐쇄적이다. 그래서 매력이 없다.




(3) 본 문




5절~8절




5절 a에 야훼를 넣은 것은 신학화된 것이다. 그 이유를 말한 것이다. 6절에 가서 보면 2,4 이하에 다윗이 얘기한 신명기 역사적인 내용이 많은 것이다. 성실·의덕·정직 이런 것들이 다 신명기 역사가에게서 볼수 있는 해석이다. 6절 a에 ‘솔로몬이 아뢰기를 당신이 당신종 나의 아버지에게 총애를 베푸셨고’가 그것이다. 5절 b에 보면 ‘천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에게 무엇을 주면 좋겠느냐.’그렇게 하면 즉 6절~8절을 다 빼고 9절에 ‘…총명한 마음을 주소서’하면 되는데 윌트발리용은 거기다가 6절 a ‘당신종 다윗에게 총애를 베푸셨읍니다.’를 넣고 있다. 그러나 거기다가 그것을 넣을 필요가 없다고 본다. 신명기 역사학자의 설명인 6~8절은 다 삭제해도 괜찮다. 6~8절에 나오는 야훼께서 총애를 베풀었다는 것과 9절에 가서 ‘총명한 마음을 주소서’하는 것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다. 하느님께서 이 내용적으로 봐서 다윗에 대해서 잘해 주신것, 이것은 신명기 역사가가 평가하는 다윗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하고도 맥락을 같이 한다. 또 1장· 2장에 보면 야훼가 관여를 해서 계승이 된것이 아니라 음모에 의한 것이기에 야훼가 뭘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그래서 이것은 ‘당신종 나의 아버지’ 뭐 이렇게 해서 그래서 나를 여기에 앉게 했다 라고 설명함으로써 신명기 역사학자들이 다윗을 과대평가한것으로 볼 수 있다. 다윗에게 이렇게 총애를 베풀었으니까 솔로몬이 앉게 된다.




9절 : 9절도 어디까지 가느냐 하면 ‘총명한 마음을 주소서.’ 여기까지가 원전이고 그 다음에 10절하고 15절 보면 ‘주님의 계약의 궤 앞에서 번제제를 올리고’ 뭐 등등 이런게 나오는데, 이는 나중에 붙은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15절 후반부도 나중에 붙은 것이다. 왜냐하면 기브온으로 갔다는 것(4절 a), 기브온이 성소를 짓기 전에 기브온이 이스라엘에는 아주 잘 알려진 성소이다. 그래서 성전을 짓기 전에는 그곳에 가서 제사를 드렸다. 신명기 역사가가 신학적으로 봐서는 솔로몬이야말로 훌륭한 왕이고 다윗이 하느님께 순명을 했으니까 솔로몬도 그래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브온에 가서 제사를 지낼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성전을 안 지었기 때문에. 솔로몬에 대해서 신학적으로 보아서 평가절하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는 성전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15절은 후에 붙은 솔로몬에 대한 과대평가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모든 제사는 예루살렘에서 지낸다고 하는 거기에 기초로 된 얘기이다. 계약의 궤 앞에서 제사를 지낼 정도가 되었다면 기브온에는 왜 갔는가? 여기서 평화 제물이나 번제를 바치면 되는데… 맞지가 않는 것이다.




11절 : 11절로 넘어가서 ‘천주께서 그에게 가라사대 ……판단력을 청하는 까닭에’ 여기까지만 본문이다. 신명기 역사가가 원문을 받아가지고 계속 새롭게 첨가한 것을 볼 수 있다. 장수니 원수의 생명이니 이런것들은 왕의 개념하고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신명기 역사가가 보는 왕의 개념에 딸려오는 속성이다.




12절 : 12절 a를 빼야 되겠다. 12절 a는 후대에 붙은 것이기 때문에 12절 b만 보면 된다.




13절 : 13절 a는 넣어도 좋다. 이런것을 청햇기 때문에 총명한 마음만이 아니라 이런것들도 준다. 13절 a까지만 넣어야 한다.




14절 : 14절은 후대에 들어간 것이다. 왜냐하면 조건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신명기 역사가의 신학적 표현이다(규범과 명령을 지키고 등등). 더군다나 14절에 나오는 규범과 명령은 신명기에 많이 나오는 신명기 역사가의 문체이다.




15절 : 15절은 넣어야 한다. 15절 a ‘깨보니 꿈이었더라.’ 그 다음에 15절 bβ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15절 bα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데프리스의 얘기에 따르면 15절 b 전체를 빼야 한다. 제 생각에는 15절 b는 확실하고 bα에 대해서는 좀 문제가 있다.




이 부분은 이정도로 마치기로 하겠다. 내릴 결론은, 신명기 역사학자에게 내려온 솔로몬의 얘기가 있었고 그것을 신명기 역사학자가 신학적으로 재구성을 했다. 기본적인 이야기는 간결한 것이었다. 그것을 신학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해서 여러가지를 그 앞에 넣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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