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의 구분

 

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의 구분




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 이 둘 모두가 직접 야훼로부터 말씀을 받았다고 주장할 적에 그러면서도 서로 정반대가 되는 주장을 하고 있을 적에 보통 사람으로서는 당혹감을 금치 못하였을 것이다. 예레미야 27~28장에는 예레미야가 거짓 예언자와 함께 야훼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서로 논쟁을 벌이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야훼께서 그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있는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이 있다. 참 예언자의 기준에 있어서 시금석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예언의 실현 여부이다(신명 18,15~22). 




“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는 나와 같은 예언자를 동족 가운데서 일으키시어 세워 주실 것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 이것은 호렙에서 대회가 열렸던 날 너희가 너희 하느님 야훼께 청을 드렸던 바로 그것이다. ‘나의 하느님 야훼의 소리를 다시는 직접 듣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이 무서운 불을 다시는 보지 않게 해 주십시오. 내가 죽을까 두렵습니다.’ 야훼께서는 옳은 말이라고 하시면서 나에게 이렇게 일러 주셨다. ‘나는 네 동족 가운데서 너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키리라. 내가 나의 말을 그의 입에 담아 주리니, 그는 나에게서 지시 받은 것을 그대로 다 일러 줄 것이다. 그가 내 이름으로 하는 말을 전할 때 듣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친히 그에게 추궁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라고 시키지 않은 것을 주제넘게 내 이름으로 말하거나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는 예언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그런데 그것이 야훼께서 하신 말씀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겠느냐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그 예언자가 야훼의 이름으로 말한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말은 야훼께서 하신 말씀이 아니다. 제 멋대로 말한 것이나 그런 예언자는 두려워할 것 없다.’” (신명 18,15-22)




본문에서 보면 야훼 하느님께서 내리신 말씀만 전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성서의 의미를 이해할 때 자의적 의미만이 아니라 sensus accommodatus(適義: 적절한 의미)도 살펴 보아야 함을 제시해 주고 있다. 사제들이 강론, 설교를 통해 성서 구절의 적절한 의미를 전해야 하듯이 예언자 역시 성서의 뜻을 곡해해서 설명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참, 거짓 예언자의 구분은 이 기준으로 판가름난다.


또 이 본문을 통하여 왜 예언자가 생겨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야훼를 직접 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이 두려움 때문에 중재자를 요청하게 되고 여기서 예언 제도가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야훼의 이름으로 한말이 성취되어야만 참 예언자이며 이것이 예언자 구분 기준이다.  더 나아가 참된 예언자는 과거의 전통(출애굽 전통)을 고수하였다. 이 메시지가 야훼와의 사이에 알려진 것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로 참-거짓 예언자를 가려낼 수 있다.  또한 예언은 그 당시 시대적 상황이라는 옷을 입고 있음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역사적 전후 배경에서 설정된 메시지의 내용이 그런 역사적인 것과 잘 연결되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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