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설화와 현시 설화의 변천과정-사무엘,엘리사,이사야,하바꾹,아 凋예레미야,에제키엘

 

소명설화와 현시 설화의 변천과정




소명설화와 현시설화에 관한 어떤 발전을 또한 우리는 가시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예언서 안에서는 우선 전기에 대한 관심이 나타나고 있다. 그 전기 중에서도 예언자의 소명과 사명위임, 중개자로서의 사명위탁, 이것에 대한 비중이 크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소명에는 꿈, 현시, 심리적 변화, 행동의 변화 등 이례적인 현상과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왜냐하면 예언자의 중개행위는 자신을 지지하는 특정 후원자를 대신하여 활동하는 것이기때문에 사명 위임 즉, 어느 누구로 부터 전권을 받아 말씀을 전하라는 사명을 받았다는 사명 위임은 사회로부터, 그리고 어떤 특수 계층으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아야만 했던 것이다. 이 정당성을 인정받는 것이 실로에 있는 성소에서의 사무엘의 소명과 엘리사의 소명에 잘 나타난다.






1) 사무엘의 소명 (1사무 3장)




사무엘은 세번의 부르심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예언자로서의 역할을 공적으로 인정받게 된다(1사무 3,20). 사무엘은 엘리 밑에서 예언자의 삶을 익히면서 성전에서 잠을 자고 있다가(incubation) 세번에 걸쳐서 불리움을 받았다. 사무엘이 받은 소명은 청각적인 것이었다. 즉, 무엇을 보았다기 보다는 들었다(1사무 3,15-21). 그러나 청각적인 것이었지만 현시로도 불리워진다.  (incubation: 의미인즉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 성전에서 잠자는 의식이 그 당시에 많이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치료하기 위해서 성전에서 잠을 자면 꿈에 신이 나타나서 그 병을 치료하는 처방을 알려준다는 그러한 믿음에 의해서 이러한 의식이 행해진 것 같다. 물론 사무엘은 그런 의도로 성전에서 잠을 잔것이 아니다. 그러나 성전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는 그런 내용과 결부시키기 위해서 이렇게 incubation이라는 용어를 소개해 본다.)










2) 엘리사의 소명 (1열왕 19,19-21)




엘리사의 소명및 사명 위임의 경우 사무엘보다 조금 복잡한 양상을 띤다. 엘리사의 사명 위임은 예언자의 아들들로 알려진 회교 금욕파의 탈혼 무리(Dervish)와 확연하게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Dervish는 엄격한 금욕과 가난을 실천하면서 생활하던 이슬람교의 신비주의적 수도승의 일원임을 지칭한다. 이들은 구걸하는 탁발승처럼 특별한 숙소 또는 막사에서 살았거나 또는 무리를 지어 돌아다녔다.


‘Dervish’라는 단어는 페르시아어의 Darvis(문, 성문에 있는 거지, 빈털털이)에서 유래한 것 같다. 아랍어권에서는 faquir(가난한 사람)의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Dervish는 이상한 몸동작을 오랫동안 반복하거나 황홀경이나 탈혼, 흥분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종교적 신앙신조를 지속적으로 외치는 것에서부터 유래한다. 이런 현상에서부터 이 그룹은 일반적으로 ‘춤추는 Dervish’, ‘빙글빙글 도는 Dervish’, ‘울부짖는 Dervish’라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Dervish그룹과 성서에 나오는 예언자 그룹, 특히 엘리사의 사명은 차이가 있다. 엘리사의 소명과 사명 위임은 권위와 함께 주어진 예언자직의 계승이다. 즉, 스승이었던 예언자 엘리아는 자신의 외투를 제자인 엘리사에게 넘겨주는 상징적 행위를 통해서 예언직을 넘겨주게 된다. 또한 엘리아의 승천(2열왕 2,9-12)후 영(spiritus)을 물려받은 엘리사는  초감각적인 인지로 특수한 체험을 하게 되었고(2열왕 6,17) 또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게 되었다(2열왕 8,7-15). 그뿐 아니라 다양한 기적을 행함으로써(2열왕 2,13-14 등) 어떤 초자연적인 영적 힘에 의해 소명을 받은 예언자라는 합법성을 증명받았고 이를 통해서 백성들로부터 예언자로서의 정당성을 인정받게 되었다.


사무엘과 엘리사의 소명보도는 편집이 가미되어 신명기계 역사서에 병합되었다. 병합되는 과정에서 어떠한 손질이 있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3) 이사야의 소명




대부분의 소명사화는 1인칭으로 쓰여지며 현시가 동반된다. 미가의 소명현시(1열왕 22,19-22)는 이사야의 현시(이사 6,1-13)와 연결되며, 이 두 소명현시에 등장하는 하늘 천사들의 무리 즉, 천상 어전, 천상 궁전은 유다적인 특별한 변화를 암시한다. 이 현시는 성전에서 받은 것으로 묘사되며 예언자의 중개행위는 왕의 전령(messenger)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사야의 경우, 전례적인 정화 과정을 통해서 야훼는 왕으로서 이사야를 부르고 이사야는 왕이신 야훼께 자발적으로 봉사할 것을 다짐한다. 헌신적 봉사를 다짐한 그에게 사명이 위임된다(이사 6,1-13). 왕이신 야훼, 그리고 야훼의 전령으로서 이사야, 이렇게 하느님으로부터 구체적인 파견을 받았음을 이 현시장면 즉, 천상어전과 같은 주변현상이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유배 중에 소명을 받은 제 2이사야(40,1-11)에서도 나타난다. 이 경우 사명을 위임받은 순간이 비교적 덜 정확하게 묘사되고 있고 주어도 단수가 아닌 복수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제1이사야서와 차이가 있다고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4) 하바꾹의 소명




후기 예언서들 중에서 유다에서 활동하던 예언자들의 작품은 ‘현시’라는 제목으로 소개된다. 예를 들면 이사야서 같은 경우 제목이 ‘현시’로 소개되고 있다. ‘이사야가 받은 계시’ 또는 ‘현시’ 이렇게 나오는데 오바디야서, 나훔서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현시 중의 말씀’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는 경우도 있는데 미가서, 하바꾹서가 여기에 해당된다. ‘현시’ 또는 ‘현시 중에 받은 말씀’이라는 이러한 현상은 아마 남조 유다의 지역적인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유배전 예언자 중에 유일하게 איבꗺ(나비)라고 불리는 예언자가 하바꾹인데, 그는 현시 안에서 계시를 받았다는 것으로 나타난다. 즉, 예언은 이제 현시로 보는 것에서 현시 중에 말씀을 듣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바꾹은 계시의 말씀을 성전에서 받았으며(하바꾹 2,1-2), 이 계시가 성취되기를 기다리는 동안에 일어나고 있는 행동의 변화들을 간단히 기술하고 있다(하바꾹 3,16). 이것은 이사야서 22,6-10에서 언급되고 있는, 바빌론의 멸망을 예고하고 그 성취를 기다리고 있는 익명의 유배 예언자의 경우와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5) 아모스의 소명




아모스는 자신이 사명을 위임받았다는 사실을 사제 아마지아 앞에서 자신을 변론하는 과정 중에 간접적으로 기술하였다(7,14-15). 이에 대한 해석은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왔다. 아모스는 자신이 사명을 위임받은 것은 예언자들의 집단에서처럼 일정한 도제(徒弟)기간을 거쳐 받은 것이 아님을 지적한다. 즉, 그가 예언자로서 사명을 받은 것은 스승 밑에서의 문하생으로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개인적인 응답을 하였기때문이라고 대답하고 있다. 즉, 하느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그에게 사명이 위임되었다는 사실을 표현하려한 것 같다.


아모스의 현시 시리즈들(7,1-9; 8,1-3; 9,1-4)과 예언자로서의 사명위탁 사이에 어떠한 연결점이 있는 것 같다. 즉, 아모스서는 메뚜기떼들과 가뭄 때문에 이스라엘이 초토화될 것이라는 두개의 현시를 받았다. 그러나 하느님께 간청하여 그 재앙을 멈추게하는 과업 즉, 예언자의 중재기능을 수행하게 된다(7,1-9; 8,1-3 ⇒예언자의 중재기능이 강조되고 있다). 그리고 지진과 군사적인 재앙에 대한 세번째 현시는 아모스가 사마리아 왕국과 그 왕 내지는 통치자들을 향하여 설교하도록 사명을 받았다는 점을 지적한다(7,1-9) 왜냐하면 특별히 이 구절 뒤에 곧바로 그의 예언직에의 소명에 대한 변론이 뒤따르고 있기때문이다(7,10-17).






6) 예레미야의 소명




예언자 예레미야의 소명에 관한 서술(예레 1,11-19)에서도 아모스서의 셋째(아모스 7,7-9), 넷째(아모스 8,1-3)현시와 비슷한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이 소명 보도는 일인칭 화법으로 나타나며 예언자는 단지 하나의 대상에 불과하다. 또한 하느님이 제시해주신 증거물의 의미가 해석된다. 그러나 그 물건에 대한 설명은 상징적인 설명이거나 아니면 발음의 애매모호함내지는 유사성으로 표현되었다.


에를 들면 1,11의 דꙏꚂ(샤케드: 감복숭아)는 דꙏꚇ(쇼케드: דꙌꚂ(샤카드:바라보다)의 분사형)란 말로 상징적으로 설명된다. 즉, דꙏꚂ(샤케드)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그러한 의미를 띠게되는 것이다. דꙏꚂ(샤케드)와 דꙏꚇ(쇼케드)의 발음의 유사성이 많이 비교되고 있는데 이것이 예레미야서의 특징 중에 하나이다(앞으로 우리가 주석하면서 이러한 현상을 자주 만나게 될 것이다). 대조적인 그러한 단어를 갖고서 예레미야서는 많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상징적인 설명 또는 언어유희라고 할 수 있겠다(예레미야서 1.11-13절을 주석할때 이 점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게 될 것이다). 


이에 앞서 나타나는 실질적인 사명위임은(예레 1,4-10)  모세의 소명사화의 패턴을 따르고 있다. 즉, 하느님으로부터 소명(말씀)을 받는다. 그리고 사명이 위탁된다. 이에 따른 이의가 제기되고 야훼께서 이의를 기각하신다. 당사자가 모세건 예레미야건 전부 주저한다. 그 주저함을 극복할 수 있는 확신과 격려를 야훼께서 주시면서 이의를 기각한다. 그뿐만 아니라 징표까지 제시해 준다. (물론 예레미야의 경우는 이 부분이 빠져 있지만 모세의 경우는 이 징표까지도 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파견에 대해서 자세하게 서술되고 있다.


비록 모세와 예레미야의 소명사화에 이 유사성이 예레미야를 모세계 예언자로 그리려고 한 신명기 학파의 의도로 이해할 수는 있다 하더라도 이 패턴 자체는 신명기 학파 이전에 이미 등장하고 있다. 즉 이 패턴은 신명기학파 이전 설화였던 예언자 기드온의 사명위탁(판관 6,11-18)에서도 볼 수 있다. 






7) 에제키엘의 소명                                                  




예제키엘의 소명보도는 내용이 서로 다른 두개의 설화가 결합되어 나타나고 있다. 첫번째 소명 보도는 전차(병거)와 옥좌가 등장하는 현시 안에서 에제키엘이 소명을 받고 있음을 전하고 있다(1.4-28). 두번째 소명 보도는 환영받지 못할 말씀을 받아 전해야한다는 의미에서 말씀이 적힌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먹는 예언자의 행동을 기술하고 있다(2.1-3.3).


  학계에서는 두번째 소명 보도가 본래의 사명 위탁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을 골자로 해서 나중에 3,4.9; 3,10-15이 편집, 확장된 것으로 보고있다. 또한 1,4-28에 나오는 전차(병거)와 옥좌에 관한 현시 설화는 에제키엘계 학자들이 사명 위임의 서문으로 써서 중심이 되는 2,1-3,3앞에 배치시켜 놓은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에제키엘의 소명은 옥좌에 앉아 계신 그분으로부터 비롯됨을 시사하고 있다. 유대인들에게 신비로운 광경으로 묘사되는 이 전차(병거)에 대한 자세한 서술은 또 다른 변화를 의미한다. 즉, 이것은 비교적 단순한 예언 현시 설화에서부터 이제는 묵시문학적 색채를 띤 현시에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제 소명 보도는 단순한 현시에서 묵시문학 쪽으로 넘어가게 되어 보다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그 예로써 즈가리야의 현시도 여기에 해당된다.






8) 즈가리야의 소명




현시, 또는 계시 말씀은 에제키엘의 경우 묵시적인 색채를 띤다. 이러한 현상은 BC 519년으로 기록된 즈가리야의 현시에서 또다른 모습으로 발전되어 나타난다. 유배 이후 초기의 예언의 역할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암시한다고도 볼 수 있다(즈가 1,7-6,8). 가장 흥미로운 변화 중의 하나를 지적한다면 그것은 현시 안에서 초자연적인 대리자(천사)가 나타나서 예언의 뜻을 해석한다는 점이다. 이제 현시 안에 구체적으로 어떤 대리자가 나타나서 그 예언의 의미를 설명해 준다. 또한 앞으로 어떠한 미래가 전개될 것인지도 설명해준다. 이때 천사는 대분분의 경우 이전 예언서에 나오는 주제들을 해석, 설명하고 있다(즈가1.2-6본문확인】)


그 예로 즈가 1.7-6.8에 7가지 현시가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대장장이들(이사야 54.16-17), 성의 측정(에제 42.20), 북쪽지방(예레 1.13-16), 예루살렘을 둘러싼 불벽(이사야 4.5)을 주석하고 있다. 즉 7가지 현시는 이사야서, 에제키엘서, 예레미야서를 주석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70년의 유배기간을 예고한 예레 25.11; 29.10을 다니엘서 9.1-27(【본문확인】)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다시말해 이전에 있었던 예언에 대한 설명, 해설로서의 예언이 등장하게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직접적인 통교를 하는 전통적인 예언방법으로부터 예언서 text에 대한 주석을 포함한 간접적인 해석을 하는 방법상의 전이를 보게 된다. 즉, 예언자들이 직접적으로 현시, 말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제 이전에 있었던 예언 텍스트 안에서 간접적인 해석을 통해 예언을 전한다고하는 방법상의 전이를 보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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