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솔로몬 대왕의 역사
지혜로운 임금 솔로몬
1솔로몬이 미쓰라임의 임금 빠르오와 통혼하여 빠르오의 딸을 맞이하고 자기가 자기 궁전과 야훼의 땅과 예루살렘 성벽을 뺑 둘러 쌓는 일이 끝나기까지 그를 다윗의 읍으로 들이니라. 2그러나 그 시대까지는 야훼의 이름을 위한 당이 건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백성이 고소들에서 제사하였고, 3또 솔로몬이 야훼를 사랑하여 자기 아버지 다윗의 법규를 따라 걸었으나, 그가 고소들에서 제사하고 향을 피우는 일만은 하더라.
기브온에서 꿈 중에 지혜를 청하여 얻다
4임금이 제사 드리러 기브온으로 갔으니, 이는 그것이 큰 고소이었던 까닭이니라. 그리고 솔로몬이 그 제단 위에서 번제 천 마리를 올리니라. 5기브온에서 밤에 꿈에 야훼께서 솔로몬에게 발현하시어, 천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에게 무엇을 주면 좋을찌 청하여라」 하시니, 6솔로몬이 아뢰기를 「당신 종, 나의 아버지 다윗가 당신 앞에서 성실과 의덕과 마음의 정직을 가지고 행동하였음에 따라, 당신이 그이에게 총애를 베푸셨고, 또 그이에게 그 큰 총애를 보존하시와, 이 오늘과 같이 그이에게 그이의 어좌에 앉아있는 아들을 주셨나이다. 7나의 천주 야훼시여, 이제 당신이 당신 종을 나의 아버지 다윗 대신 임금으로 삼으셨으나, 나는 소년이오매 앞장서 나가고 들고 할 줄 모르나이다. 8그리고 이 당신 종은 당신이 고르신 당신 백성 가운데 있사옵는바, 그 백성이 너무 많아서 셀 수도 없고 또 기록할 수도 없도록 많으오니다. 9그러니 당신 종에게 좋고 그른 것을 분간하여 당신 백성을 다스리도록, 총명한 마음을 주소서. 실상 누가 이 많은 당신 백성을 다스릴 수 있겠나이까」하였더니, 10솔로몬이 이 사정을 청하였기 때문에 주님의 눈이 그 일이 좋이 보였으므로, 11천주께서 그에게 가라사대 「네가 너를 위하여 장수를 청하지 않고, 너를 위하여 제물을 청하지 않고 너의 원수들의 생명을 넘겨달라 청하지 않고 이 사정을 청하며 법규를 알아듣기 위한 판단력을 청한 까닭에, 12보라! 너의 말과 같이 내가 행하여, 당장 너에게 슬기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보다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을 정도이며, 너의 다음에도 너와 같은 자는 일어나지 않을 정도니라. 13또 네가 청하지 않은 것마저 재물도 영화도 너에게 주노니, 너의 온 평생에 임금들 가운데 너와 같은자가 아무도 없을 정도니라. 14또 네가 만일 나의 규범과 나의 명령들을 지키며 너의 아버지 다윗가 걸었 듯이 나의 도리를 따라 걷는다면, 너를 장수하게 하겠노라」하시니라. 15그리고서 솔로몬이 깨어보니, 자! 꿈이었더라. 이에 그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 주님의 결약 궤 앞에 서서 번제물을 올리고 평화제물을 바친 다음, 자기 모든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푸니라.
문헌적으로 보면 문제가 있다. 짧은 구절이지만 한 사람이 쓴 것이 아니다. 문제는 2절에 있다. 그러나 히브리어의 라크(그러나)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것은 앞의 것을 반대하고 제한하는 것이다. “자기가 자기 궁전과 야훼의 땅과 예루살렘 성벽을 뺑 둘러 쌓는 일이 끝나기까지 그를 다윗의 읍으로 들이니라.” 그 다음에는 “그러나 그 시대까지는 야훼의 이름을 위한 당이 건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백성이 고소들에서 제사하였고”라는 말이 나온다. 2절은 신명기 역사학자의 사상에 정반대되는 이야기이다. 모든 제사나 경신례는 예루살렘에서만 하게 되어 있는데, 왜 이렇게 하게 되었느냐, 솔로몬에 대해서 좀 좋게 평가하기 위해서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다음에는 성전이 아직 지어지지 않았다는 현실을 밝히며, 성전의 필요성을 신학적 의도를 지니고 이야기한 것이다. 라크를 넣어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그리고 또 3b를 해석하면,
3b: 그가 고소들에서 제사하고 향을 피우는 일만은 하더라.
1절은 7,8; 9,14.16에 나오는 성전 건립과 관계되는 이야기이다. 재미있는 것은 3,1에 보면 실제적인 이야기가 있다. 이런 것을 지을 때까지 파라오의 딸과 결혼한 다음에 다윗의 읍으로 데리고 왔다.아직 다윗의 읍에는 야훼의 당도 없고 신전도 없었다. 그래서 고소에서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2절, 3b는 신명기 역사학자의 솔로몬에 대한 평가, 제사를 통해서 솔로몬을 좀더 좋게 이야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장르에 대해서 보면, 지브크 헤르만이라는 사람이 무슨 말을 했느냐하면, 에집트와 이스라엘에 있어서, 왕에 대한 노벨라(소설, 작은 문학적인 작품, 이야기), 즉 왕에 대한 조그만한 이야기, 에집트와 이스라엘에서 왕에 대한 조그마한 소설등을 뜻하는 저술에서 다음과 같이 학계에서도 인정되는 주장을 폈다. 앞에 신명기적인 요소를 빼고 남은 이야기는 무엇이냐? 이것은 사실보고나 사실묘사가 아니라 에집트에서 왕들에게 적용되었던 또는 왕들의 어떤 합법성, 왕들의 어떤 계획을 수행하고 신하들에게 알리는 일, 이런 것을 합법화시키기 위해서 만들어낸 이야기들. 그 이야가들을 여기에 그대로 수용해서 쓴 것이다. 그래서 기본적인 골격은 신명기적 요소를 다 빼고 바로 에집트에서 왕들에 대해서 적용했던 그런 이야기들을 골자로 하고 있는 것이다.
에집트에서 그런 것을 왜 했는가? 자기의 계획을 합법화하기 위해서, 즉 자기가 하는 일이 모두 하느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이야기하려고 한 이야기이다. 하느님이 꿈에 이야기했다고 했는데, 그러면 할 말이 없다. 더구나 에집트는 왕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였다. 거기에 하느님이 나에게 이러저러하게 하라고 계시하였다. 이것을 신하들에게 알린다. 이것을 합법화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하는가? 이야기를 만든다. 이런 것을 찾아낸 것이 지브크 헤르만이다. 왕이 꿈을 꾸어서 백성에게 이야기하면 백성들은 잘하고 계십니다라고 감탄한다. 이런 경우를 이용하여 살로몬이 인용한 것이다. 주로 언제하였는가? 전쟁, 커다란 건물 건축등 여하튼 백성들의 모든 재정 능력을 동원할 때에는 그런 이야기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다라고 이야기한다. 그것을 통해 의도한 것은 항상 합법적이라는 것, 정당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장르가 여기에 있다. |
또 하나 특징은 여기에는 하느님이 나타나서 무엇을 주었느냐? 판단하는 능력을 주었다. 그런데 5장에서 가보면 솔로몬이 판단하는 지혜가 아니라 자연에 대한 일반적인 백과사전적 지혜를 지녔다라고 해서 솔로몬을 격찬하는 부분이 있다.
또 이것은 왕에 대한 소설같은 이야기, 그런 왕들을 통해서 솔로몬이 참으로 판단능력이 있다. 분별능력이 있다. 이런 것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그러면 왜 그렇게 했느냐? 옛날부터 에집트니 이스라엘할 것 없이 왕의 기본적인 능력은 아주 제일 우선하는 능력은 무엇이냐 백성을 다스리는데 그것은 판단을 잘 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세가 에집트에서 이스라엘을 끌고 나올 때도 마찬가지이다(출애 17장; 민수기). 판단을 잘 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것이 왕의 특성이므로 솔로몬은 이것을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이야기를 끌어들여서 격상시키는 것이다.
16절이하에는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이다. 이는 인도나 극동에 퍼져 있던 이야기이다. 한 아이의 두 어머니가 서로 싸워서 어떻게 할 것이냐? 진짜 어머니를 찾아주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잠시 살펴볼 것은 16절이하의 무대이다. 무대가 밤의 여인으로 옮겨 놓여진 것이다. 일반적인 가정에서는 그런 것이 일어나는 것이 좀 불미스럽다라는 생각하여서 무대를 밤의 여인들, 거리의 여인들사이에 벌어진 것이다.
핵심은 1-15절에 있다. 1-3절은 서론이다.
1절 : 솔로몬이 미쓰라임의 임금 빠르오와 통혼하여 빠르오의 딸을 맞이하고.
이것이 어느 파라오의 누구냐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파라오는 분명히 파라오인데 파라오의 왕조가 초․중․말기로 나누어지는데, 여기에서 말기의 어느 파라오의 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 누구냐? 시아믄의 딸이 아닌가 그런 식으로 이야기한다. 이는 중요하지 않다.
여기에서 의도하는 중요한 것은 솔로몬이 바로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제시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냐? 국제적인 감각을 지닌 사람이다. 개방된 세계적인 사람임을 알리려 하는 것이 본래 의도이다. 그래서 파라오의 딸을 맞이하였다는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능력으로 보아서 같은 위치에 있는 이론적으로 격상시키는 그런 의미인 것이다. 이와 병행하여
1b: 자기가 자기 궁전과 야훼의 땅과 예루살렘 성벽을 뺑 둘러 쌓는 일이 끝나기까지 그를 다윗의 읍으로 들이니라.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읍, 왕도로서 부족한 것이다. 궁전, 야훼의 성전, 성벽도 안되어있는, 왕이 자신을 보호할만한 형편이 되지 않는 즉, 예루살렘은 꼴이 아니다. 꼴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파라오의 딸을 맞아들여서 데려올 수 있었다. 솔로몬이 능력이 있었다. 굉장한 사람이었다. 어느 재벌이 촌사람에게 딸을 시집보낼 때 무엇을 보고 결혼을 시키겠는가? 그저 남자하나 잘나서 보낸 것이겠지. 여기에서 실재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다. 그런데 2절이 문제이다.
2절 : 야훼의 이름을 위한 당이 건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백성이 고소들에서 제사하였고,
이것은 신명기 역사학자의 개념상 모든 제사는 예루살렘에서 지내야 한다는 것과 반대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서 솔로몬에게 가야할 책임을 덜어주는 것이다. 왕도 괜찮았다. 신명기의 신학적 경향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고소”(높은 장소) 바마<המב>라는 것은 다른 민족에게도(가나안) 많이 볼 수 있는 것이다. 주로 높은 산인데 높은 산이 아니고 낮은 골짜기에도 있다는 것이다.(예레 7,31; 32,35; 에제 6,3) 높은 곳이 아닌데도 위의 단어를 사용하였다. 그 다음 2열왕 23,8: 읍내의 문, 성읍의 문에도 이 명칭을 사용한다. 이렇게 볼 때 이 말은 지역적으로, 일반적으로 높은 곳이 아니라 하느님께 제사를 바치는 곳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나안 민족에게 많이 알려졌던 곳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섬돌이라고 하는 맛세바, 아세라등 제사에 관한 제구, 돌이 쌓여있는 곳, 그런 것을 통해서 거룩한 곳, 높은 곳으로 이해를 했다고 한다. 이 고소가 다른 민족이 이스라엘이 들어오기전에 하느님을 공경하던 곳,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솔로몬이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것은 그야말로 야훼의 당이 없었기 때문이다.
3절 : 야훼를 사랑하여 자기 아버지 다윗의 법규를 따라 걸었으나
여기서의 사랑(בהא)이란 감정적인 사랑, 의지하고 투신하는 것 등 2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 법규를 따르는 의지적인 사랑으로 볼 수 있다. 법규(Torah), 규범, < 명령 : 구체적인 상황에서 명령하는 것 > (Misba;הובמ, הבשמ), 법(מיקוה)이다.
신명기에서는 הבשמ와 מיקוה이 같이 나온다. 어떤 것을 지켰다, 지켜라등을 나타낸다. 그런데 הבשמ는 하느님이 구체적인 상황에서 이야기해서 דבד, למא 등 ‘말하다’ 동사와 같이 나오면서 이런 상황과 많이 연결된다. מיקוה은 다윗시대에 이것이 명령된 것이 아니라 솔로몬에게까지 지속적으로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다윗에서 솔로몬에게까지 지속적으로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것은 다 지켰지만 다시 ‘고소’에 가서 제사를 지내면 안되는 것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야훼의 당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였다. 이렇게 하여 솔로몬에게 부담을 덜 느끼게 하는 것이다. 아직 성전이 없기 때문에 그르호보암다.
4절 : ‘기브온’은 요수아 9장에 보면 예날부터 알려진 유명한 성소이다. 그래서 기브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제사는 나중에 15절에 가서는 번제, 평화제물인데 여기서는 일반적으로 기브온에 하느님을 만나는 장막이 있지 않았겠느냐라고 추측한다. 그래서 거기에 가서 제사를 지냈다. 천마리는 진짜 천마리가 아니라, 앞에서 언급한 파라오의 딸을 맞아들이는 등의 솔로몬의 평가와 병행하는 것이다.1) 또한 하느님을 만나는 장막이 기브온에 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고 다른 것은 다 지켰는데 야훼의 당이 없기에 고소에 가서 제사를 지냈다는 것인데 그래도 열심히 지냈다는 것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5절 :
5a : 이 귀절은 후대에 삽입한 것이다. 매끈하지 못하다. 신명기 역사학자가 넣을 때 적어도 이런 역사적 내용이 있기에 추측하는데 솔로몬이 제사만 지넨 것이 아니라 잠을 잤는데 야훼께서 나타나신 이것으로 이런 해석을 넣은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을 한다. 꿈은 하느님이 계시하는 방법중 하나이다. 엘로이스트는 -하느님을 직접 대면할 수 없기에- 꿈을 통해서 대면한다. 엘로이스트는 하느님이 절대자이시고 초월적 존재이시기에 직접 만날 수 없었다. 꿈, 사자들을 통해서 인간에게 계시하시는 것인데 그런 것과 많이 연결된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느님에게서 꿈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이 사자를 통해서 인간에게 계시를 내리시고 받는다.
무엇을 주는 것처럼 「청하여라」는 לאש는 하느님께 일방적으로 구하고 원하는 것이다. 바라쉬는 사제나 예언자가 하느님께 의견을 묻고 청할 때라는 단어이며, 하느님께 무엇을 그하고 청하는데에 또 사제나 예언자에게 무엇을 청할 때에도 לאש(shal)이란 단어가 많이 나온다. 일방적인 인간관계에서도 볼 수 있는데 하느님께 청할 때 많이 볼 소 있는 단어이다.
9절 : 그러니 당신 종에게 좋고 그른 것을 분간하여 당신 백성을 다스리도록, 총명한 마음을 주소서.
총명한 마음은 듣는 마음이다. 분간(ספש)은 다스리는 사람과 연결되며, 잘 다스리는 사람은 판단을 잘 내려서 분간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잘 다스리는 사람은 판단을 잘 해야 한다. 다스리는 것과 구분하는 것, 나쁜 것과 좋은 것을 잘 구분해야 한다. 다스리거나 판단하기 위해서는 총명한 마음이 필요한데 이 총명한 마음은 듣는 마음을 말한다. 마음이란 구약에서 힘이 나오는 출처라기 보다 감정적 이성과 의지가 다 포함한 것이다. 듣는 마음이란 개념은 에집트에서 왔다. 듣는 마음은 생각하고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에집트의 지혜문학에 의거하면 마음이란 인간으로 하여금 듣게 만드는 기관 또는 반대로 듣지 못하게도 한다. 듣는 마음을 잘 지니고 있다는 것은 감정과 이성이 잘 발달되어 있는 것이며, 누가 듣는 마음이 없음은 감정도 이성도 없는 것이다. 마음이 없음은 분간할 수 없고, 분간할 수 없으며 다스릴 수 없는 것이다. 이 사람은 합법성이 있다할지라도 다스릴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1-2장에 의거하여 백성이 왕을 바꿀 수도 있고, 백성이 왕을 도유할 수도 있다는 표현도 나온다. 어쨌든 총명한 마음을 듣는 마음으로 바꾸어라.
11절~12절
11절에서 11b ‘이 사정을 청하며 법규를 알아듣기 위한 판단력을 청한 까닭에,’에서 문헌비판적으로 보면 11a의 ‘일반적으로 이것을 청하였기 때문에’라고 하면서 11a에서 12로 넘어갈 수 있다. 11b에서 이런 것을 청하지 않고 이것을 청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법규를 들을 수 있는 판단력을 청했다」라고 이런 이야기를 한다. 이는 듣는 마음과 연결되며 구체적인 설명이 되고 이것을 빼고 12절로 가면 이런 사정을 청했기에 11a에서 12절로 연결될 수 있다. 12ab(보라! 너의 말과 같이 내가 행하여, 당장 너에게 슬기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에 보라!가 두번 나온다. 선신부님께서는 처음에는 ‘보라’로 두번째는 ‘당장’으로 번역하셨다. ןיב(판단하는 것)은 이런 것, 저런 것을 구분하는 것이다. 지혜로운 마음, 구분하는 마음을 주는 ‘너보다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을 정도이며, 너의 다음에도 너와 같은 자는 일어나지 않을 정도니라’(12b). 사실 이것은 12bβ는 신명기적인 냄새가 난다. 모세에 대해서 너같은 예언자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솔로몬이 대입되어 솔로몬이 특출한 인물로 나오게 된다. 그러면 솔로몬이 모든 지혜의 시작이었던가? 모세 5경(토라)은 모세가 원저자가 되고, 시편은 다윗가, 지혜에 관한한 전부 솔로몬이 저자로 나온다. 솔로몬 시대에 있어서 주위의 지혜문학을 수입하여 솔로몬에게 부여하고 역사적으로 보면 사실이라고 본다. 그러나 모든 지혜를 솔로몬에게 대입시킨 것은 아니고 이스라엘의 문화적 전통에 따라 솔로몬에게 줌으로써 권위를 부여하고 칭찬하는 것이다.
12bβ는 후대에 붙은 것으로 생각한다. ‘너보다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엇을 정도이며, 너의 다음에도 너와 같은 자는 일어나지 않을 정도니라’ 이는 예수께서 요한 세자를 칭찬할 때에도 사용되었다. ‘여인에게 태어난 사람중에 그같은 사람은 없었다.’ 이는 관용구적 성격을 갖는다. 신명기에서 모세에 대해서 이런 표현을 사용한다.
15절 : 그리고서 솔로몬이 깨어보니, 자! 꿈이었더라.
이 기본 텍스트가 주는 의미는 무엇이냐? 두가지이다. 지금의 문맥(기능적) 혹은 그 자체 내용으로 생각할 수 있다. 내용은 에집트 수입한 왕에 대한 소설적인 이야기, 그런 틀을 이용해서 솔로몬을 격상시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격상의 내용은 지혜의 시각을 주었다. 실제로 솔로몬이 그런 능력이 있었다라고 보는 것은 역사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념적으로 정립하기 위하여 이웃나라 문헌을 통해서 완성시킨다. 그런데 솔로몬의 능력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왕으로서 지녀야 할 판단, 구분이 특출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으로 한다. 그러나 기능적으로 보아 그 앞에서 나온 솔로몬의 취약점, 부정적인 부분을 전부 바꾸어 놓는 기능을 한다. 그래서 솔로몬이 왕이 되었다는 것은 다윗의 합법적인 지명에 의한 것뿐만 아니라 이런 지혜를 갖고 있기에 능력으로 자격이 있어 합법성에 도움을 주는 기능을 한다.
기능․내용적인 측면에서 가장 중요하게 나타나는 것은 하느님께 청할 때 ‘듣는 마음’을 달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에집트 왕이념에서 따온 것이다. 솔로몬의 ‘듣는 마음’으로 인해 야훼가 허락하였다는 것은 솔로몬이 1-2장에서 나오는 모습과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을 지니게 된다. 1-2장에서 나오는 솔로몬은 부분적인 왕, 일부에 의해 추대받은 왕, 반쪽 왕이었으나, 이 장에서 나오는 솔로몬은 듣는 마음을 가진 사람, 다른 사람에 대해서 이제는 보편적 자격을 지닌 사람으로 평가절상하는 것이다.
그것에 맞게 3,1에서 나오는 파라오와 파라오의 딸과 결혼해서 국제적 인물로 부각되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나 신명기적인 평가에 의하면 도덕적으로 나무랄 것 없는 왕이 된다.
그것을 위해서 여기에서 본 기본적인 틀이 이용되었다. 이를 통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예날 이야기 즉, 에집트시대에서 시작한 왕을 격상시키는 이데오르기이지만 이 시대에 주는 메시지는 굉장한 것이다. 중심인 주제는 역시 우리에게 마음에 대한 생각, 듣는 것에 대한 생각이 우리에게 판단하는 능력 선․악, 좋고 나쁜 것에 대한 판단을 말한다. 좋은 것은 여러 의미가 있으나 여기에 신명기적인 견해로 보아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보아서 여기는 하느님이 주신 것, 창조때 주신 모든 피조물에 대한 기능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 것,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은 들을 수 있다는 마음이라는 것과 들을 수 있다는 것과 연결시킬수 있고, 듣는다는 것은 나중에 지혜와 밀접히 연결되어 전개된다. 기본골격이 현재시대에 주는 의미는 다스리기 위해서나 지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숙하기 위해서 듣는 마음이 필요하다. 듣는 마음은 단순히 신명기적인 해석을 통해서 하느님 말씀을 통하거나 하느님의 규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 많은 백성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는가라는 말을 통해서 보면 인간의 마음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16절이하의 경우도 이사람이 듣는 마음이 있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으로 듣는 마음을 갖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현대인에게 주는 것은 지배자에 의거한 그것이 아니라 공동체 일원으로써 성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그런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께 청원해야 할 덕목이다.
어쨌든 솔로몬은 이를 통해서 이제 반쪽 왕이 아니라 전부를 다스릴 수 있는 왕이 되고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그렇게 된다.
16절은 이야기꾼들이의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것의 하나로서 이스라엘의 고유한 것이 아니라 인도 등지의 근동 아시아에서 전해지던 이야기이다. 초기의 이야기에는 명판관에 관한 이야기이며 이 이야기를 솔로몬의 것으로 전이시켰다. 이것을 이곳에 놓은 이유는 하느님이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