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말씀
고대인들은 한번 발설된 말은 특별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발설된 그 말은 이루어진다고 믿었던 경향이 다분히 있었다. 그 말 안에는 어떠한 의미가 담겨 있고 그 의미는 실현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한번 발설한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특히 축복과 저주면에 있어서 그들은 매우 조심스럽게 축복을 하고 저주를 했다. 또한 신의 인격적인 이름을 말하기를 주저하는 경향도 있었다. 특히 히브리 민족들이 그러했다. 그래서 그들은 הꕳꕞꖸ(야훼)라는 이름을 1년에 단 한번, 대사제가 대속죄 날에 불렀다. 야훼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 안되었기에 모음을 붙여 הꕯהꖾ라고 써 놓고 읽을 적에는 יꗺꕌꔣ(아도나이)라고 읽었다. (원래는 읽으면 여호와이다. 따라서 개신교에서는 아도나이라고 읽지 않고 여호와라고 읽기에 또 하나의 이름이 생긴 것이다).
이렇게 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했다. 이러한 경향이 신약에까지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Mt복음 사가의 경우“하느님 나라”대신에 “하늘나라”라고 부른다. 그리고 랍비 계통도 하느님을 거룩하신 분, 축복받으신 분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영향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아라메아어로 하느님을 아빠(Abba)로 불렀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이다. 이름도 함부로 부르지 못하는데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급진적인 사고의 전환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